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죽어야 하는 일곱 가지 이유 - 과학액션 융합스토리 단편선
정승락 외 지음 / 월간토마토 / 201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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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죽어야 하는 일곱 가지 이유]


[★★★]


[미래에 대한 추억]


[2018. 4. 23 ~ 2018. 4. 30 완독]






 스포일러 일부 포함. (알고 봐도 재밌다)




 표지에서 보다시피 여러 이야기로 구성된 '단편선'이기 때문에 조금씩 리뷰를 해보려고 한다.





1.  <풀잎 위의 개미>

 숙주인 개미의 몸속으로 들어가 뇌를 장악하고 풀잎 끝에 앉게 하여 양에게 잡아먹히는 흡충(吸蟲)은 나에게는 전혀 신기한 영역이 아니다. 양에게 잡아먹히는 이유는 양의 몸속이 흡충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여서였고 성체가 된 흡충이 다시 양의 몸 밖으로 나와 개미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무한 루프가 있다는 것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에서 이미 만나 보았기 때문에 개미가 풀잎 위에 어떤 생각으로 앉아 있을까 하는 상상조차 10년 전에 끝나 버렸다.


 그래서 좀 식상하다 싶었는데, 흡충의 얘기는 단순히 이야기의 조미료일 뿐, 흡충과 같은 '기생충이 인간과 융합하여 새로운 진화를 이룬다.'라는 다소 황당하지만 있을 과학적으로는 있을 법하여 (하긴 미지의 바이러스로 매번 인간을 좀비로도 만드는데 융합이 뭐 대수냐) 흥미가 동하여(動--) 읽어내려갔지만, 소재 이외에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 건 좋지만 제한된 환경에서 사고의 단서가 될 요소들이 한계점에 닿은지는 오래되었다.

p46


2. <Owner's Mate>

 이제는 성큼 '실제 할 수 있다'가 아닌 '실제하고 있다'로 바뀌어 가고 있는 A. I. 와 안드로이드. 아직은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같은 사고를 하고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시기 상조라고 하지만 진보는 급격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이작 아시모의 '로봇 3원칙'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제1원칙: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제2원칙: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원칙: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안드로이드의 근간(根幹)이 자 인간이 안드로이드와 확연하게 구분이 되는 이 세 가지 원칙은 독자의 재미를 위해 로봇에게 항상 충돌을 일으키고 ​오류를 불러오며 결국에는 인간만이 지닌다고 생각했던 '자의식'을 선사하기도 한다.


 뚜렷한 이유는 없지만 ... 아마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많은 로봇이 무언가를 깨닫고 자의식을 획득하게 되었다는 소재와 처음에는 주인을 위했다가 결국에는 주인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자의식이 강했던 안드로이드가 다시금 주인의 자취를 그리워한다는 점이 엄청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야기. 조금 더 길었으면 좋았을 것을...






 "날 사랑해 주실 건가요?"

p92






3. <사랑 예방 백신>

 사랑은 단순히 뇌가 불러일으키는 착각. 그리고 사람의 이성적인 사고를 방해하기 때문에 인류는 감정을 저버리고 감정을 없애는 약까지 개발해 냈다.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영구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될 찰나에 백신의 개발자가 사랑에 걸려버리고... 결국 사랑의 힘이 승리하고 마는 상투적인 구조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질병으로 명명된 것도 재미있고, 그렇기 때문에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이 낙후된 오지가 된 점도 재미있다.


 상투적이 이야기지만 점차적으로 파편화되는 인간관계, 세대를 거듭할수록 강해지는 극심한 개인주의에 대한 한탄이 섞인 이야기라 씁쓸하기도 하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을 위협하는 것은 자연과 야생 동물이 아닌 타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대를 끈끈히 했던 타인을 외면하고 때로는 짓밟아야 살아남은 경쟁 시대. 인류는 생존을 위해 타인과 홀로 맞서야 했습니다. 때문에 감정은 인류에게 꼬리보다 불편하고 쓸모없는 것이 되어 빠르게 퇴화했습니다.

p95


 

4. <미래의 이브>

 아이러니하면서 재미있는 작품. 어떤 적당한 이유도 둘러대지 않고 바로 '인류 멸망'을 얘기하는 작품은 직설적이라서 마음에 든다. 하긴... 인류의 멸망이 과거의 역사로 고정이 되어 있다면 굳이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지. 내가 <더블>의 박민규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랄까나? 이야기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후의 한 사람. 살아남은 '아가씨'를 위해 만들어진 수많은 안드로이들이 '아가씨의 짝'을 찾아 전 세계를 뒤진다. 마침내 찾아낸 인간 남자는 짐승의 모습과 행동을 하고 있지만, 아가씨의 교육과 안드로이드의 보살핌을 통해 점차 인간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이를 흐뭇하게 지켜보는 집사 안드로이드는 임무 완성에 기뻐하는데...


 혹시나 리뷰를 보고 책을 볼 사람을 위해서 반전은 적지 않겠다. 반전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흥미를 떨어뜨리려나? 그래도 인류의 멸망을 얘기하는 대부분은 소설은 끝부분에는 항상 한줄기 빛을 선사하는데, <미래의 이브>는 그러지 않아서 좋다. 아니 오히려 절망을 얘기하는 부분이 마음에 든다고 할까나? 내가 좀 꼬여서 말이다.








 외로움에 칭얼대며 수없이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하는 좀비 한 마리.

p169





 5. <일곱 번째 남편>

 요것도 인류의 멸망. 하지만 인류의 멸망에 대처하는 자세가 <미래의 이브>와 확연하게 다르다. 지구 온난화에 지상은 사람이 살 곳이 못되기 때문에 지하로 피난한 인류. 인류는 생존을 위해 기존에 지켰던 모든 관습을 버리고 오직 '생존'을 위한 새로운 관습을 만들어 낸다.


 햇빛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마련된 선탠장, 줄어가는 인구에 대한 경각심을 위한 전광판에는 임신한 여성의 수, 소중한 모체(母體)에 비해 별 볼 일 없는 남성은 각종 작업과 수발을 들어야 하고 임무를 다한 남성은 어딘가로 가게 된다.


 <일곱 번째 남편>은 멸망 후에 있을 법한 세세한 설정이 매력적이다. 극도로 아껴야 하는 전기와 인류라는 종을 위한 모체(母體)로 전락해버린 여성, 어쩌면 여성보다 더 비참해진 남성의 삶. 두 개의 성별 모두 우리가 지금 인간으로 누리고 있는 것은 하나도 누릴 수가 없었다. 오직 '인류라는 종'을 종속시키기 위한 군집체가 되어버렸는 시점에서 이미 인류는 멸망했다고 생각된다.


 '인류'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우리는 생존만을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어떤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 인류'라는 종이지, 단순하게 '종의 종속'만을 위한 전락해버린 인류는 '단순한 생명체의 종 중 하나'말고는 더 이상의 가치(ex:문화)는 없을 것이다.





6. <당신이 죽어야 하는 7가지 이유>

 책의 제목과 같은 소제목의 단편. 책을 대표하는 단편치고는 내용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느낌은 김명민 주연의 영화 <하루>와 같다. 자신의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타인의 죽음은 당신에게 어떤 생각을 갖게 하는지 궁금하다.


 한 개의 목숨의 가치는 또 다른 한 개의 목숨의 가치과 같다고 하지만 자신과 가까운 이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타인 중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자신만을 위해 전자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도 소중하기에 후자를 선택할 것인가? 이러한 선택의 딜레마는 많은 논의가 되어왔지만 시원한 정답은 없었고, 이러한 가치를 다루는 작품 대부분은 선택을 강요하기보다는 모두를 살리는 방향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정말로 이러한 선택을 강요받을 때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해버린다.


 그렇다면 나는? 냉혹하지만 나는 전자를 선택한다. 나는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평범하기에 내가 가지고 갈 수 있는 죄책감과 슬픔의 크기는 후자를 선택하는 것보다는 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선택이니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러한 선택의 딜레마는 현실에서도 일어나기에 한 번쯤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냥 기도하시오. 악이 당신을 비켜갈 수 있도록."

<살인자의 기억법> 中






 

7. <할망구 17호>

 퇴색되어 버린 가족이라는 단어의 가치.





8. <오늘의 사건 사고>

 좀 섬뜩한 얘기. 어떤 사건 이후에 신문에서 '사건 사고'를 모으며 심신을 안정시키는 어딘가 이상해진 아내와 그것을 지켜보는 나. 매일 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사건 사고는 자신의 일이 아닌 양 흘려버린다. 단순하게 안타까움에서 사건에 공감하여 슬픔에 이르는 사람까지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결국은 자신과는 상관없기에 모두 자신만의 현실로 돌아가게 되고, 결국 소수의 사람만이 '사건 사고'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소수의 사람은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이다.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자신과 동일시하여 일어나지 않아도 될 사건 같은 경우는 시스템 자체를 갈아엎을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면서도 현실이라는 핑계로 외면하고 있는 나는? 쩝...







 "그런 기사를 모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데?"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죠."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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