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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 망가진 책에 담긴 기억을 되살리는
재영 책수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평점 :
너무 예쁜 책을 만났다. 책을 만든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이 그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기술자이자 관찰자, 수집가인 재영 책수선가는 오래되어 낡아진 책을 수선하며, 책이 살아온 삶을 통해 그 책을 소중히 여기는 의뢰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수선 전 책과 수선 후 책의 사진은 꼭 마술과도 같다. 또한 낡은 책의 사진도 왠지 가슴이 뭉클하게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사진들의 색감과 책 표지와 면지의 노란색은 재영 책수선가가 독자에게 전해주고 싶은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다.
▶나는 책 수선의 이런 유연한 변화와 닮음이 좋다. 감쪽같이 마술을 부린 듯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복원 작업도 멋진 일이지만, 세월을 이겨낸 그때그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수선의 가능성에 더 흥미를 느낀다. 그런 흔적이 보다 아름답게 남을 수 있도록 각각의 책이 쌓아온 시간의 형태를 정돈하고 다듬어주는 일이 책 수선가로서 나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p.49
사람들은 수선가에게 책을 가져오며 '복원'해 달라고 요청한다.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하는 의뢰인의 요구이지만 수선가는 불편하다. '복원'은 원래대로 회복하는 것이고, '수선'은 낡거나 헌 물건을 고치는 것이다. 복원은 한 가지 형태로만 결과물이 나오지만, 수선은 자유로운 다양한 시도를 통해 전혀 새롭거나, 더 아름답거나, 원본에 가깝지만 조금은 차이를 가진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결국 수선은 흔적은 남겨두고 상태는 오래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책 속 밑줄은 그 시간에 가졌던 나의 사유를 불러오고, 책 속 작은 얼룩은 나의 일상을 떠올리게 한다. 의뢰인들이 수선가를 찾아 오는 이유는 자신과 함께 했던 그 모든 것이 담긴 책을 지나온 시간과 함께 더 오래 간직하려는 의도이다.
'북아트'를 배웠던 경험이 있다. 다양한 기법으로 책들을 만들어보았었다. 책의 시작하는 부분에 배치되어 있는 책에 관련된 용어가 나열된 그림들이 그래서 반가웠다. 다른 이들에게는 생소할 '가름끈' '배면' '헤드밴드'...라는 용어들을 다시 접하니 옛 친구를 만난듯 신났다. 또한 책의 내용 중 따로 지면을 할애해 '나의 오랜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라며 수선에 필요한 도구들을 소개하는데 역시나 반가운 물건들을 만났다. 본폴더, 프레스, 칼, 가위, 책등에 바를 접착제 전용 붓 등 구석에 처박아 둔 한때는 매일 만났던 나의 친구들을 다시 꺼내보아야겠다.
책 읽기를 좋아한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 욕심도 많다. 하지만 책장 가득 채워진 책 중 재영 책수선가에게 맡길만큼 좋아하는 책을 만들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며 아쉬웠다. 두고 두고 읽거나, 반복해서 읽는 책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책을 쫓기듯 읽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조금 여유를 두고 책을 깊이있게 읽으며 책과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