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흐르는 곳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티븐 킹' 이 돌아왔다. 우리의 이야기꾼이 돌아왔다. 넘치는 상상력으로 섬뜩하면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스티븐 킹. 우리가 그의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는 그가 구현해내는 작품 속 인물들의 삐뚤어진 욕망이 우리의 다양한 모습 중 한 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또한 모두가 한 번쯤 머리 속으로 상상했던 오싹했던 것들이 문장으로 재현되어 춤을 추는 모습이 마냥 신기하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피가 흐르는 곳에』는 총 4편의 중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다른 매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첫 번째 작품 [해리건 씨의 전화기]는 그의 초기작 [스탠바이미]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었다. 작은 마을에 재력가 해리건 씨가 말년을 보내기 위해 도시에서 오면서 꼬마 크레이그는 주급 25달러로 매일 일정한 시간에 책을 읽어주는 일거리를 해리건 씨로부터 얻게 된다. 해리건 씨는 주급 이외에도 크레이그에게 매년 기념일에 복권을 보냈는데, 어느 날 복권은 당첨이 되고, 크레이그는 해리건 씨에게 감사의 뜻으로 아이폰1세대를 선물한다. '물건을 소유하는 것은 자신을 족쇄로 채우는 것' 이라고 했던 해리건 씨는 우리도 잘 알다시피 스마트폰의 마력에 빠진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그 물건은 그를 놓아주지 않게 된다. '스탠 바이 유어 맨' 이 벨소리로 되어 있는 아이폰1세대는 크레이그보다 해리건 씨에게 더 소름끼치는 물건이었을 것 같다. 그의 마지막 문자 'STOP'이 나에겐 처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해리건 씨의 아이폰 1세대 처럼 '나를 잠식해 버리는 것'이 과연 무얼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은 전염병 코로나19가 나의 일상을 잠식하는 존재이다. 코로나 19는 예상치 못한 장소와 시간, 대상으로 인해 나의 생활 반경은 물론, 나의 의지와 노력까지도 의미없게 만들어 버렸다. 다가오는 것들을 마주하지 않고 거부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또한 그것들에 잠식되지 않고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다.

두 번째 작품 <척의 일생>은 장르를 넘나들며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잔잔한 감동으로 마무리된다. 전 세계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대규모 지진과 재앙으로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와중에, 마티는 뜬금없이 광고판에 뜬 '39년 동안의 근사했던 시간! 고마웠어요, 척!' 이라는 문구를 보게 되고, 이후 그의 눈에 닿는 곳곳에 이 문구가 등장하게 된다. 처음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읽어나갔다. 지구 종말의 날이 온 것 같은 상황 속에 이곳 저곳,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광고 '고마웠어요, 척!' 은 다양한 궁금증을 유발했다. 도대체 척이 누구야? 사이비 집단 교주인가? 세상을 정복하려는 목적으로 모든 것을 차단한 것이 저자일까? 3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왜 3막부터 시작인거야? 다양한 의문과 괴상함은 마지막 1장을 읽으며 따뜻한 먹먹함과 함께 역시 '스티븐 킹' 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척이 인생의 굴곡이 심하거나, 큰 전환점없이 살았다하더라도,인생의 끝은 그를 포함해 그의 주변 모두에게 '인류의 종말' 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종말이 다가오지는 않는다. 우리는 또 그렇게 살아간다.

세 번째 작품 <피가 흐르는 곳에>는 4개의 작품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며 작품의 제목이기하다. 이전 킹의 작품 [미스터 메르세데스]에 등장하는 인물인 홀리와 제롬이 재등장 한다. 탐정사무소인 파인더스 기퍼스의 소장 홀리 기브니는 중학교에 설치된 폭발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는 뉴스를 접한다. 현장 소식을 전하던 체트 온도스키라는 기자를 화면 속에서 바라보던 홀리는 그가 알 수없는 미지의 힘을 지닌 존재 '이방인'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방인'이라는 설정과 '이방인' 이라는 존재가 기괴하게 느껴졌다. '피가 흐르는 곳에' 는 공포와 상실감이 감돈다. 그곳에 존재하는 감정을 흡혈하며 살아가는 존재 '이방인'. 홀리는 우리도 그런 존재일 수 있다고 말한다. 사건의 현장 속 피가 낭자한 공간과 그 공간 속에서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의 얼굴을 흥분하며 마주하는 우리 모두가 '체트 온도스키'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인의 고통을 통해 자신의 안정감을 확인하는 인간이 가진 원초적 잔인함을 마주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또한 스티븐 킹이 뉴스 속 사건 사고를 접할 때마다 매번 느끼는 딜레마이기도 할 것 같다.

마지막 네 번째 작품 <쥐>는 창작을 해내는 킹 본인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겸업 작가 드류 라슨에게 단편 작업은 쉬우나 장편은 넘어야 할 산이었다. 드류가 장편 창작을 위해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는 아버지의 통나무 집으로 홀로 들어가 작품 속 상황을 구상하고, 단어를 나열하고, 가장 적절한 단어를 배치하여 문장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힘겨워 보였다. 힘겨움을 넘어 측은해 보이기 까지도 했다. 그런데도 장편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듯한 그의 글쓰기는 결국 '쥐'의 음흉한 제안을 불러온다. 쥐의 제안은 그에게 장편완성의 기쁨을 안겨주지만 , 예상치 못한 사고를 마주하게 한다. 모두의 주목을 받는 작가로서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와 창작의 고통 속에서 괴로운 킹 본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역시 '스티븐 킹'임을 재확인했다. 피만 낭자하여 불쾌감을 유발하는 문장들이 아닌 우리의 삐뚤어진 모습과 잊고 있던 따뜻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글들이 좋다. 킹 스스로가 장편에 대한 갈증이 있겠지만 난 그의 중단편들이 좋다. 노년에 접어든 작가의 짧지만 여운이 긴 멋진 중단편들을 오래도록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로 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피가흐르는곳에 #스티븐킹 #황금가지

#리딩투데이 #리투미스터피맛골 #서평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