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의 섬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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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 밸러드의 작품은 처음이다. 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스필버그의  영화 [태양의 제국]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의 작품을 읽어보아서 다행이다. 섬세하고 독특한 문장과 기발한 이야기가 멋지다.  SF 작가로 소개되지만  우주이야기가 아닌 인문학적 관점에서 예술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진 과학소설을 쓰자고 주장했던 작가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의 작품만큼이나 그가 추구하려 했던 가치도 독특한 것 같다. [로빈슨 쿠르소]를 떠올리게 한다는  [콘크리트 섬]을 읽으며 나 또한 문명과 인간, 문명 안에서 소모되는 우리의 피곤함을 생각해 보았다.



1973년 4월 22일 오후 3시를 살짝 넘긴 시각, 로버트 메이틀랜드라는 이름의 35세 건축가가 런던 중심부 웨스트웨이 입체교차로의 고속 출구 차선으로 차를 몰고 있다. 새로 건설된 M4고속도로의 지선과 만나는 교차로까지 600미터 남은 지점에서, 제한속도인 110킬로미터를 훌쩍 넘겨 달리는 중이던 재규어의 왼쪽 앞바퀴가 파열되어버렸다.(p.7) 그는 머리와 다리에 부상을 입으며 경사면을 굴러 내려가 '콘크리트의 섬'에 갖히고 만다. 메이틀랜드는 탈출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진행하지만 생각처럼 섬을 벗어나긴 쉽지 않다.



메이틀랜드의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차도를 지나가는 수많은 차들은 그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차도를 운전하는 운전자들이 그곳에 누군가 있을 거란 생각을 못하는 것인지, 누군가가 눈에 보이긴 하지만 차량을 멈출 수 없는 상황이라 지나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화려한 도시의 수많은 차량 속 '콘크리트의 섬' 주변을 달리는 차량은 모두 앞을 향해 한 방향으로 달리기 때문에 옆을 쳐다볼 수가  없다. 게다가 멈추면 연속적  충돌 사고가 발생할 것 같은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꼭 바쁜 일상 속을 매일매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같게 느껴진다.  앞만 보며 뒤처질까 두려워하고, 부딪히면 모든 것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어쩌면 메이틀랜드도 일정한 방향으로 달리는 차량들 중 하나였다가 섬을 발견하곤 사고를 가장해 뛰어들어 버린 것일 수도  있다. 부유하고, 완벽해 보이는 그의 삶이 생각만큼 멋지지 않았나보다. 찌그러진 그의 재규어처럼 말이다. 그래서 시속 110킬로미터의 속도는 의도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콘크리트 섬에서 탈출하는 것을 방해하는 두 명의 섬거주자들로 부터 도망치려는 그의 몸짓은 오히려 그들을 자극하여 그를 더 붙들어두게 한다. 섬거주자들로 부터 위협받던 상황을 금세 전복시켜 그들을 협박하고 다스릴 수 있게 된 메이틀랜드는 그들에게 가하는 횡포를 즐긴다.  사회 속에서라면 결코 행하지 못할 행동들도 서슴치 않고 행하면서 '탈출'을 위한 과정이라고 합라화시키기도 한다.  사회라는 공동의 공간에서 벗어나 나만의 공간 속에서 행하는 행동들이 그 인물의 본모습일 것이다. 그걸 경험한 메이틀랜드는 그래서 다시 사회로 돌아갈 기회가 생겼지만 스스로 그 기회를 보류한 것이다.



메이틀랜드가 두 명의 섬거주자들을 보내고  약속했듯이 과연 스스로 섬을 나올지 의문스럽다. 그가 제인에게 이야기했던 '생각하기에 적절한 때'는 과연 언제일까? 자신의 마음을 정리한 때인지, 충분히 자신을 돌아본 때인지, 모두에게 잊혀진 때인지 궁금하다. 어쩌면 그는 그곳에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며 살아갈 지도 모르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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