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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장난 - 2022년 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손보미 외 지음 / 문학사상 / 2022년 1월
평점 :

『2022 이상문학상 작품집』
대상수상작/손보미-불장난/ 문학사상
자의식이 강한 작가. 초현실주의적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작가. 감각적이고 은유적인 문장을 만들어내는 작가 이상. 이상은 요절한 천재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천재성과 독특함을 기리기 위해 1977년 문학사상사가 제정한 이상문학상은 우리나라에서 발표된 중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매년 후보작과 수상작을 발표한다. 이 상의 특징은 예술적인 완성도와 실험성이 가미된 작품 위주로 수상작을 선정한다는 것이다. 올해 2022년에 발표된 이상문학상 수상작들도 상이 가지고 있는 취지에 맞게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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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장난-손보미 / 대상 수상작
◑ p.29
어머니의 거실 집 중앙에는 커다란 책상이 하나 있었다. 사실 나는 그게 식탁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그걸 언제나 책상이라고 불렀고, 나에게도 그렇게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흘러가는 대로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진다. 그들은 모두 화가 나있는 듯 보이지만 의연한 척 한다.
'나'의 엄마는 외도를 한 아빠에게 실망하고 절망하지만 의연한 척 이혼을 진행했을 것이고, '나'의 아빠는 외도가 사랑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일탈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아빠와 결혼을 한 젊은 여자는 본인의 선택에 자신이 있었지만, 과연 그 선택이 자신의 젊은 날과 직장을 포기할 만큼의 가치가 있었을까 의구심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우연히 쇼파 밑에서 발견한 아빠의 라이터를 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종이를 태운다. 종이는 짧게 불꽃이 일지만 곧 사그라든다. '나'는 의식을 치르듯 25층 맨션의 옥상까지 계단으로 올라가고, 종이들을 한 장 , 한 장 태운다. '나' 의 일렬의 의식들은 들키지 않았지만, 옥상에는 '불장난'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 흔적으로 '나'는 모든 것이 발각되기를 원한다.
잔잔히 옥죄어 오는 탁한 공기는 사람을 더 힘겹게 한다. 조여오는 숨막힘과 곧 숨을 쉴 수 없게 될 거라는 두려움까지 합처져서 더 힘겹다.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든지, 집 밖으로 나가 버려야 한다. 읽는 내내 긴장감이 느껴지는 단편이었다. 예민한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변의 잡음이 팽팽하게 전달되었다. '손보미'작가의 장편들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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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강화길/우수작
◑ p.182-183
나는 그곳에 너와 함께 숨었다. 네가 또다시 버둥거렸다. 내게서 빠져나가려고 애를 썼다. 나는 다시 너를 달랬다. 쉬, 쉬,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내가 설명할게. 언제나 그랬으니까. 뭐든 설명하면 다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 납득할 수 있었으니까. 받아들이게 되었으니까. 너도 그럴 수 있을 거야. 그리하여 나는 너를 확 끌어안았다. 네 턱이 내 어깨에 묻혔다. 네가 헉, 하고 숨이 막히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것이 내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했다.
나는 공감각 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강화길 작가의 단편 [복도]를 읽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작가가 묘사하는 집의 위치와 형태가 도저히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아서 답답했다. 나에게는 작가가 구현하는 집의 모습를 알 수 있는 삽화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하지만 작품 전체에서 풍겨나오는 미스테리하고 음산한 기운은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강화길 작가의 [복도]는 기괴하다. 게다가 마지막 전개는 충격적이고 스산하다. '나'가 했던 것이 무엇이었든 그것은 변명 혹은 해명이 필요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복도 끝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집을 설명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상대를 납득시키거나, 받아들이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강화길 작가의 시선과 필력에 매혹되었다. 제목 때문에 관심이 일었던 [대불호텔의 유령]을 빨리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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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환한 날-백수린/ 우수작
◐ p.209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작지만 분명한 놀라움이 그녀의 늙고 지친 몸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번져 나갔다. 수없이 많은 것을 잃어 온 그녀에게 그런 일이 또 이러났다니.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 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이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 본 기억이 없어서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작은 앵무새가 사람의 마음을 그리 흔들 줄 그녀는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다.
억척같이 살았고, 그런 자신의 억척같음을 창피해 하는 딸이 서운하고 분해서 딸의 뺨을 때린 그녀는 앵무새를 돌보며 자신의 작은 세심함이 일깨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거칠기만 했던 지난 날을 떠올렸을 것이다. 조금만 더 감정을 펄럭여 볼 걸 후회했을 것이다. 자신이 세심했다면 딸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과일 트럭 차를 빼라고 말하는 경비원과 삿대질을 하며 싸우지 않았을 것이고, 똥이 안 나온다며 힘겨워하다 대장암으로 죽은 남편에게 암것도 모르고 변비약을 주며 타박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이 바쁘고, 힘겨워서 자신의 마음과 감정이 느끼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던 그녀를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그녀들이 있어 우리가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제라도 그녀에게 '아주 환한 날'이 와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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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은 2020년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관행처럼 수상작의 저작권을 출판사가 3년동안 행사하는 것에 대해 수상자였던 소설가 김금희를 시작으로 최은영, 이기호 소설가가 이의를 제기하며 수상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김승옥, 이청준, 박완서, 이문열, 신경숙 , 한강 등 유명 작가들도 이상문학상을 거쳐갔다. 이렇듯 권위있는 상의 수상거부는 문학계의 큰 파란을 일으켰을 것이다. 불공평한 관행에 대해 용기를 낸 멋진 작가들과 작가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공개적 사과와 함께 계약 조건을 수정하며 상의 권위를 지킨 출판사의 아량에 감동했다. 이상문학상이 오래도록 독특하고 예술적인 작품들에게 힘을 주는 상으로 남아있길 다시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