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대화를 시작합니다 - 편견과 차별에 저항하는 비폭력 투쟁기
외즐렘 제키지 지음, 김수진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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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대화를 시작합니다

외즐렘 제키지 김수진-옮김 타인의사유

 

인터넷 서점 ' 예스24'<책읽아웃>을 즐겨 듣는다. 요근래 <책읽아웃>에서 이 책 [혐오와 대화를 시작합니다]가 소개 되어 반가웠다. 황정은 작가와 두 명의 패널이 각자 준비한 책을 소개하는 코너였다. 패널 중 한 분이 이 책을 소개하였는데, 황정은 작가님과 나머지 한 분의 패널은 '극단주의자와의 대화' 라는 소재에 대해서 내가 처음 이 책의 제목을 통해 느꼈듯이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소개하는 패널은 책을 읽어보면 저자가 주장하는 바에 어느 정도 공감하실 거라 말하였고, 나또한 그말에 동의한다. 책의 저자 외즐렘 제키즈가 말하듯 그럼에도 우리는 나와 다른 상대와 '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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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을 위한 '커피 타임'

 

저자 외즐렘 제키지는 쿠르드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터키 이민자 출신이며, 2007년 덴마크 의회에 입성한 최초의 소수 민족 여성 의원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소수 민족 여성 의원이 되면서 여기 저기에서 혐오 메일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에게 퍼부어지는 혐오를 무시하는 걸로 대응했다. 그러다 그들의 혐오와 위협이 자신 혼자만에게 가해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자녀와 가족들에게도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공포를 느끼게 된다.

 

공포로 그녀의 삶은 엉망이 되고, 그녀는 친구에게 위로 받기 위해 울분을 토한다. 그런데 친구는 위로는 커녕 그녀에게 "그 사람들이 너 같은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듯,너도 지금 그런 사람들을 함부로 재단하고 있잖아."(p.17)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깨닫는다. 자신의 행동과 극단주의자들을 대하는 태도에도 인종차별적인 것이 존재하며, 자신을 혐오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자신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인종을 차별한다는 것은 소수의 인종에 국한 된 것이 아니다. 다수의 인종에 대한 소수의 인종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도 포함되는 것이다. 결국 자신과 다른 (인종, 종교,민족성, 섹슈얼리티, 젠더, 나이) 인구 집단에 대해 혐오적 편견을 지닌 사람을 모두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깨달음은 그녀에게 자신을 혐오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야 함을 상기시키며, 대화를 위한 프로젝트 '커피 타임'을 만들게 된다.

 

'커피 타임'을 진행하며 그녀는 대화의 대상들이 사회의 분열과 불화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책임에 대해 주로 의회, 지방정부, 학교, 이웃이 바뀌어야 한다고 그들이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은 무언가 해야 한다고 느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각자 자신의 몫을 해야만 민주주의는 잘 돌아가는 것인데....나의 변화에는 수동적이고, 타인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적극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다는 것은 모순이다.

 

혐오는 되갚음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흔하다. 저자 또한 덴마크인들이 가지는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일반화하는 행동을 경험하고나서 덴마크인들을 인종차별주의자로 일반화해 버렸다고 한다. 다양성을 위한 배려를 특혜로 꼬집고, 상대의 문화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도 갖추지 못하고, 단 한번의 경험으로 모든 것을 재단해버리는 것에서 혐오는 시작된다. 그것은 무슬림이 덴마크인들을 대할 때나, 덴마크인들이 무슬림을 대할 때나 모두 적용된다.

 

대중의 혐오와 분노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언론과 정치인들이 우리의 뒤에 조용히 숨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때로는 우리의 화합보다는 우리의 분열이 누군가에게는 이익이 될 수도 있다. 상대가 나에게 가지는 편견만큼 나도 상대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지, 상대가 나에게 무례한 만큼 나또한 상대에게 무례하게 굴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우리는 서로를 좀더 제대로 직시하게 될 것이다. 대척점에 있는 상대가 변화하길 바란다면 나의 편견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p.127)

 

일반화

 

외즐렘은 페이스북에 일부 덴마크인들이 저지르는 인종차별적, 현학적 행동을 덴마크인 전체의 의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커피타임'을 제안했다. 외즐렘의 페이스북 글에 이의를 제기하며 ''라는 이름의 여성이 만남을 요청한다.

 

미가 가진 덴마크인들에 대한 생각은 지나쳐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종종 욱하는 이유는 오랜 기간 덴마크 양부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으나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했으며, 동양인인 그녀를 바라보는 덴마크인들의 지긋지긋한 선입견(최근에 이주한 사람, 현금 지원 대상자, 무교육자)을 언제나, 그리고 매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랜기간 무시되고 소외되었다. 그 오랜기간 동안 그녀는 자신의 평생을 살아갔던 땅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좌절한다. 그녀의 일생에서 그녀가 만난 모든 사람이 인종차별적이고 폭력적이었다면 세상을 그렇게 인식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물론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하지만 소수의 누군가의 삶 속의 모든 경험이 그랬다면, 소수의 차별을 외면했던 사회의 문제이다. 일반화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정말로 그렇다는 것을.. 그렇다면 그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사람들 때문에 세상 전체를 삐뚤어지게 볼 수 밖에 없어 편견적인 사람이 된 미가 문제일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저자는 상처 받아 편견을 가지게 된 사람들에게 당한 만큼 되갚아 주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오히려 자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상대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앞으로를 살아가기 위해선 그들에게 꼭 필요한 말인 것도 같다.

 

극단주의

 

극우 무슬림 집단은 유대인,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며, 민주주의를 위한 투표를 반대한다. 또한 그들은 코란의 말씀을 극단적으로 해석하고 행동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공공연하게 이들 단체를 비판했지만 그들과의 커피타임은 가진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과의 대화 후 그들의 태도를 정당화 해준다는 여론의 비난이 두려워서이며, 그들의 광적인 주장에 공감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들과의 대화는 변화 없는 소모전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극우무슬림들이 민주주의와 투표를 반대하는 이유는 덴마크의 법률이 코란을 바탕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p.199) 이게 웬 억지인가? 자신들의 종교 말씀에 따른 제도가 아니기에 그 곳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 곳의 제도와 법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누군가에게는 말도 안되는 억지이지만, 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동성애를 질병으로 정의 내리고, 어떤 상황이든 이혼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불에 빠진다고 굳게 믿는 극단적인 그리스도교 단체들이 있다. 이들은 변화를 반대하고, 자유로움을 변덕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대에 따라 변화한 다양한 가치관을 반대한다.

 

시대는 변한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오래된 믿음과 진리만을 고집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종교의 말씀을 따르는 목적이 말씀을 실천하는 것에 있는 것인지, 종교를 통해 위안을 얻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에 있는지 극단적으로 종교의 말씀에 매달리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저자는 이들의 주장이 억지스럽고, 극단적이며, 위선적이더라도 '표현의 자유'라는 취지로 그들의 의견도 지켜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폭력을 선동하는 것만 아니라면,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금지하여 지하로 스며들게 하는 것보다는 광장에서 토론하고 비판하는 것이 더 건강하게 사회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p.214) 덴마크의 투표를 반대하는 일부 극우이슬람들은 소수이다. 대다수의 관점에만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모순이다. 표현의 자유는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를 인상 쓰게 만드는 일부 사람들이 광화문에서 소리 소리 질러대는 것을 우리가 허용해야 하는 것은 이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표현의 자유 앞에 평등하므로. 또한 비판은 자유로워야 하므로. 그것이 민주주의와 독재의 차이다.(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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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377

터널 끝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끝에 빛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터널이 굽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대화는 불필요하며, 상대를 변화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p.361) 개인들의 대화는 무의미하며 집권 권력이나 지도층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험한 발상이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권력이 사회를 장악하면 역시나 또다른 쪽은 권력을 통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말할 것이다.

 

대화가 가로막히는 가장 큰 이유는 서로가 상대를 자신의 방식으로 바꾸려는 목적이 너무 뚜렷하기 때문이다. 모두의 의견은 소중하며, 모두가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할 권리는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서로의 다름을 인식하고 존중하며 ,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고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오래 걸리더라도 찾아야 한다. 또한 해결되지 못하더라도 상처는 남기지 말아야 한다.

 

공감의 힘은 크다.(p.414) 상대의 입장이 되어 공감을 하다보면 내 입장만 고집할 수는 없게 된다. 상대를 인정하고, 잘못이 있다면 서로를 들여다보고 사과하며 , 가진 것을 서로 나눈다면 분쟁을 넘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대화는 공감을 불러온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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