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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
링 마 지음, 양미래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1월
평점 :

믿을 수 없을만큼 '코로나19'를 생각하게 한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안이 없을 경우 우리가 겪이 책은 믿을 수 없을만큼 '코로나19'를 생각하게 한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안이 없을 경우 우리가 겪을 일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단절』의 작가 링 마는 미국 문단을 이끌 차세대 작가이며, 미국이라는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민자이다. 책 속 주인공 캔디스는 중국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가게 된 여성으로 작가와 여러 면에서 겹쳐진다. 독특하게도 인물들의 대화나 인물들의 생각을 표현하는 '큰따옴표와 작은따옴표' 가 사용되지 않아 전염병이 퍼진 상황의 답답함과 긴장감이 문장들을 읽어나가며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2018년의 작가 링 마가, 2011년을 배경으로 그린 전염병의 세계를, 2021년 코로나19로 일상이 '단절'된 상황에서 읽는다는 것은 독특한 경험이다.
2011년 중국 선전 지역에서 발발하여 '선 열병'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전염병은 뉴욕을 뒤덥는다. 뉴욕의 출판 컨설팅 업체에서 근무하는 중국계 미국인 20대 캔디스 첸은 아시아의 공장에 성경 제작을 발주하는 '상품 코디네이터'이다. 그녀가 상대하는 거래처들이 주로 중국이라 전염병은 그녀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개인적으로는 함께 뉴욕에 거주하던 남자친구가 뉴욕을 떠나 좀 더 경쟁적이지 않는 도시로 떠나길 제안했지만 거절한 상황이고, 그녀는 그에게 임신 사실을 숨기고 매일 출근하고 있다. 뉴욕에 불어닥친 허리케인은 전염병을 곳곳으로 전파시키고 캔디스는 몇몇 생존자들과 그룹을 이루었으나 함께가 더 불안하다.
종말이 지나고 새로운 서막이 열렸다. 서막이 열리던 시점에 무리의 총인원은 여덟이었다가-내가 합류하면서-아홉으로 늘었으나, 아홉은 줄어들 일만 남은 숫자였다. 『단절』 .....p.9
허리케인이 강타하고 전염병이 퍼져 모두를 휩쓸어버린다.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합류하게 된 캔디스는 자신의 임신 사실을 무리에게 숨긴다. 그들 무리를 이끄는 '밥'은 상황을 하느님이 인간에게 내린 저주처럼 여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행한 상황이 닥치면 인간은 그동안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을 자책하며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나보다. 밥은 그들 무리의 사람들이 전염병에 면역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신의 선택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p.55) 무리는 생필품을 얻기 위해 이곳저곳을 습격하기 전 스스로가 만든 기도문으로 기도를 하고, 그들 스스로가 신의 대리자 역할을 한다는 듯 전염병에 걸려 의식이 없는 사람들을 좀비처럼 처형한다. 밥을 따르는 사람들은 불안한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기에 그를 따른다지만, 밥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다.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무리에게 힘을 과시하고, 자신의 생각을 무리에게 강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게 그의 생존에 더 유리해서 일지, 아니면 원래 평소에도 그런 사람이라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본성이 드러나는 것인지 궁금했다. '힘을 합쳐 역경을 이겨내야 한다'라는 우리가 가지는 보편적인 생각이 과연 우리를 올바르게 이겨낼 수 있게 해줄지 생각해 본다. 밥이 이끄는 무리는 밥의 통제 안에서 전염병이 아닌 다른 이유로 무리 중 일부를 잃기 때문이다.
'선 열병'은 감기처럼 오지만 몸의 다양한 기능에 영향을 끼치다 결국엔 뇌를 공격한다. 공격된 뇌는 병에 걸린 사람들을 그가 평소에 했던 반복적인 일상을 무한 재생하게 한다. 멈출 수 없는 행동의 반복은 그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말라 죽게 만들며 멈추어진다. 우리가 행하는 일상의 반복은 무언가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가 만든 행동이고 강박이다. 경제적 여유를 위해서는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며, 주말도 반납하며 일해야 하고, 좀 더 멋진 외모를 만들기 위해선 정해진 시간만큼 공복을 유지하고, 매일 꾸준히 운동을 게을리하면 안된다. 가족을 잘 이끌기 위해선 매일 집안을 청소하고, 정해진 끼니를 챙겨야 한다. 모두가 조금은 스스로를 제어하면서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루틴이 의식을 빼앗기고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선 열병' 에 걸린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든 루틴에, 나를 맞추면서 사느라 힘겹다고 느낀다면 그 행동을 이젠 그만해야 할 때이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건 주어진 환경에 스스로를 맞추어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새삼느끼는 때이다. 스스로 선택한 단절이 아닌 강요받고 있는 단절의 상황에서 살고 있기에 우리는 종종 일상의 소중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 『단절』을 읽으며 내가 반복했던 일상들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었는지 되새기게 된다. 우린 어쩌면 전염병이 없던 시절에도 스스로를 '일상의 굴레'에 가두고 살지는 않았나 생각해 본다. 내가 행하고 있는 매일이 나를 가두지 않게 해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