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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 살인자의 성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5
페르난도 바예호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평점 :

『청부 살인자의 성모』
페르난도 바예호 ㅣ 송변선-옮김 ㅣ 민음사
실제와는 다르게 느끼는 것을 '착각' 이라고 한다. 이 책 『청부 살인자의 성모』 를 읽으며 '착시 그림' 들이 생각났다. 원래는 모두 같은 길이의 직선인데, 주위에 있는 선의 굵기나 간격에 따라 길이가 다르게 느껴지는 그림들 말이다. 모두가 동일한 '악'인데도 책 속에 나열된 수많은 '악'에서 덜 악랄하고, 덜 잔인한 것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또한 어린 청부 살인자의 살인에 대해 그의 행동 보다는 그를 그렇게 만든 사회에 대해서만 비난하는 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결국은 모두가 똑같은 '악' 이다. 모두가 악을 행하는 공간에서 악을 행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길 만큼 작품의 전반에 총질이 난무한다.
『청부 살인자의 성모』는 오랜 내전으로 파괴되고 삐뚤어진 콜롬비아 사회를 그리고 있다. 콜롬비아의 도시 메데인에서 결성된 마약 카르텔인 '메데인 카르텔' 과 시카리오로 알려진 '청부 살인자' 들, 그리고 그들과의 전쟁을 선포한'정부'의 모습은 모두가 똑같이 폭력적이다. 이 모두를 서술하는 문법 학자 페르난도는 오랜 기간 메데인을 떠났다 돌아왔고, 그곳에서 만난 청부 살인업자 알렉시스와 사랑에 빠지며 , 자신의 어린 연인이 저지르는 살인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의 애정이 전달되며 문장을 읽는 독자는 알렉시스의 살인에 측은함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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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의 젊은이들은 왜곡된 현실을 더 왜곡해서 보려고 코카인을 피운다. 그들이 피우는 코카인은 '메데인 카르텔'에 의해서 콜롬비아는 물론 세계 곳곳에 밀매된다. 이들 카르텔은 자신들의 방대한 사업을 위험에 빠뜨리려는 사람들을 제거하기 위해 십 대 아이이거나 아주 젊은 청년들을 '청부 살인자'로 고용한다. 고용된 어린 청부 살인자들은 순수함을 버리려고 노력하며, 총에 맞지 않기 위해 총을 쏜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페르난도와 알렉시스 그리고 윌마르의 이야기는 메데인 카르텔이 와해된 후의 상황이다. 마약 카르텔이 무너진 것으로 상황이 나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야기시킨다. 어린 청부 살인자들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잃어버림으로 존재의 이유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범죄 조직을 결성하고 영역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 그들이기에 두려움과 실수로 자신이 죽게 될 것을 겁내하며 그 아이들은 '도움의 성모 마리아'가 자신들을 지켜주길 바라며 그 어떤 신자들보다 열심히 기도한다. 자신이 행한 살인에 대한 속죄가 아니라 앞으로 저지를 살인에도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자신을 지켜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들의 바람이 인자한 성모에게 온전히 닿을 것이라 믿는 어린 청부 살인자들의 순진함이 뻔뻔하고 악랄하다기 보단 측은하게 느껴진다.
오래 전 이곳을 떠났었던 페르난도가 다시 돌아와서 본 사바네타의 조그만 성당은 이전의 멋없고 생기 없는 모습을 버리고 활기가 넘치고, 꽃과 기적으로 충만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는 많고 많은 어린 청부 살인자들이 그만큼 열렬히 살인을 저지르고, 그만큼 열심히 성모에게 도움을 바랬기 때문이다.
작가는 페르난도의 입을 빌려 죽이라고 명령한 사람이 죄인일까? 작업을 수행한 젊은이가 죄인일까? 라며 우리에게 질문한다. 어린 청부 살인자들은 자신들을 죄인으로 생각하지 않기에 속죄하지 않으며, 단지 일을 수행할 때 실수하여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과연 그들은 죄인이 아닐까? 그들이 스스로를 죄인 아니라고 여기게 할 만큼 범죄가 일상이 된 당시 콜롬비아의 상황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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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와 알렉시스는 하수도가 되어버린 개천에서 신음하는 개 한 마리를 발견한다. 둘은 개를 물에서 꺼내주려다 그 개가 엉덩이에 심한 상처를 입은 걸 발견한다. 개의 상처를 보고 페르난도는 개를 하천에서 꺼낸다 한들 그 개가 살아갈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알렉시스에게 총으로 쏘아 죽이라 한다.
사람들을 수없이 죽였던 알렉시스는 상처 입어 똥물 같은 개천에 빠진 개를 죽이는 행동은 할 수 없다고 한다. 결국 페르난도가 알렉시스에게 총을 빼앗아 개에게 방아쇠를 당겨 개의 영혼을 천국으로 보낸다. 그리고는 희망도 없고, 행복도 없다며 자살하려 한다.
범죄와 살인, 부패와 폭력이 난무한 콜롬비아가 다시 예전의 콜롬비아로 돌아갈 수 없음을, 돌아간다해도 상처 받은 그들이 다시 예전의 행복을 찾을 수 없음을 페르난도를 깨달았기에 삶이 의미없다고 느낀 것이다. 그의 좌절이 잔인하게 들리지만 사실을 말하는 것이기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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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문학은 '마술적 사실주의' 를 구현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으로만 접했다. 꿈 속을 걷는 듯한 환상 속에서 현실에 대한 풍자의 언어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마르케스의 작품들 만큼 페르난도 바예호의 작품도 신선하다. 작품 속 인물이 나의 귀에 대고 자신에게 있던 일들을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하는 듯한 표현 방식은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열심히 기도했던 어린 청부 살인자들은 굳건한 믿음으로 천국에 갔을까? 아니면 그들이 저지른 살인 때문에 지옥에 갔을까? 책장을 덮은 후에도 많은 질문과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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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인으로 부터 선물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