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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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특징을 말하라고 하면, 아마도 이런게 나오지 않을까? 개인화, 고독, 초고속화. 과거와 달리 이제 사회는 진보라는 기치를 걸고 진보 아닌 진보를 하고 있다. 공동체에서 개인주의로, 군중 속의 즐거움에서 군중 속의 고독으로, 느림의 진보에서 빠름의 진보로. 성석제의 소설에는 이런 현대 사회의 특징들이 소설 전개 속에서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의 황만근은 우직함을 바탕으로 농촌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그는 개인화 속에서 이기주의를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도시가 아닌 농촌 속에서도 우직함으로 바탕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황만근이라는 주인공과 이 소설의 제목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기계화와 과학화로 대표되는 사회 속에서 순수성의 파괴와 진보라는 미명하에 파괴되고 있는 농촌 공동체의 파괴. 이런 모습은 '욕탕의 여인들'과 '천애윤락'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 단편 속의 주인공은 세속에 찌들고, 애욕과 물욕을 추구한다. 그 과정 속에 인간성은 파괴되고 인생의 허무감만 느낀다. 그런 주인공들의 모습은 진보라는 사회 구조와 물욕이라는 인간의 욕망과 융합하여 탄생한다. 잘못된 만남은 결국 잘못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런 세속은 더 심화되면서 룰렛 정치판으로 까지 이어진다. '쾌활한 냇가의 명랑한 갯날'의 중경회장은 아마도 현대사회의 세속화된 인간의 대표적 인물일 것이다. 그의 권력추구적인 모습과 독재적인 모습은 우리 사회에 내재한 파시즘적 요소를 잘 나타내준다. 민주정이라는 기치를 걸며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우리의 역사에 숨겨진 또 하나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단편 속에서 암묵적 동의와 묵과하는 인간 군상들은 결국 우리 자신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자기비판보다는 남을 비판하는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저자는 '자신을 먼저 되돌아보라'고 말하려고 하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주변부터 그런 문화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천애윤락'의 동환과 그의 친구들의 모습은 '자아비판'과 '타자비판'이라는 대립 속에서 스스로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바뀌어 간다. 결국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어'라는 동환의 말을 통해 저자는 알 수 없는 문제해결 과정을 거친다. 도대체 왜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마도 인간의 욕구를 해소 싶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사회의 물욕화 과정이 일반적인 현상으로 인식되는 현대 속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싶은 것일까? 아마도 현실에 무감각한 '책'의 당숙처럼 때론 한 곳에 열정을 두어 그것에 매진하는 한 인간의 순수를 그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꽃의 피, 피의 꽃'에서처럼 타락한 인간을 내세워, 오히려 한 인간의 순수성 회복 과정을 그렸던 것은 아닐까?

성석제의 소설은 그의 문체처럼 때론 짧고 빠르게 현대 사회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그의 일침은 단순한 일침이 아니다.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파헤치기 보다는 인간이란 존재를 통해 보다 근원적인 것을 파헤치려 한다. 짧지만 깊이 있는 그의 소설에 오늘 한 번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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