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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채우는 감각들 - 세계시인선 필사책
에밀리 디킨슨 외 지음, 강은교 외 옮김 / 민음사 / 2022년 12월
평점 :

『밤을 채우는 감각들』
에밀리 디킨슨 ㅣ 페르난두 페소아ㅣ 마르셀 프루스트 ㅣ 조지 고든 바이런
민음사
시는 언제나 어렵다. 시를 이해하고 즐기고 음미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다. 하지만 다가가려는 용기를 가져본 적은 없다. 용기내지 못했기에 더 시와는 멀어졌었다. 그렇기에 세계시인선 필사책 『밤을 채우는 감각들』을 읽는다는 건 나에게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밤을 채우는 감각들』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시인 에밀리 디킨슨, 페르난두 페소아, 마르셀 푸르스트, 조지 고든 바이런의 작품을 선별하여 엮은 필사책이다. 왼쪽에 배치된 시를, 오른쪽에 배치된 여백에 따라서 쓰다 보면 시인의 감정이 전달되는 다소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에밀리 디킨슨, 철학적 사색으로 인도하는 페르난두 페소아, 아름다운 문장으로 감동을 일으키는 마르셀 프루스트, 낭만과 영웅적 면모를 표현한 조지 고든 바이런의 모든 시들을 따라 쓰다 보면 어느 새 나도 시인이 된 것 같다.

19세기 대표하는 4명의 시인들 중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들이 가장 좋았다. 그의 시는 '나'를 돌아보게 했다.
'양 떼를 지키는 사람' 에서 페르난두 페소아는 시 쓰기의 번거로움을 토로한다. 또한 외롭고 고독한 일임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홀로 있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왜 홀로 있고 싶은 것일까? 이해받지 못해도 표현함에 만족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일까? 원래 그런 것이 시라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많은 의문을 남기는 시이다. 또한 쓸쓸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어마어마한 작품을 남긴 작가이기도 하다. 프루스트의 시는 처음이다. 물론 그의 또다른 문학작품도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리 집 책장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찬란하게 꽂혀있기에 친밀함이 느껴진다.
그의 시 '음악을 듣고 있는 가족' 은 서로 다른 세대의 가족들이 서로 다른 경험과 가치관에 의해서 같은 음악을 듣고 있지만 각자 다르게 느끼고 해석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우리는 모두 다름을, 다름은 당연한 것임을 생각하게 해주는 시이다. 모두 다르지만, 다름에도 함께 찬란하고 무한하며 신비스러운 음악을 듣고 있다는 것이 중요함을 생각해 본다.
『밤을 채우는 감각들』을 통해 시에 대해 좀 더 용기를 내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즐기고, 음미해도 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에게 한 걸음 불쑥 다가가고, 따라 쓰고, 마음의 일렁임을 앞으로도 종종 기다릴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