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글들이 자꾸 마음을 뒤흔든다. 엄마가 옆에서 묻는다. "왜 웃어?" 책 보고 깔깔대는 딸래미 때문에 부엌에서 뭘 엎으셨단다. 그러다가 또 훌쩍이는 딸래미 때문에 달려오신다. "어디아파?"

이책은 그런책이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가 모든 세월을 다 견딘 어른처럼 무겁기도 하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지금껏 내가 읽은 최고의 책이라 말하고 싶다. 지식 전달면에서...? 그건 아마도 아닐 듯 하다. 하지만 다른 분들도 이책을 읽어본다면 왜 내가 그렇게 표현했는지 아실거라 믿는다. 이 책에 대해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김도영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따뜻하고 평화롭고 풍요로운 그의 문장은 내면을 향해 안테나를 뻗고 있어, 삶에 지친 이에게 작은 위로를 던져준다.

작가는 남태평양 외딴섬 보라보라에서 9년을 살았다고 한다. 이 책은 그 삶을 담고 있다. 가끔은 끝없는 외로움에 사묻히게 하고, 가끔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떠오르게 하며, 그리고 가끔은 모두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백프로는 아니더라도 나는 작가의 9년의 삶이 어떠했는지 짐작은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몰타'라는 섬에서의 3개월이 있기 때문이다. 3개월과 9년은 엄청난 차이지만 그곳에서의 나는 끝없는 외로움에 사묻히기도 했으며, 에메랄드 빛 바다에 몸을 담궜다가 따스한 햇살아래 자리 잡고 누워 낭만을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매번 자기 나라식으로 점심을 차려주고 모든 것을 나와 함께 해준 소중한 친구를 만나 따뜻한 마음도 나눌 수 있었다. 언어와 문화, 그리고 외모가 다른 곳에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3개월의 몰타생활과 1여년간의 독일 생활을 통해 여지없이 느끼고 왔다. 하지만 그만큼 그 생활들로 인해 주어지는 이점들도 있다. 자유로움, 나를 배려하고 도와주는 따뜻한 마음들, 한국에 남은 주변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 이 책을 통해 나는 그때의 나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20대의 좌표를 돌아보면, 드라마틱한 꿈이 많았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실은 줄곧 꿈이 없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어른을 기다려왔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그런 어르을 만나지 못해서 그냥 내가 말하고 내가 들었다.

편도행 티켓을 끊어 떠난 보라보라 섬에서의 일상을 작가는 우리와 공유한다. 그렇게 떠난 작가에게 친구들이나 주변사람들은 부러움이 한가득 담긴 말들을 남긴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기도 하다. 시도때도 없이 끊기는 전기에 냉장고의 식재료를 먹어치우기도 해야하고, 모기떼에게 물려 비행기를 타고 병원으로 후송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며 그렇게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아마 작가가 멋지게 풀어낸 9년이라는 시간의 사소한 일들이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은 심심한 건 꽤 좋은 일이라는 주제에 대한 글들이 있다. 정전이 된 후 인터넷이 꺼지면 그와 그의 남편은 할일을 찾아나선다고 한다. 심심한 건 좋은 일이라 한다.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생기게 되니까. 그들은 화분을 옮겨 심기도 하고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기도 한다. 체스도 두고 책도 읽는 그런 삶. 인터넷이 있는 지금은 참 그런 일들이 힘들다고 생각한다. 티비를 보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거나. 그러다보니 자꾸 주변에 시선을 줄 시간이 줄어든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잠깐이라도 우리집 베란다를 내려다 본다. 예쁜 식물들이 잘자라고 있는지, 물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을 책을 읽으려고 하고, 가족의 눈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 산책을 나가서는 주변 환경에 조금 더 눈과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작가의 보라보라 섬에서의 9년이라는 시간도 아마 조금 더 그런 시간들이 많았으리라 생각해본다. 그렇게 휴대폰과 티비 대신 내 주변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어느날 나도 모르게 그로부터 행복과 감사를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글이 위로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냥 소소한 이야기들, 하지만 그 곳에는 우리 모두의 삶을 어루만지는 작가의 마음이 있었다. 이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구절로 리뷰를 마무리 하려고 한다.

우리는 언제쯤 서로를 설득하는 수고 없이, 주류에서 벗어난다는 불안감 없이, 자신만의 이유로 행복해지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이책을 접하고 읽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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