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仁祖 1636 -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유근표 지음 / 북루덴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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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지 않고 병자호란을 논할 수 없다.

1636년 (병자년) 12월, 홍타이지는 12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 정벌에 나섰다. 전쟁이 시작되자 인조 정권은 남한산성으로 입보하여 피나는 항전을 펼쳤으나, 왕실을 비롯한 문무 대신들의 가족이 대피했던 강화도가 함락되면서 45일 만에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최대의 치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병자호란.

병자호란 이후 청으로 잡혀갔다 돌아온 여인들은

환황녀라고 불리는 비극적인 역사를 남겼다.

그리고 젊은 청년들은 청나라 군제에 편입되어

각종 정벌전에서 총알받이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사라진 안타까운 목숨들이 얼마나 될까.

병자호란을 일으킨 주체인 청나라에

모든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할까?

사실 인조를 중심으로

조,청, 명 3국이 얽혀있는

복잡한 이해관계였던 병자호란은

그 기간이 불과 2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워지지 않을 많은 아픔을 남겼다.

그동안은 병자호란을 학습할 때

중요 타이틀과 요점만 배웠다.

실제로 교과서에서 배울 때도

인조반정-이괄의 난-정묘호란-병자호란

이런 식으로 이름과 짤막한 사건들만

외웠던 기억이 난다.

이 책에서는

병자호란 중에 벌어진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또한 한국뿐 아니라 조, 청 국가의

사료들을 토대로 기술했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아진다.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된다.

병자호란 전 인조

병자호란 중 인조

병자호란 후 인조

정묘약조 이후 나라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알 수 있었다.

명에서는 노골적으로 조선을 비판했고

후금은 많은 것들을 약탈하듯이 요구했다.

당시 인조는 그들의 요구를 노골적으로

거부했지만 그것은 왕으로서의

용기라기보다는 평소에 지녔던

숭명 사상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가뭄과 기근 전쟁까지 지속되며

조선은 약화된 국방력과 무너진 경제로

대응할 여력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너무 안타까웠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인조가

좀 더 판단력이 뛰어났다면

충분히 막을 수도 있었던

전쟁이라고 보고있었는데

당시의 국방상태를 보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뒤에는 남한산성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수 많은 전란을 겪고 여력이 없어

방치되다시피했던 남한산성은

인조가 축성할 것을 명했고

만 2년의 공사를 거쳐 완성된 것이

지금의 남한산성이다.

현재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또한 장경사는 병자호란 직후에

인조때 세워진 사찰이다.

당시 장경사와 함께

7개의 사찰을 더 세워

승군 숙소로 지정했다.

현재도 9층탑이 우뚝하게 서있으며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가을에는 송이가 돋아나는 좋은 곳으로

남아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조금 더 나아가면

대포혈이 남아있는 자리들도 있다.

그동안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지만

아픈 역사 뒤에 남아있는 흔적들이

유산 곳곳에 남아있음을 알게되었다.

병자호란은 역사 속에 남았지만

병자호란 당시 항전의 현장이었던

남한산성에 많은 흔적들이 가득하다는 것과

그럼에도 지금은 평화로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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