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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장난 - 2022년 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손보미 외 지음 / 문학사상 / 2022년 1월
평점 :

▣아주 환한 날-백수린/ 우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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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209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작지만 분명한 놀라움이 그녀의 늙고 지친 몸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번져 나갔다. 수없이 많은 것을 잃어 온 그녀에게 그런 일이 또 이러났다니.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 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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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이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 본 기억이 없어서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작은 앵무새가 사람의 마음을 그리 흔들 줄 그녀는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다.
억척같이 살았고, 그런 자신의 억척같음을 창피해 하는 딸이 서운하고 분해서 딸의 뺨을 때린 그녀는 앵무새를 돌보며 자신의 작은 세심함이 일깨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거칠기만 했던 지난 날을 떠올렸을 것이다. 조금만 더 감정을 펄럭여 볼 걸 후회했을 것이다. 자신이 세심했다면 딸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과일 트럭 차를 빼라고 말하는 경비원과 삿대질을 하며 싸우지 않았을 것이고, 똥이 안 나온다며 힘겨워하다 대장암으로 죽은 남편에게 암것도 모르고 변비약을 주며 타박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이 바쁘고, 힘겨워서 자신의 마음과 감정이 느끼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던 그녀를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그녀들이 있어 우리가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제라도 그녀에게 '아주 환한 날'이 와서 다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