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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일 년 후 ㅣ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평점 :

『한 달 후 , 일 년 후』
프랑스와즈 사강 ㅣ 소담출판사
발끝을 꼬물딱 거리게 하는 사랑이야기를 처음 읽은 것은 12-13살 정도 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의 첫 연애소설은 어른들 책장에 있던 [슬픔이여,안녕]이었다. 무료했던 방학, 우연히 손에 잡힌 책이었는데 앉은 자리에서 휘리릭 읽으며 가슴이 콩닥였던 기억이 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제목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나를 설레게 했던 인물들의 행동과 말들은 작가의 이름을 머릿속에 콕 새겨놓게 만들었다.
그녀의 이름을 다시 새기게 된 것은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였다. 하반신 마비인 주인공의 이름이 '조제' 였다. 조제는 프랑스와즈 사강의 [한 달 후, 일 년 후]에 폭 빠져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를 위해 절판된 사강의 책을 츠네오가 어렵게 구해주며 두 청춘은 사랑에 빠진다.
휘몰아치는 감정과 콩닥이는 느낌을 선사했던 프랑스와즈 사강의 소설을 사랑도 경험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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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얽힌 사랑의 잣대기들
베르나르는 자신을 자극하는 조제에게 새벽 네 시에 공중전화에 토큰을 넣고 전화해서는 말없이 전화를 끊는다. 조제는 자크가 잘생겼지만 통속적인 데가 있고 재미가 없다고 느낀다. 자크는 전화를 걸어 말 없이 전화기를 내려놓는 것은 늘 남자라고 말한다.
젊은이들을 흥미롭게 느끼는 중년의 알랭 말리그라스는 아름답고 난폭한 베아트리스를 월요일마다 보는 것이 행복하다.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 베아트리스 는 '한 달 후, 일 년 후, 우리는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될까요?...' 로 시작하는 [베레니스]를 혼자서 암송한지 5년이 된 열정적인 연극배우이다. 알랭의 친척인 젊은 청년 에두아르 말리그라스는 자신이 베아트리스에게 정신이 혼미해질 줄도 모르고 파리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탄다.
니콜은 베르나르와 결혼한지 삼 년이 지났지만 갈수록 그를 더욱 사랑한다. 알랭의 아내 파니는 베아트리스에게 에두아르 알리그라스를 소개한다.
▣누구에게나 결국 아픈 사랑
◐ p.154
그는 그녀가 필요했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이 세 개의 명제는 일련의 고통과 무력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아프다. 서로 사랑해도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힘겹다. 또한 혼자 사랑하는 사람은 더 힘겹다. 그렇다고 억지로 사랑하는 것은 상대를 더 비참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사랑은 아프고 힘겨운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랑을 주고 받고 싶어한다. 혼자가 두려워서 일 수도 있으며, 상대보다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공기가 좋아서 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감정은 무뎌지고, 때론 끝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이제 사랑이라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청춘들은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튀어 나올 것 같은 사랑을 언제나 선택한다. 그들의 열정이 부럽기도,짠하기도 하다.
◐ p.186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지겠죠.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공허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그들은 돌고 돌아 제자리를 찾는다. 하지만 그들에게 또 물결은 일렁일 것이며, 그들은 여지없이 물결에 몸을 맡길 것이고, 다시 돌아오거나 아니면 이번엔 아주 가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조제는 우리 모두가 행하는 사랑이 '한 달 후, 혹은 일 년 후' 변할 것이라는 시간에 대한 온전한 감각을 갖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향한 베르나르의 사랑이 한 때일 뿐이며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을 안다. 그래서 그녀는 격렬한 본능에 떠밀려 행하는 시간의 지속성을, 고독의 완전한 중지를 믿지 않는다.(p.137) 조제는 영원한 것은 없으며, 인간은 언제나 혼자임을 알고 있는 영리하지만 조숙한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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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 월요일, 말리그라스 부부의 저녁 모임이 다시 열렸다. 베르나르와 니콜, 베아트리스, 에두아르, 자크, 조제는 다시 서로를 바라본다. 말리그라스 부부의 모임에 참석한 모든 인물들은 작가 프랑스와즈 사강의 모습을 조금씩 투영하고 있다. 문학을 사랑하고, 지성과 재력을 겸비하였으며, 당당하기도 하지만 수줍으며 패기 넘치는 프랑스 문단계의 '매혹적인 악마' 사강. 그녀는 자신이 겪은 다양한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멋진 문장들을 건져냈다. 그녀의 문장들이 다시금 좋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