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은 90~95년도.


 예스의 90125 앨범과 얼만큼 연계될지 모르겠다.


 생각했던 주인공3은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르겠다. 1과 2는 유기적으로 연계된다. 내용이 아닌 문장으로 연결시켜볼까 한다.


 핵심이 되는 사건 몇 가지가 있다.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94년도 더위, 김일성 사망


 93년도 지존파 사건, 그리고 대전 엑스포, 청주 우암상가 아파트 붕괴, 김영삼 대통령 취임


 91년도에는 냉전이 끝났다.


 다미선교회 휴거와 여러가지. 



 일상생활이 중요하다. 당시 대전의 스케치도 중요하고. 둔산은 개발이 안 된 상태. 송촌도 마찬가지이다. 은행동을 중심으로, 대전역은 만남의 광장이었다. 대단히 규모가 컸다.


 몇 가지 소재를 더 생각해보자면, 당시 악보 뒤에 적힌 펜팔 주소를 통한 인연, 천막 나이트, 홍명상가 등이 있다. 펜팔 인연은 비중있게 다루어질 듯하다. 어떤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모래시계 등의 드라마도 얘깃거리이다. 당시 문화상을 살펴봐야 하겠지만. 아이돌 세대 이전의 서태지 등의 다양한 음악문화. 오락실. 서커스나 올림픽 등의 게임들이 있었다고 하며, 당시 50원짜리를 썼다고 한다.


 듣던 음악들. 듀란듀란, 신디 로퍼 등. 흥행하던 영화는 홍콩 느와르이다. 주윤발과 장국영 등등. 시립도서관은 옥계동에 있었다고 한다. 대전천 위인가? 이건 조사해야 할 문제.


 대흥동은 지금처럼 예술의 거리까지는 아니었다. 은행동은 나이대가 어린 사람들이 갔고, 대흥동은 술 자금이 되는 20대가 갔다고 한다. 중구청의 역할이 한 몫 했을 수도 있다. 지금 예로 들자면 은행동과 둔산의 차이가 아닐까. 당시 음악다방이 유행했다. 까페에 디제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디스크 플레이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홍명상가 나이트는 꽤 유명했다고 하며, 당시 작은 극장들이 많았다. 중앙극장, 서라벌 극장, 동아극장, 아카데미 극장 등등. 아카데미 극장은 아직도 남았다. 당시 유행하던 아르바이트가, 각 극장마다 필름을 전해주는 아르바이트였다고 한다. 홍명극장에서 서라벌로, 서라벌에서 동아로. 자전거를 타고 전해줬다고 하며, 각 극장마다 알바가 있었다고 한다. 동시상영은 힘든 이야기.


 대전 연극계는 대전 인사들로 새로운 지평을 맞이한다. 대전 연극인 모임을 중심으로, 서라벌 예대 등의 사람이 아닌 충남대나 한남대 등의 지역 연극인들로 꾸려나가게 되는 것이다. 청춘예찬 등의 연극도 이 때. 신의 아그네스도 이 때 했나? 아무튼, 카톨릭문화회관도 제 기능을 했다.


 순수를 찾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웰즈의 벽문이 대답이다. 물론 좌절을 겪는다. 끝내 좌절이 승리할지 모르지만, 써봐야 안다. 주인공1의 안티테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문체의 힘으로 끌고나갈 수도 있다.


 창녀의 경우에는 관점을 다르게 해볼 생각이다. 미시적인 관점이 아닌 거시적인 관점의 목소리이다. 그리고 창녀의 안티는 기둥서방이다. 성애묘사는 '인생의 베일'을 참고할 것. 느낌의 문제이며, 성애 이후의 문제이기도 하다. 주인공 근처의 여자의 경우, 주위 여자들을 참고할 생각이다. 작은 희망에 기대를 걸고, 자해하며, 남 탓을 하는, 그리고 자책과 실수를 반복하는 삶.



 왜 쓰는가? 에 대한 대답은, 대전의 재구성이다. 바람의 그림자가 바르셀로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듯, 나 역시 그러고자 하는 의도이다. 환상적인 리얼리즘이라고 했듯, 비현실풍으로 적을 가능성도 꽤 된다. 문체의 전범은 챈들러와 사폰이 될까? 모르겠다. 아예 고딕풍으로 갈 지 모른다.



 대전의 재구성, 순수, 환상, 목소리, 의지, 이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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