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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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엘리자베스 문의 신간 [잔류 인구]가 출간되면서, 그녀의 이전 문제작 [어둠의 속도]가 새롭게 개정 출판되었다. [어둠의 속도]는 우리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생각하게 한다. 또한 첫 출간된 당시에 그녀가 제시했던 다양한 문제점에서 우리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는 것을 인지하게 한다. '빛의 속도'는 들어보았으나 '어둠의 속도'라는 단어는 생소하다. 빛과 어둠, 앞과 뒤는 하나가 존재하면 다른 하나는 필수적으로 존재하는 관계이다. 빛이 반짝이는 속도가 있으면 당연히 어두워지는 속도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속도의 기준은 언제나 빛이다. 무엇을 기준으로 두느냐에 따라 생각의 방향이 달라진다. 그렇다고 다른 하나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그것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임신 중 진단한 자폐를 모두 치료할 수 있게 된 근미래, '루 애런데일'은 치료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태어난 마지막 남은 자폐인 세대다. 루는 전원 자폐인으로 구성된 한 거대기업의 특수분과 ‘A 부서’에서 근무 중이다. 루와 A 부서 직원들은 사회 능력이 결여되어 정상인들과 같은 소통은 불가하지만, 패턴을 발견해내는 천재적인 수학 능력을 통해 회사에 크나큰 이익을 안기고 있다. 덕분에 그들은 심신 안정에 필요한 전용 주차장, 전용 체육관, 전용 음악시설 등 특별 복지혜택을 제공받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상사 진 크렌쇼가 부임하며 상황은 달라진다. 크렌쇼는 자폐인들만을 위한 혜택 일체를 부정하고, 급기야 그들을 사내 연구소에서 새로 개발 중인 ‘정상화 수술’의 모르모트로 사용하려 든다. 정상이 된다면 특별 복지혜택을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무지(無知)는 지(知)보다 빨리 확산하지."

린다가 씩 웃고 고개를 꾸벅인다.

"그러니 어둠의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를지 몰라,

빛이 있는 곳에 늘 어둠이 있어야 한다면,

어둠이 빛보다 먼저 나아가야지.

[어둠의 속도/p.22]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내가 속해 있지 않다고 존재를 부정하면 안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런 실수를 범한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그건 다수가 소수에게 행하는 폭력일 때가 대부분이다.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자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일부 사람들은 소통하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비하면 적은 수인 소수에 속한다. 작품 속에서 대부분에 속하는 사람들이 '루'처럼 생각하고 표현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당연히' 자신들처럼 되길 원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폭력이다. 그리고 그건 기준의 중심을 자신들로 놓고 좋은 것과 나쁜 것, 정상과 비정상을 자신들 기준으로 나누었을 때 할 수 있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자폐증을 앓는 게 좋다고요?"

의사의 목소리에 꾸중하는 듯한

어조가 섞인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이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나는 나 자신이기를 좋아합니다.

자폐증은 나 자신의 한 부분입니다.

전부가 아닙니다.

[어둠의 속도/p.394]

 

자폐를 자신의 일부로 인식하고 그런 자신을 온전히 좋아하는 루의 모습에 많은 걸 생각할 수 있었다. 그들의 일부인 자폐를 부정하고 병으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의 기준이다. 그들을 대하는 우리가 불편하기 때문에 대부분인 우리처럼 그들이 바뀌길 바라는 것이다. 20세기까지 동성애는 정신병으로 인식되었다. 대부분의 이성애자들게는 이해할 수 없는 저주받을 행동이었다. 고칠 수 있는 병이라 생각하여 뇌의 일부분을 절제하거나, 화학적으로 거세를 시행하며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그들의 행동은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닌 그들의 타고난 성향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동성애자들은 우리와 소통할 수 있는 대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자신들을 변호하거나 자신들을 이해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자폐를 가진 이들은 우리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자신들의 생각을 전달할 수 없다. 그렇다하더라도 그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바꾸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인다. 그들의 성향을 바꾸려는 수단을 만들기 보단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자폐를 가진 대부분의 가족들이 그들과 소통하는 것을 가장 원하듯이 말이다. 그들과 소통하게 된다면 그들이 일부 분야에서 보여주는 뛰어난 천재적인 행동들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한층 더 앞선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 엘리자베스 문은 자폐를 가진 사람을 가족으로 둔 당사자라고 한다. 그가 사랑하는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했던 많은 생각들이 작품 속 주인공 루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듯하다. 그가 행했던 것처럼 그들을 바꾸려 하기 보단 그들을 이해하려 하는 것이 필요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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