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사춘기, 삼십춘기 - 서른 살을 위한 30가지 질문과 이야기
오수정 지음 / 하모니북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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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아홉. 코로나가 극성이던 2021년의 겨울에 꿈에 그리던 총회본부에 입사했다. 인격적인 성도님들과 본받을만한 담임목사님이 계시는 좋은 교회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하며, 첫 신학교 문턱을 넘을 때부터 그려왔던 계획을 완성할 때의 기분은 정말x2 황홀했다.

어른 키만한 문서를 파쇄하던 일도 즐거웠고, 격주로 있던 회의 덕분에 65인치 TV를 작디 작은 엘리베이터에 욱여 넣어(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가능했나 싶다) 세팅하던 일도, 매일 넥타이를 매고 편도 1시간 반의 2호선 지하철을 견디는 일도 해볼만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이 일을 반 년 고작 채우고 나왔다. 당시에는 전문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이것에 여러 신앙적인 결단이 엮였으나) 퇴사했다지만, 지금 와서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안정적이고, 가족 같은 분위기에 취해, 또 어릴 적 비전과는 다른 '꿈의 직장'에 갈피를 잃었다.

갈피를 잃은 뒤로도 좋은 교회와 함께한다는 건 내 마음에 위안이 되었으나, 한편으론 일주일의 절반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되뇌이며 주어진 일들을 해내기 급급했다. 토익 시험이든, 전산세무회계 취득이든 하는 것 말이다. 어렵지 않게 들어간 중소기업에서 HR 업무를 하며 "오, 괜찮은 것 같다?" 싶었지만 그런 즐거움도 오래가진 못했다.

결국엔 내가 바뀌어야 했다. 어느 것 하나에 정착하지 못하는 태도를 외면하려 해도, 모두 해내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절망적으로 다가왔고, 무엇보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일은 수령하고 있는 급여 이상의 책임이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진짜 삼십춘기는 시작되었다. 만 서른, 서른 한살의 여름이었다.

본서의 저자, 오수정 작가는 서문에서 "걱정은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소망의 증거다. 그러니까 고민이 많은 당신은, 더 잘 살아갈 잠재력을 지닌 사람이다.(p. 7)"라고 말했다. 나의 고민은 늘 대체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만한 노력을 해야한다는 조바심은 삶을 쉬이 피로하게 만들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방향을 모르는 뜀박질은 결국 제자리 걸음이라는 것을 몰랐기에 나는 무작정 뛰기만 했었다.

나의 이런 뒷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본서에 적힌 저자의 히스토리는 때론 공감의 웃음을, 어떤 때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에 김빠진 웃음을 내보이곤 했다. 뭐, 그래도 어떤가.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어떤 의미로든) 웃고 있었다.

여러모로 제목만 보면 저자의 퇴사일지처럼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음에도) 저자는 굉장히 성실한 사회생활을 해왔을 것으로 예상해본다. 오히려 그런 저자의 삼십춘기라서 내가 가야할 길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취향과 취미를 갖는 일도 사치로 여겨지던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만들었고, 나는 비로소 미루던 배드민턴 라켓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물론 중고지만?). 저자의 글은 내가 차선으로 미루던 일들을 콕콕 찔러내는 내용들이 있어 무척이나 비슷한 결을 지닌 분이란 생각이 내내 멤돌았다.
제너럴리스트란 표현도 다르지 않다. 나는 바이오를 공부하러 대학에 들어와서 본업인 생명과학 영역보다 강의 전 음향/영상 셋팅을 더 잘하는 트러블 슈팅 담당이다. 뭐, 여러 영역에서 할 줄 아는 것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하는 법을 터득하는 중이다. 어느새 저자식 긍정화법에 나도 익숙해지는 중이다. :D

서평보다는 저자의 삶에 대한 예찬에 가까운 글이지만, 마무리하며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 대한 저자의 토막글을 논할까 하다 '스님이 불러준 찬송가' 토막글을 이야기 하려 한다.

템플스테이 경험은 없다지만, 저자가 선암사 템플스테이를 하며 경험한 시간들이 참 귀하다는 감상을 받았다. 스님도 찬양의 가사가 좋아서 부르셨을지도 모르지만, "형태와 분류보다는 본질과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p.181)"라 말하는 저자의 생각에까지 이르렀다는게 참 낭만이 있다 받아들였다.

처음 논산에 바이오를 공부하러 오면서 막막한 기분이 많았는데, 이곳에서도 이렇게 좋은 글과 저자, 또 내가 추억을 공유할 수 있고 사랑하는 교회를 떠올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삼십춘기를 잘 보내고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여기서 평안히 지내고 있으니, 여러분도 서울에서, 또 각자 지내고 있는 곳에서 평안하길 기도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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