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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지음 / 창비 / 199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은 때론 진중한 자세를 거부한다. 심지어 정의와 관용이라는 사회적 규범까지 거부한다. 어떤 사회든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가 있기 마련이고, 그 원리에 순응하여 우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원리가 보편적 원리를 위배하고 스스로에 취한 원리가 되었을 때, 원리 없는 사회가 된다. 원리가 존재하지만 형식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저자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저자의 대학 시절의 한국 사회는 원리가 부재한 사회였다. 자성(自性)에 취해 타성을 이해하지 못했고, 저자가 망명한 프랑스의 사회 원리인 관용도 이해 못했을 것이다. 관용의 뜻을 가진 똘레랑스라는 불어를 저자는 그래서 더욱 가슴 깊이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순과 불의가 판치는 한국 사회에 저자는 사회적 환멸감, 때론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본 원리가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 가를 몸소 느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낯 설은 지역에서의 하루 살이 생활은 저자에게 큰 문화적 충격과 동시에 한국 사회를 재조명 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어쩌면 지금도 여전한 망명 생활은 타인이 아니면서도 타인이 되어버린 저자에게 한국 사회에 대해서 '왜'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 것 이다.
똘레랑스를 이해하면서 문화적 충격을 해소한 카타르시스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책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더욱 똘레랑스의 의미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망명 생활을 적어놓은 에세이에 구지 똘레랑스라는 것에 지면을 할애한 것은 그 때문 일 것이다. 이중, 삼중의 타인이 된 그에게 그것은 삶의 의미였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한 망명자의 에세이인 동시에 사회 비평의 성격을 갖고 있다. 저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70년대 한국 사회의 실재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프랑스에서의 망명 생활에 대한 저자의 글은 외국인 노동자의 대우에 대한 사례를 잘 제시해주고 있다. 현재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핍박이 문제시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왜 우린 아직 개발도상국이라는 호칭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를 잘 알려준다.
저자에게 프랑스라는 사회는 도피처였을지 모르지만, 또 하나의 조국이 될 만큼 크나큰 의미를 갖고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을지라도, 프랑스 사회의 따뜻한 대우는 '우린, 왜'라는 밤낮을 가라지 않는 의문 속에 따뜻한 안식처였을 것이다. 물론 궁핍한 의식주의 생활이었지만, 정신적으론 안정이 되었을 것이다. 비록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의 이상한 시선이 그를 힘들게 하였을 지라도.
이처럼 이 책은 저자의 망명 생활이 시작된 원인에서부터 그 이후의 삶까지를 세세하게 그리고 있다. 또 한국인이지도 못하고, 프랑스인도 못되는 저자의 한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자의 한풀이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한 때문에 이 책이 더욱 의미있게 느껴지는 것 같다. 마음 속 저 깊은 곳 까지 감동 시킬 수 있는 원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