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 안전가옥 쇼-트 9
류연웅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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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털처럼 가볍게 읽히지만 묵직하게 깨달음을 남긴다. 블랙코미디는 고수가 아니면 코미디로만 남아 가볍게 날아가 버릴테지만 [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는 고수급 작품이다. 근본, 근절, 뇌절에 대한 작가의 문장들은 우리가 타인에게 행하고 있는 다양한 폭력을 풍자하고 있다.

작품엔 다양한 근본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근본은 사물의 본질이나 본바탕을 말한다. 내가 행하는 무언가의 원초적 목적이 근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조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야 하는 대학생 채연은 자신을 '과제 헌터' 라고 지칭하며 조원들에게 자신이 혼자 기획부터 영상까지 완벽하게 준비하고 A 학점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면 입금을 제안한다. 그녀가 제작해야 하는 인물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근본이 없다'는 말을 들으며 축구계에서 사라진 전직 축구 선수 김덕배이다. 김덕배는 축구를 비난하던 네티즌의 댓글에 소환되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축구계에 입문하게 되고, 골대 옆에 서있다가 영겹결에 넣은 득점골 때문에 일약 스타가 되어 아이돌급 추앙을 받다가 한국팀의 월드컵 진출이 무산되면서 사람들로부터 버려진다. 그를 버리면서 사람들은 그가 근본을 잊고 거만해졌기에 실패한거라 비난한다. 사실 덕배가 추구하고자 했던 자신의 근본은 '평범함'이었다.(p.64) 평범하게 살고 싶어하던 고등학생을 자신들이 평범하지 않게 만들어 놓고 이리저리 돌리다 망가뜨리고선 실패의 원인을 그가 근본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비난하다니 폭력적이다. 타인의 근본을 논하는 사람들은 과연 상대가 정한 자기 삶의 근본이 무엇인지 알고 그들을 비난하는 것일까? 그리고 개인이 정한 근본을 비난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삶의 기준과 방향은 각자가 정하는 것이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을만한 것이 아니라면 개인의 가치관에 대해 우리는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정한 근본이 원초적이고 이기적이고, 물질적이더라도 말이다.

2030년 축구 선수 김덕배의 근본 논란을 일으켰던 경기 후 월드컵팀의 귀국날 인천 공항은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되고 일대 폭력 사태가 발생하며 사회적 문제로 발전한다. 정부는 모든 폭력과 사회의 혼란이 단지 '축구' 때문이라고 단정지으며 축구를 사회악으로 지정하고 금지시킨다. 축구로 인해 폭력이 발생하고, 축구로 인해 도박을 부추겨 사행성을 조장하고, 축구로 인해 사회적 융합이 어려워진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회적 문제의 발생은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 폭력 사태의 시작이 대학원 조별 과제로 스트레스가 최고치였던, 월드컵 경기는 관람조차 하지 않았던, 한 사람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2040년 밝혀지며 더 어이없어진다. 우리 사회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얼마나 일차원적이고,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런 주먹구구식 문제 해결은 해결이 아니라 또다른 피해자와 또다른 사회문제를 불러온다.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아직 많은 작품을 출간하지 않은 작가 류연웅의 다음 작품들이 기다려진다. [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의 현실감있는 문장들과 위트있는 설정, 공감되는 인물들이 그가 펼쳐낼 다음 작품들에 대한 기대치를 올려주었다. 가독성과 재미, 게다가 사회비판과 풍자까지 담아낸 작품이다. 작가에 대한 기대는 물론 출판사 '안전가옥'의 작품들에도 관심이 생겼다. 무겁지 않고 가벼운 문고판 책 속에 책의 겉모습보다는 담고 있는 이야기에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유쾌한 독서 경혐을 제공해준 작가와 출판사에 감사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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