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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즈 어웨이 ㅣ 안전가옥 쇼-트 12
배예람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3월
평점 :
『좀비즈 어웨이』
배혜람 ㅣ 안전가옥
『좀비즈 어웨이』 는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의 열두 번째 책이다. 수록된 작품들에서는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배경으로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 삶의 무게, 희망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세 편의 단편은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기발하고 신박한 아이디어를 좋아한다. 하지만 휘발성의 가벼움은 싫다. 『좀비즈 어웨이』는 기발하고 신박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볼 지점이 많은 작품이라 좋다. 감성을 자극하는 문장과 시의성을 충분히 품은 소재들은 재미와 주제의식을 동시에 선사해준다. 좀비라는 독특한 소재를 중심으로 동성애, 자존감 , 경쟁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세 편의 단편은 잔인하고도 따스한 오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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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49
서재인. 평범한 내 이름은 혜나가 부르는 순간 특별해진다. 혜나가 하는 모든 말들이 나를 새롭게 한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발끝에 피구공이 채였다. 나는 공을 집어 들었다.
재인은 모든 것이 서툰 여고생이다. 그런 재인에게 발이 빠름을 칭찬하는 혜나는 언제나 재인을 응원한다. 혜나는 무엇이든 잘하고, 눈에 띄는 아이다. 그런 혜나가 재인에게 피구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며 말한다.
" 공을 받고, 던지며 살아남고 나면, 그다음에 필요한 건 집중이야."
모두가 스스로를 인지하지 못하는 좀비로 변하고, 그 좀비들 속에서 혜나를 지켜야 할 순간에 맞닥뜨리자 재인은 피구의 왕이 되어 혜나를 향해 돌진하는 좀비들에게 강속구로 날릴 준비가 샘솟는다. 혜나가 재인이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는 순간 재인이는 특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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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104
미안해, 나는 우비를 몇 번이나 다시 씌워 주며 사과했다. 내 손은 못하는 게 너무 많아. 성하는 내 말에 깔깔거리고 웃었다. 했으면 된 거잖아. 맞는 말이엇다. 그러네. 나는 멍하니 성하의 말을 곱씹었다. 했으면 된 거였다.
좀비가 전염병처럼 퍼져나가고 좀비를 막기 위한 백신이 개발된다. 하지만 백신은 좀비가 되는 것을 막기보다는 서서히 좀비로 변해가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하며 사람들은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 혼란스러운 세상에는 언제나처럼 가짜 뉴스와 이기주의가 도덕성을 상실한 채 판치게 된다.
좀비를 먹으면 좀비에게 물려도 감염되지 않는다는 소문은 좀비들이 인간들을 겁내게 만들어 버린다. 좀비 고기는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사람들은 좀비를 식용으로 팔게 된다. 지구상 가장 무서운 존재 인간은 여지없이 잔인함의 정점을 찍는다. 좀비 시체를 거래하는 정육점에서 일하는 '나'는 모든 것이 헛소리임을 알지만 '비참한 소리를 믿을 만큼 멍청하거나 절박한 사람들은 세상에 살아남을 가치가 없다'라는 논리로 세상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을 멍청하게 느낌과 동시에 자신이 그걸 바로 잡을 힘이 없다고 생각해서 애초에 포기해 버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머리통만 남아 인간도, 좀비도 아닌 머리통 성하를 만나며 힘 없고 의지없는 자신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나'는 미약하나마 작은 의지로 내일을 기약한다. 멋지다. 나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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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단편 모두 짧고 강력하다. 영상으로 표현되어도 좋을 작품들이다. 불쾌하게 피만 낭자하고 역겨운 좀비 이야기가 아닌 세심한 감정선이 느껴져서 더 좋았다.출판사 [안전가옥]의 작품들이 매번 기다려지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좋은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