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입원했습니다 - 요절복통 비혼 여성 수술일기
다드래기 지음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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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어릴 때부터 '만화'를 읽어내는 것이 어려웠다. 도대체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림과 글을 한꺼번에 읽어내기가 어려웠나보다. 그래서 만화로 된 이야기라고 하면 무조건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다드래기 작가의 [혼자 입원했습니다]는 만화에 대한 인식을 바꾼 작품이 되었다. 한 면에 너무 많지 않은 4컷의 만화와 말풍선 속 적당한 분량의 대사들은 나에게 잘 입력이 되고 있다는 만족감을 주었다. 특히나 이 작품이 좋은 이유는 '비혼 여성'의 '여성질환'을 '커뮤니티'의 도움과 위로로 그럭저럭 완벽하지는 않지만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만성변비로 오랫동안 고생했던 조기순은 결심을 한다. 병원을 찾아 대장내시경을 통해 병의 정체와 원인을 밝혀내겠다는 그녀의 결심은 다양한 것들과 부딪친다. 콜센터 직원인 조기순은 검사를 위해 그녀가 비운 시간만큼 팀에 손해를 입힌다는 상사의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사회인들이 병을 키우게 되는 원인 중에 하나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헨리 포드가 만든 컨베이어 시스템의 한 부분인 우리 모두는 지금 당장 죽을만큼 아픈 것이 아니라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듣기 싫다는 이유로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기 나름이다. 하지만 병이 나서 내가 나의 자리를 채우지 못하더라도 시스템은 쉬지 않고 돌아간다. 언제든 내 자리는 대체될 수 있다. 시스템 관리자와 소유자는 잠깐의 번거루움이 싫어서 우리에게 참아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신의 건강을 자기 스스로 챙기기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도 눈치를 보아야 하는 조기순의 상황에 화가 났다. 그래서 그녀의 아픔을 의심하고, 댓거리 하는 그녀에게 '주둥이만 살았다'고 하는 상사가 있어도 자신을 위해 망설임 없이 연차를 내고 조퇴를 하는 조기순을 보며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조기순의 병명은 '자궁경부암' 이었다. 홍콩의 유명한 가수이자 배우였던 '매염방'을 죽음으로 몰았던 병. 때론 어떤 병은 이미지로 기억될 때가 있다. 조기순의 기억에 '자궁경부암'은 과거에 1년간 사귄 첫사랑 남자친구를 생각나게 한다. 그는 매염방이 '자궁경부암'으로 죽자 그녀의 성생활이 문란했을 거라고 단정 짓는다. 그의 무식함에 분개했던 조기순은 자신도 몰상식한 옛남자친구만큼 여성질환인 자궁경부함에 무지했음을 병을 얻으며 깨닫는다. 왜곡된 병의 이미지로 아픈 사람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잔인한 사람이 우리는 되지 말아야 한다. 또한 그들이 병을 유발한 행동을 하여 병에 걸렸더라도 그들은 지금 병을 이겨내기 위해 온몸을 다바쳐 집중하고 있다는 걸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온몸을 다바쳐 집중하고 있는 그들에게는 누군가 가볍게 던지는 한 마디로 아픈 그들은 쉽게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혼인데 산부인과를 들락거리는 것에 대해 수근거리고, 접수 때마다 성관계 유무를 물어보는 것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저 옛날 유교적 시선으로 여성들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조기순이 변비 때문에 고생했는데 원인이 여성 질환이었던 것처럼 여성의 몸을 가장 잘 진찰할 수 있는 곳은 산부인과이다. 미혼인데도 산부인과에 가는 것은 문란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아끼기 때문인 것이다.


요절복통 비혼여성 수술일기는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나며 마무리 된다. 비록 그녀의 수술이 그녀의 퇴사로 연결되었으며, 그녀의 부인질환이 다시 재발할 확률이 높은 질병이라 호르몬을 평생 잘 조절해야 하지만 그래도 걱정하지 않겠다는 조기순의 다짐을 응원한다. 실업수당을 받으며 다음 직장을 준비하고, 휴가를 내어가며 비혼인 그녀를 병간호 해준 친구들과 하얀 눈을 맞이하는 그녀의 모습이 안정되어 보였다. 조기순의 수술 일기는 그녀에게나 그녀의 비혼 친구들에게나, 그리고 결국은 혼자인 우리 모두에게 '혼자 처리해야 할 다양한 어려움' 에 어떻게 대처하면 될지를 알려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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