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계몽 - 이성, 과학, 휴머니즘, 그리고 진보를 말하다 사이언스 클래식 37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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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핑거는 걱정한다. 우리가 계몽주의를 통해서 이룬 모든 것들이 이전으로 슬며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걸 , 우리가 인지조차 못하고 있음을 걱정하고 있다. 또한 지나친 비관적 시선으로 다시 우리가 회귀할까 걱정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전의 언어가 아닌, 시대를 이끌어갈 미래의 세대를 위해 21세기의 언어와 개념으로 계몽주의의 이념을 다시 기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p.23)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사회는 내버려두면 언제나 무질서로 향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가 나태하거나 소심하면 사회는 금방 모순과 권력, 부패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또한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기보단 묵살하고, 음해하려 하며 잘못 되어 가는 것에 대해 '속죄양'을 만들어 가책을 회피하려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이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에게 추상화 능력과 인식의 조합과 반복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어 조금은 질서로 나아갈 수 있다고도 말한다. 또한 질서로 나아가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나의 의견에 논리성을 가져야 하며, 타인과 나의 의견 결합에 수용적이고, 타인의 의견을 차단하려 하지 않는 규칙이 필요하다고 서술하며 [지금 다시 계몽]을 통해 세상이 진보했음을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고 있다.




뉴스는 극적인 것에 집중하고, 그것을 수용하는 우리는 왜곡된 세계관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세계를 객관적으로 수용하기 보다 실제하는 것보다 더 극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것은 우리가 행운보다는 불행을, 수익보다는 손실은 더 두려워하며 더 실행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상은 진보를 이루었으나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두려움만 키우고 있다. 그러니 뉴스의 모든 것을 맹목적으로 믿으면 위험하다.

살아남고자 하는 투쟁은 존재의 원초적 욕구이며, 인간은 죽음을 면하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다. 의학과 과학의 발전으로 19세기부터 '위대한 탈출'을 이루며 평균기대수명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인공지능, 유전학, 나노 기술의 발전으로 '불멸'을 논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부작용의 우려와 부풀려진 효과라며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영원은 불확실하나 오래는 모두가 수긍한다. 의학과 과학의 발전으로 우린 이전보다는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위키디피아에는 과거형으로 기술된 전염병들이 있다. 그 전염병들은 과학과 지식을 통해 연구된 백신과 손 씻기, 화장실에서 배변하기, 모기장 설치하기 등 공중보건과 생활 속 실행 가능한 아이디어로 인해 과거의 전염병이 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지식이다" 라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 교수는 주장한다. (p.115)그러나 일부 잘못된 지식 때문에 진보가 역행할 수도 있다. 올바른 지식을 바탕으로 제도와 규범을 정비하여 인류가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백신에 대한 거짓 정보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전염병을 박멸하지는 못하더라도 전염병에 대비하거나,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식량 문제를 이야기할 때 인구문제는 언제나 함께 대두된다. 인구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식량의 부족함을 해결하기 위해 기아와 기근이 자연 발생한다는 멜서스식 사고를 아직도 이야기하고 있는 일부도 있다. 세상은 질소추출로 인한 비료 생산, 품종개량과 유전자 조작으로 가능해진 녹색혁명을 통해 식량안보가 가능해졌다.그러자 기아에 습관적으로 무관심한 집단에서 유전자 변형 작물에 대해 광적인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식량과 관련된 기아 문제는 이제 식량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식량 분배의 문제임을 세계는 인식하고 있다. 식량과 기아, 인구문제는 이제 제도와 분배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인류 전체의 오래된 가난과 빈곤이 20세기를 기준으로 어느 정도 해결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우선 산업혁명, 공중 보건 혁명 등으로 생산물과 인력이 풍부해지며 과학적 응용이 새로운 발견에 박차를 가한다. 또한 과학 응용에 힘을 실어줄 제도의 발달과 상업을 터부시하던 가치관이 변화한다. 이런 부의 물결은 다양한 도미노 효과를 불러 일으키며 부의 진보에 가속을 붙인다. 세계는 변화했다. 이념보다는 부를 통한 발전이 세계의 가치가 되어 가고 있다. 부유한 나라가 되기 위해선 전쟁과 내전으로 인한 분열을 최소화해야 하며 인권과 자유, 평등, 환경보호가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p.157) 물론 세계화가 불러 온 물질만능과 양극화의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 빈곤은 해결되고 있다.

불평등은 빈곤과 다르고, 인류의 번영을 좌우하는 기본 요소도 아니다. 불평등의 증가는 보편적 빈곤에서의 탈출을 의미하기도 한다. 새로운 부의 원천이 발견될 때마다 불평등의 물결은 다시 인다. 불평등의 축소는 전쟁, 혁명, 전염병, 국가 붕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꼭 좋다고 볼 수 없다. 불평등은 상대적인 것일 수도 있다. 사회 전체의 부가 향상되었는데 상대적으로 부를 많이 가진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어 불평등하게 느끼는 것이다. 상대가 가진 것을 뺏어야만 평등하다고 느끼는 제로섬 사고는 이제 인류에게 의미가 없다.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환경문제도 올바른 지식만 있다면 해결 가능한 문제이다.(P.195) 녹색주의 이데올로기의 출발은 지구를 인간의 탐욕으로 더럽혀진 순진한 소녀의 모습으로 표상하고 있다.(P.196) 이는 너무 염세적이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올바른 지식으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접근해야만 적절한 해결이 가능하다. 우리는 다양한 자원과 에너지의 고갈을 예상했지만 언제나 그것들이 고갈되기 전에 대안을 마련했다. 그럼으로 사회는 발전했고 인류는 더 부유해졌다. 이는 탄소배출을 강력하게 규제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앞으로도 환경을 위해서는 밀도에 프리미엄을 붙여(P.214) 탈물질화를 향해 나아가야 하며, 공유경제와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접근이 아닌 효과적인 방법으로 진행해야 한다. 현대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해결보다는 공포를 극대화 시킬 뿐이다. 환경문제는 존재하며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왔듯이 현대적 선의 힘을 유지하며 해결해야 한다.(p.245) 그리고 우리는 해결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간 전쟁은 점점 감소하며 긴 평화가 왔다. 충돌은 대규모 전쟁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음을 세계가 인지하고 있음으로 전쟁을 피하려는 기류가 형성되었다. 다만 식민지 반환 후 다양한 이해관계 부족으로 발생한 내전, 급진 이슬람 주의 집단에 의한 충돌이 발생하는 정도이다. 하지만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전쟁에 대한 가능성을 인간의 정복과 침략을 향한 충동은 본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국가간 국제무역으로 인한 이해 관계, 민주주의 국가들 끼리의 평화 이론,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인준 없이 벌이는 전쟁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들을 고려하면 전쟁은 쉽게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세상은 진보하며 점점 안전해지고 있다. '살인' 은 정해진 공간에서 집중되어 발생하고 있으므로 일반적인 시선에서 판단하면 안된다. 범죄 예방을 위해 사회는 강력한 법을 효과적인, 적법한, 신속한, 공정한, 적정한, 인도적인 방식으로 집행해야 한다. 또한 손쉬위 만족의 기회를 환경 속에서 제거하며 범죄를 예방하고 있다. 때론 지나친 규제는 역효과를 볼 수도 있으므로 합법화하여 관리하는 것도 안전을 위한 행동일 수 있다. 불과 물에 의한 사고는 소방서 설립과 관리로 줄어들 수 있었으며, 상해 사고는 노동조합과 정부의 규제로 안전장치 의무화가 시행되며 줄어들 수 있었다. 세상이 진보하며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대처가능한 안전장치가 마련 가능해진 것이다.

테러로 인한 사망자수는 살인, 사고에 의한 사망자 수 보다 현저히 낮은데도 우라에게 안전한 시대에 살고 있음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큰 불안과 공포를 유발한다. 테러에 의한 사망자를 극대화하는 언론의 방식은 다른 죽음을 평가절하 시킨다. 테러의 범주는 넓지만 우리는 주로 이슬람 테러로 인식하는 것도 문제이다. 테러를 자행하는 사람들이나 집단은 빈약한 전력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테러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들을 부추기는 가장 위험한 효과는 '과잉반응'이며 자극적인 뉴스 방식이다.

민주주의는 발전, 확대되고 있다. 민주주의 정부는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먹지 않도록 막되, 권력자 자신도 사람들을 잡아 먹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p.310)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미국의 입헌민주주의를 시작으로 민주주의 국가의 수가 늘어난 것과 베를린 장벽과 러시아의 붕괴로 체제가 바뀌고 있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다. 

세상은 우리가 불공평하다고 인식하는 것보다 많이 평등해졌다. 하지만 흔적을 지우는 것이 진보의 본성이고, 불의에 시선을 고정하는 것이 우리의 행동이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상황이 더 나빠져서 화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민하고 빈번하지 않아서 화제가 되며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으로 인해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되며 편견을 합리화 시키고, 인종을 분리하고, 남성만을 옹호하며, 아동을 착취하고, 동성애를 범죄화하는 형태는 어떤 변호가 불가능하며, 논쟁에서 패배하는 세상으로 바뀌었음을 우리는 알고있다.(p.341)


인간은 주변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고 축적하며 공유한다. 교육받은 사람들은 다양한 차별과 혐오에 예민하고, 자유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며, 정치적 견해를 표현할 가능성과 시민적 협의체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문해력은 인간의 진보를 이끈 핵심이다. 교육을 통해 습득한 지식들은 분석적 사고 능력을 향상 시킨다. 지식을 기반으로 한 인간 번영의 진보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인류의 삶은 점점 더 질이 높아지고 있다. 노동의 시간은 법적으로 보장되어 줄어들고 있으며, 노동의 시간이 줄어든 만큼 남는 시간은 각자의 취향에 맞게 여가를 즐기게 되었다. 그들에게 여유의 시간을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해준 것은 기술과 이동 수단의 발달이다. 예술과 문학의 용이한 접근성과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여가를 좀 더 깊이 있고, 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졌는데 인류는 왜 불행하다고 느끼며 행복에 도달하지 못하는 걸까? 행복감을 조사했을 때 나이든 사람들이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이는 지혜가 생겨 관점이 넓어졌기 때문이며, 행복감은 기복이 심한 등락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삶에서 불안은 성인의 특권이다. 불안은 책임을 받아들이는 성년기에 급격하게 증가하고, 대처를 터득한 후 감소한다. 등락에 휘몰아치는 삶을 이해하게 되면서 우리는 행복하다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나노 머신, 로봇, 인공지능, 불가리아의 10대들이다. 실존적 위험을 직시하고 대비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종말론적 사고로만 세상을 본다면 모든 것이 위험하고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생각을 고착화하면 삶을 포기하게 된다.인공지능은 프로그래밍 대로 움직인다. 인공지능에게 인류를 위협할 명령어를 주입시키지 않으면 된다. 해커의 위협과 바이오 테러, 핵전쟁의 파급이 거대함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그것에 대비한 안정망도 위리에겐 충분하다. 실존적 위협에 대해 파멸을 선언하며 관조하는 자세는 우리를 더 위험에 빠트리는 것이다.




세상을 낙관적으로만 보는 것도 문제이고, 비관적으로만 보는 것도 문제이다. 스티븐 핑거는 한스 로슬링의 답을 자신의 견해로 인용한다. "나는 낙관주의자가 아닙니다. 나는 아주 진지한 가능주의자입니다." 저자의 책을 읽기 전 한스 로슬링의 [팩트 풀니스]를 읽었던 경험이 있어서 인지 같은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양한 사상과 저서, 그래프, 자료를 수집하고 조사하며 자신의 확실한 관점과 견해를 가진 저명한 하버드대 교수인 스티븐 핑거가 괜찮다하니 지나친 우려로 사회를 바라보지 말아야겠다. 우리는 다소 뻐걱거리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며 진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진보를 의심하기 보단 더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진보하길 바래보아야겠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성실활동으로 선물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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