사양 에디터스 컬렉션 1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양

다자이 오사무 ㅣ 문예출판사

 

 

문학 작품을 읽을 때 '배경'을 미리 파악하는 것은 필요하다작품 속 시대적&공간적 배경은 물론이며 작가가 작품을 쓴 시대의 배경도 중요하다모든 작품이 그런 건 아니지만어떤 작품은 배경을 배제하고 읽어나가면 도대체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다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은 특히나 그렇다.

 

사양은 1947년 발표된 작품이다. 1947년은 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일본이 패망한 후 2년이 지난 시점이다세계를 향해 기세 좋게 나아가던 일본은 미국이 쏘아올린 두 발의 폭탄에 의해 하루 아침에 패전 국가가 되었다나라의 꺽인 기세는 개인을 전복시켰다작품의 제목 사양처럼 인물들 모두 저무는 태양처럼새로운 것들에 밀려 몰락해 가는 일본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가즈코는 몰락하여 가난해진 귀족이다그녀는 남편과 이혼 후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아가고 있다가즈코의 어머니는 귀족으로써의 기품을 잃지는 않았으나 점점 병들어간다가즈코의 남동생 나오지가 마약중독으로 큰 빚을 안기고 전쟁에 참여 후 소식을 알 수 없는 상태라 어머니의 마음은 아프다전쟁 후 어려워진 집안 형편 때문에 시골의 작은 집으로 이사하게 된 모녀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나오지가 귀환한다다시 모인 가족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지 못하고 더 혼란스럽기만 하다.

 

 

 

작품 속 인물 모두가 병자처럼 느껴진다모두가 초점없는 눈으로 세상을 겨우 살아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또한 그들의 행태가 기괴하다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나오지의 스승 우에하라를 대하는 가즈코의 행동이다가즈코의 행동 이전에 우에하라의 행동도 기이하다짧고 강렬한 첫 만남 후 6년 이나 지난 시점에서 그를 향한 사랑 편지를 보내는 가즈코의 마음은 무얼지 생각해 본다.

 

어머니의 귀족으로써의 기품을 유지하기 위해마약 중독자 나오지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집안의 옷가지며 물건들을 팔아가며 살아가야 하는 매일의 삶은 가즈코를 지치게 했을 것이다아무리 애써봐도도저히 버텨낼 수 없을 것 같은 초조가 그녀를 감싼다이런 초조 때문에 그녀는 심장이 옥죄고숨을 쉴 수 없으며눈앞이 까매져서 뜨개질마저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이런 암울한 시기에 우연히 경험한 짧은 입맞춤의 설레는 감정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녀를 삼켜버린다아마도 가즈코는 대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때의 감정이 소중했었을 것이다희망 없고 우울한 매일 속에 섬광처럼 자신을 감쌌던 얼굴 붉어지는 순수한 감정을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생각지 못한 경험과 따뜻하고 설레는 감정은 힘겨운 상황을 이겨낼 힘이 될 수도 있다.

 


6년이라는 시간은특히나 매일을 술로 보내는 일상을 살고 있는 우에하라에게는 치명적이었다볼품 없으며형편 없는 외모에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여 퇴물이 되어버린 지식인은 가족을 돌보는 것에도 무책임했다.그럼에도 가즈코가 그를 사랑한다고 느꼈던 것은 그의 방탕한 자유로움과 지식인으로써의 박식함 때문이라고 본다어찌보면 몰락했으나 여전히 남아있는 귀족으로써의 허영심이 표현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6년 전의 그날 처럼, 6년 후에 어머니를 잃은 가즈코는 또 살아남아야 함을 알기에 우에하라를 통해 그 옛날 처럼 앞으로를 살아나갈 수 있는 설렘의 감정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가즈코의 동생 나오지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본인을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또한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중 [인간실격속 요조의 전신처럼 보이기도 한다요조처럼 나오지도 귀족인 자신을 거부하며 민중의 벗이 되고 싶었으나 생각만큼 쉽지 않았기에 약과 술에 의존한다하지만 그의 의존은 변명처럼 들린다민중이 됨을 천박함이라 표현한 것은 귀족으로써의 자신을 너무 고귀하게 평가한 것이다어찌보면 요조처럼 타인과 소통되지 못함이 빚어낸 오류때문에 몰락한 귀족으로써 더 힘겨웠을 수도 있다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그의 노력이 종국에는 포기된 것이 안타깝다.

 

어제와 너무 다른 오늘은 모든 사람들에게 혼란스러울 것이다그 혼란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그 혼란에 발버둥치다 끝내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강한 힘으로 세상을 휩쓸 것이라 자신했던 어제의 일본은 패전 국가로써 책임을 다해야 하는 패배자의 오늘이 힘겨웠을 것이고귀족으로써 모든 특권을 누렸던 어제의 나오지는 존중마저 받지 못하는 오늘이 힘겨웠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나오지 처럼 포기하지는 않음을 우리는 가즈코를 보며 생각한다여성이며이혼한 경력을 가진 가난하며 몰락한 귀족인 가즈코는 그럼에도 새로운 희망을 잉태하여 살아가겠다고 다지는 힘을 발휘한다아이는 새로워진 세상 속 새로운 질서 속에서 가즈코의 보살핌으로 잘 살아갈 것이다.

 

 

 


오늘날 사양은 페미니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충분히 이해가 된다모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려한 가즈코의를 칭송한 평가처럼 느껴진다특히나 1940년대의 여성으로써 미혼모의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은 용기이다그녀의 용기가 과연 끝까지 힘을 발휘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래도 그녀의 주체적인 행동은 그 시대 젊은이들에게 힘이 되었을 것임을 인정한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한 문예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