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단편을 읽기 힘들어 하던 때가 있었다. 남들은 짧은 분량이라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생각할 꺼리를 준다며 선호했지만, 나는 도대체 무얼 이야기 하는지 알 수 없어 꺼리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단편이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하고 있다. 슬금슬금 담고자 하는 주제도 파악되고, 짧은 문장 안에 이야기의 기본 구조가 모두 담겨 마술을 경험하는 것 같은 즐거움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 단편소설을 언급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작가는 '안톤 체호프' 일 것이다. 그의 단편은 우선 이야기의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제시하는 주제가 철학적이고 심오하다.

 

【6호 병동】

 

정신병원 6호 병동에는 5명의 정신병자가 감금되어 있다. 의사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처음 부임했을 때 이곳의 열악함을 마주하고 이곳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의지만으로 불가능함을 생각하고 쉽게 포기한다. 안드레이는 의사일에 흥미를 잃으며 지내다 우연히 6호 병동의 젊은이 이반과 삶과 철학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 대화를 시작으로 6호 병동을 자주 드나들게 되고, 의사의 잦은 방문은 이상한 소문을 몰고 온다.

 

두 지성의 대화는 흥미롭다. 의사 안드레이는 자신의 위치에 맞게 이반에게 충고를 전달하지만 이반은 그의 충고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모순을 자신의 언어로 반박한다. 6호 병동에 갇혀서 자유를 억압 당하는 자신보다 병원 밖의 사람들이 더 부조리하며, 모순적이고, 인간적이지 않은데 왜 그들은 자유롭고 자신들은 갇혀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에 의사는 어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며 평화와 만족은 내부에 있다고 달랜다.(p.66) 이반은 고통에 반응하고, 공포에 겁먹는 것이 진짜 살아있는 것이니, 잘못된 것을 알고도 모른척하며, 힘들고 고통스러운데도 망각하는 것은 살아있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의사로써 충고하는 안드레이가 과연 고통과 괴로움에 대해 겪어 보았는지 반문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떠들지 말라는 소리다. 쉽게 던지는 충고와 뻔한 이론적 위로가 얼마나 모순적이며, 상대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지 생각해 본다. 이반의 외침은 모두 타당했다. 그가 잘못된 것이 아닌데 모두 그를 정신병자라 말하고 격리함으로 그를 진짜 정신병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모순과 억압은 사람을 충분히 미치게 할 수 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바닷가에 새로운 얼굴이 나타난다. 그 사람은 바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다. 금발의 여자인 그녀에 대해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라고 불린다. 휴양지 얄타에서 2주째 쉬고 있던 구로프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보이며 가까워진다.

 

원래도 여러 여성들과 가벼운 바람을 피웠던 구로프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었던 안나와의 만남도 그럴거라 예상하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우린 언제 어떤 감정이 우릴 휘몰아칠지 예상하지 못한다. 일상으로 돌아온 후 그녀가 더 생각나고, 만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안타까워진다. 충동적으로 그녀를 찾아간 구로프는 그녀에게 진심을 고백한다. 우리는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모든 감정에 충실할 수 있을까? 사회와 제도 안에서 감정에 충실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럼 거짓 감정과 얼굴로 살아가는 것은 과연 옳은 걸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두 연인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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