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말리
에르베 르 텔리에 지음, 이세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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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말리

에르베 르 탤리에 ㅣ 이세진-옮김 ㅣ 민음사

 

노벨 문학상부커 상콩쿠르 상은 세계가 인정하는 세계 3대 문학상이다이 책 아노말리』 는 2020년 콩쿠르상 수상작이다권위있는 심사위원들이 숙고하여 뽑은 작품이니 작품성은 따 놓은 당상일 것인데과연 재미는 어떨지 의심스러웠다그래서 기대와 걱정을 가지고 읽기 시작하였고책장을 덮을 때는 설렘과 만족으로 꽉 채워진 기분이었다.

 

명성이 자자한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들 중 너무나 심오해서 접근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종종 있다일반적 독자가 다가가기 힘들만큼 심오한 작품이 과연 좋은 작품인 것일까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카프카가 말한 것처럼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세계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하는데너무 어려워 도끼는 커녕 수면제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그런 의미에서 아노말리』 는 가독성과 재미상상력은 물론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해주는 좋은 도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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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들의 죽음으로 삶을 꾸려 나가는 킬러 블레이크아들 루이를 홀로 키우며 건축가 앙드레 바니에와 연애 중인 영화 편집자 뤼시췌장암 4기 선고를 받은 비행기 기장 데이비드여섯 살 생일 선물로 '베티'라는 개구리를 선물받은 꼬마 소피아젊은 여성 흑인이며 소수 집단 우대 정책의 혜택을 받아 변호사가 된 조애나아노말리』 라는 유작을 남기고 자살한 소설가 빅토르 미젤게이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라고스에서 살아가기 위해 성정체성을 숨기며 가수 활동을 해나가는 슬림보이자신의 나이와 자신의 욕망 때문에 연인 뤼시와 어긋나버렸다고 생각하는 건축가 앙드레 바니에.

 

이들은 모두 2021년 310일 에어 프랑스 006 보잉 787기를 통해 파리를 출발해 뉴욕에 도착한 사람들이다이들을 포함해 비행기에 탑승했던 이백사십삼 명의 인원들은 상공에서 심한 난기류를 만나 추락하듯 기체가 흔들리는 아찔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또한 이 비행기에 탑승 했던 모두는 비행 3개월 후인 6자신과 똑같은 또다른 자신들과 마주하게 된다.

 

3월의 에어 프랑스 006과 6월에 갑자기 하늘에서 나타난 에어 프랑스 006은 복사기로 찍어 낸 것 처럼 똑같다또한 각각의 비행기기에 탑승했던 사람들의 DNA도 완벽하게 일치한다나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데 나와 같은 또다른 나도 저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도플 갱어'는 '자신과 똑같은 대상을 보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이다종종 영화나 문학 작품에서 접했던 경험이 있다내가 접했던 모든 '도플 갱어이야기는 기괴하고공포스러웠다하지만 아노말리』 는 나와 같은 또다른 나의 존재를 다른 감정으로도 대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하늘 아래 하나의 나만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또다른 내가 저지른 과오를 충고로 하여 연인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사람타인을 안아주듯 내가 나에게 위로와 힘을 주고받는 사람완벽하게 나를 이해할 또다른 나를 친구로 얻는 사람조금이나마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된 사람똑같은 ''에게도 결코 나눌 수 없는 소중한 것이 나에게 있었음을 알게 된 사람다시 살아나게 된 사람.

 

이들 모두에게 '나와 같은 또다른 나'는 공포의 대상이 아닌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자신을 직시하게 하며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게 하는 대상이었다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일(anomalie)이 발생할 때 우리는 당황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더 단단하게 다독일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


 

설명 불가능한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프로토콜 42'를 발동시킨다. '프로토콜 42'는 위기 대응을 위해 설계된 프로토콜 중 예측 불가능한 비상 상황을 위해 만들어진 대응 작전이다갑자기 하늘에서 나타난 도플 갱어가 도저히 예측 불가능한 비상 상황인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다양한 학자들은 이 상황이 발생하게 된 원인에 대해 세 가지 가설을 제시한다첫째는 서로 다른 차원의 공간에 구멍이 생겨 공간을 이동했다는 '웜홀가설둘째는 3D 프링팅으로 생체 물질을 만들었다는 '복사기가설세째는 우리가 모두 시뮬레이션된 인간이라는 '보스트롬 가설'이다모두 실제로 과학자들이 내세우는 과학 이론들이다.

 

작품 안에서는 '아노말리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해 제시된 세 가지 가설 모두 흥미롭다특히나 우리가 인공지능에 의해 '시뮬레이션 된 인간'이며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한다고 믿는 프로그램일 뿐이라는 '보스트룸 가설'이 가장 인상적이다이 가설은 발달된 문명은 기술의 성숙에 도달하기 전에 공해기후 온난화대멸종 등으로 멸종하게 될 수 밖에 없기에 인류는 존재하으며 우리는 시뮬레이션 된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또한 페르미 역설에서 우주에 100만 개의 문명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도출했는데우리가 외계인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흥미롭고 지적이다과학 이론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작가 에르베르 텔 리에는 프랑스의 예술가 집단 '울리포'의 일원이라고 한다그가 소속되어 있는 '울리포'는 다양한 문학적 실험을 하는 창작 집단이다그들은 창작의 자유를 방해하는 듯 보이는 '제약'을 적극적으로 작품에 도입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일상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잠재력을 끌어낸다고 한다그의 작품 아노말리도 제약을 도입하여 쓴 작품이라고 한다하지만 전혀 무겁거나 따분하지 않고 흥미롭게 느껴졌다그건 아마도 이야기의 힘이 아닐까 한다기발하고 짜임새 있는 이야기의 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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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추천하고 선물해준 그녀에게 감사한다좋은 책은 오래도록 남는다오래도록 남을 좋은 책이기에 여러 사람에게 나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선물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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