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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공적인 연애사 - 당신을 사랑하기까지 30만 년의 역사
오후 지음 / 날(도서출판) / 2021년 10월
평점 :

초점을 '연애'에 맞춘 세계사이다. 원시시대 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연애가 어떤 변화를 가졌는지 보여준다. 연애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남과 여, 사랑, 성, 결혼제도, 출산에 대해 다루고 있다. 다양한 사진 자료로 지루하지 않고 이해하기 쉽게 접근하며, 다양한 조사 자료로 신뢰성도 갖추고 있다.
극도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남녀관계였던 원시시대를 넘어 고대와 중세는 점점 권력 중심의 가부장사회가 자리잡으며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며 그것을 당연시 여겼다. 여성과 남성의 성적인 관계도 사회와 정치, 종교, 가치관의 영향으로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다는 것이 수긍이 간다. 근친상간, 일부다처, 동성애, 아동성애, 일부일처, 혼외정사 등 지극히 성에만 집중했던 시대를 지나 근대에는 '로맨스'가 탄생한다.
흑사병은 세상에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며 개인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그러면서 억압 되었던 욕망이 터져 나온다. 이에 자신들이 입지를 더 확고히 하기 위한 종교계는 철저한 윤리관을 강요하며 금욕을 요구하게 된다.
근대에는 중세의 고전적 귀족보다 지식을 갖춘 부르주아가 자신들만의 특별함을 위해 탄생시킨 '매너'로 차별화를 꾀했다. 매너와 로맨스가 합쳐져 '사랑'이라는 개념이 생겨나며 중세와 달리 사랑이 전제된 결혼을 하기 시작한다. 부르주아 들은 귀족보다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인정받기 위해 까다로운 예절을 지키고 금욕을 강요하며, 성욕을 정신병으로 취급하기에 이르게 된다. 성욕도 인정하지 않았던 사회가 다양한 형태의 성에 대해 얼마나 편협했을지 상상이 간다. 성욕을 정신질환으로 몰아가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히스테리와 트라우마를 겪으며 힘겨워했다.
금지는 잘못된 환상과 자기 학대를 불러온다. [킨제이 보고서] 프로젝트에 참여한 다양한 남녀들은 금기시했던 자위, 동성애, 성매매, 혼외정사, 혼전정사, 양성애 등을 경험했다고 말하며 성을 인위적으로 억압하는 것이 의미없음을 확인시켰다.
결혼제도에 얽매여 일부일처제와 이성의 결합만을 인정하는 시대는 지났다. '콘돔과 피임약' 은 자유연애를 가능하게 했으며 성을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결혼제도에 속해 있는 사람들도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연애, 결혼, 출산이라는 공식에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적인 연애와 감정과 시간을 할애하는 것에 피곤함을 느껴서 '4B'(비혼,비출산,비연애,비섹스)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인구감소를 가져오기 때문에 비상상태이기도 하다.
연애는 우상학적 시선으로 접근하면 평등하지 않다. 이에 불만을 품은 집단인 '인셀'들은 여성을 향한 반사회적행동으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자신들이 누려야 할 것을 박탈 당했다고 생각하는 비뚤어진 생각에서 시작했기에 수긍하기 어렵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로 대표되는 자유롭고 구속없는 연애 방식인 '폴리아모리'는 새로운 개념의 연애 방식이다. 전통적인 시선에서 마주보면 그들의 연애 형태는 문란함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기존의 형식적이기만 한 사회 질서에 저항하고, 좀 더 개인과 욕망에 충실한 형태의 관계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언제나 제도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해서 다양한 문제점을 발생시켰다. 다양한 형태의 연애가 존재함으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도 생겨났다. 그러므로 시민결합제도는 꼭 필요한 제도이다. 우리나라도 '생활동반자법'이 여러모로 필요하다. 연애와 결혼을 좀 더 가볍고 다양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이 작품을 접할 때 쯤 넷플릭스에서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시리즈를 보게 되었다. 영국 10대들의 성에 대한 다앙한 고민을 좌충우돌 해결하는 조숙한 아이 오티스의 이야기가 보는 내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선정적인 장면에만 집중하면 문란한 10대들의 모습에 혀를 찰 것이다. 하지만 문란으로 치부하지 않고, 좀더 즐기며, 건강한 성을 위해 나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시선을 바꾸면 성숙하고 진지한 10대들의 모습으로 보였다. 자신의 성적 취향을 받아들이고, 시행착오를 숨기며 넘기지 않고, 여러 층의 다양한 성을 인정하며, 서로의 사랑을 응원하는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 책에서도 억압과 금지는 잘못된 환상으로 사고를 일으키고, 자기학대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도 성에 좀 더 솔직하고 다양한 형태의 성을 받아들이며, 현실에 맞게 제도를 바꿔 나가야 할 때이다. 그것이 전통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 구성원 모두를 인정하는 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또한 음지로 던져 버린 성이 범죄에 이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은 생명을 잉태하는 고귀한 행위이다.그러므로 창피하게 생각하거나, 잘 안다는 것이 문란하다는 인식은 이제 그만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