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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요 네스뵈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10월
평점 :

'가족' 이라는 단어를 다시 되새기게 된다. 일본의 코미디언 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을 '때로는 아무도 안볼 때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 싶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다케시가 표현하는 가족은 지긋지긋하지만 정감스럽다. 요 네스뵈는 [킹덤]에서 가족을 왕국을 지키기 위한 일원,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왕국을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무사처럼 그리고 있다. 왕국은 굳건하지만 그곳을 지키기 위해 가족은 새하얗게 질려있다. 오프가르 왕국을 지키는 가족은 죽음의 상황이 아니고선 철새처럼 언제나 때가 되면 왕국으로 돌아와 하나가 된다.
산 정상에 호텔을 짓겠다는 프로젝트를 가지고 뽐내기 좋아하는 새 '밭종다리' 를 닮은 칼이 십오 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돌아온 동생 칼을 바라보는 수줍음과 조심성이 많은 새 '목도리지빠귀' 를 닮은 로위의 감정은 복잡하다. (p.90) 너무 다른 두 형제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다 서로 다른 삶을 선택하고, 다시 고향 오스에서 옛 기억을 더듬으며 '함께'를 계획한다. 칼의 귀향은 작은 마을 오스를 서로 다른 이유로 들썩이게 한다. 이를 바라보는 형 로위는 언제나 그랬듯이 칼로 인해 많은 일이 벌어질 것이며 자신이 항상 그 일로 인해 무언가를 하고 있으리라는 걸 안다.
지독한 사랑은 가끔 악취가 풍긴다. 사랑은 차지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 일으키고, 욕망은 자제하기 어렵다. 그들 가족의 사랑은 서로를 '수치'스럽게 만들지만,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멈출 수 없어 자책하며 무력감에 빠진다. 냄새는 눈에 보이지 않아 쉽게 숨길 수 없다. 그들의 냄새를 맡은 누군가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수치를 모두가 알게 되는 것을 위협으로 생각하며 자신들만의 도덕을 형성하고(p.342)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해결에 이른다. 그들 가족의 수치를 해결해 나가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로위가 측은하다. 로위는 행동하지 않은 것에 대해 수치스러워하며, 가족의 수치스러운 행동을 냄새가 새나가지 않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 입장이 되어 버린다. 로위에게 상황의 해결을 요구하는 가족들 때문에 로위는 소진된다. 자신의 수치는 자신이 안간힘을 다해 끊어야 한다. 나의 수치로 가족에게 또다른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면 그때부터 왕국은 구린 냄새가 진동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의 왕국은 굳건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다양한 장애물이 존재하겠지만, 언제나처럼 그들은 서로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자신들만의 도덕을 만들며 살아남을 것이다. 너무 형제에게 이입했나 보다. 그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으며, 그들에 의해서 훼손된 인물들에게 동정이 가지 않으니 말이다. 그들 왕국에 '수치심'이라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카인은 하느님의 사랑을 독차지 한다고 생각했던 아벨을 참지 못한다. 로위는 절대자의 사랑을 수치로 여기며 아벨인 칼을 지킨다. 지긋지긋한 형제의 사랑은 끊임없이 서로를 꿈꾸고, 놓아주고, 죽일 것이다. 어떤 식의 결말이더라도 로위에겐 '수치'라는 단어를 자신에게서 떼어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떼어놓기 위해선 수치스러운 행동을 멈추거나, 수치를 결정짓는 잣대를 수정하거나, 죽음을 통해 멀어지는 방법 밖에 없다. 우리는 각자 어떤 방법으로 나의 수치를 떨구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과연 어떤 방법이 가장 올바른 방법인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746페이지에 달하는 어마한 분량의 작품이었지만 자극적인 소재와 다면적인 인물들, 잘 표현된 문장으로 몰입도 있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가족, 도덕, 수치 등의 주제를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도 있었지만 작가가 잊지 않고 언급하며 이해할 수 있게 지면을 할애해준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이름만 듣고 접해보지 못했던 '요 네스뵈'의 작품이었다. 가속도가 좋은 그의 작품들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네이버독서 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