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1
임레 케르테스 지음, 이상동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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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51-101

그가 작가이자 문학 번역가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여인이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다. 그녀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과의 자리에서 서술자는 '아우슈비츠'를 떠올린다. 누군가는 그 곳을 어떤 말로도 설명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설명할 수 없는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침묵은 절대 용납할 수 없으며 존재함을 어떤 말로든 설명해야 하며, 실현되지 말았어야 할 이름이지만 실현되었으므로 잊어서는 안 된다고 못 박는다. 그의 단호함 속에서 그의 과거 속 처절한 아픔이 전해진다.

 

 

아우슈비츠에서 그가 만난 해골처럼 생긴 "선생님"이라 불리는 남자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들것에 누워 있던 서술자의 급식을 가로채지 않고 챙김으로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음을 서술자는 말한다. 극박한 상황에서는 타인의 불행이 나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나의 안전을 줄여서 타인의 불행을 해결하려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서술자는 어린 시절 아우슈비츠에서 만난 "선생님"이 한 모두가 했을 당연한 것을 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성인을 본 것이다. 굶주림에서도 욕심내지 않고, 생존을 위한 본능 속에서도 비굴하지 않은 모습은 아우슈비츠의 겁먹은 어린이의 눈에는 경이로워 보였을 것이다.

 

 

누군가의 광기와 변태스러움으로 만들어진 공간 아우슈비츠는 서술자에게 한 곳에 정착해서 사는 것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주기도 했다. 하루아침에 발생한 전쟁처럼 ,자신이 일구고 살아가던 공간이 한 순간에 무의미해질 수도 있음을 깨우친 서술자는 최대한 약소하게, 임시로, 넋을 놓은 채 셋방살이를 하는 것이 타당하게 사는 방식이라라고 생각했다.언제든 다시 독일인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집을 소유함에 있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소유에 관련된 절차와 고민들이 그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살고 있는 순간을 자신의 생성과 소멸 사이에 주어진 '대기의 시간'이라고 서술자의 입을 통해 작가는 표현한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에 깨어 있는 그 시간은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기의 시간'이라는 단어만으로 그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 분노가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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