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황색눈물 (2disc)
이누도 잇신 감독, 마츠모토 준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2007년의 베이징처럼 올림픽을 준비로 도시 곳곳 캠페인과 공사가 한창이던 1963년 도쿄. 한참 성장에 채찍을 가하며 정치, 경제, 문화 부분에서도 변화가 한창이던 때 암환자인 엄마를 도쿄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결성된 의사단이 있었으니 만화가인 에스케와 그가 고용한 시모카와, 쇼이치, 류조다. 의사를 사칭한 이들이 그럼 사기단인가. 아니다. 이들은 소설가, 화가, 가수를 지망하는 의기양양한 청년들이다. 아르바이트 비를 나누고 원대한 꿈이 있으니 훗날 만날 수도 있겠지라는 막연한 약속을 뒤로한 채 각자 삶의 공간으로 흩어진 이들은 그로부터 정확히 2개월 후 에스케의 집으로 찾아 든다.
 

  그림도구로 묵직한 가방과 캔버스를 양 어깨에 낀 시모카와, 묘한(?) 사진을 팔다 경찰에 붙잡힌, 가진 것이라곤 책 몇 권과 만년필 한 자루가 전부인 류조, 기타를 메고 집에서 다시 가출해버린 쇼이치 그리고 스릴, 스피드, 섹스에 열광하는 독자층과 거리가 먼 서정만화를 그리는 에스케. 하지만 이들은 일전무취. 돈이 없다. 여름, 전기세 때문에 조금만 참자며 옷장에 고이 모셔뒀던 에스케의 선풍기를 저당 잡히고 이들은 밥을 시키고 술을 마신다. 술과 음악과 예술을 향한 열정에 취해 이들의 동거생활은 이렇게 시작된다.
 

  도둑질도 해본 사람이 잘한다고 했던가. 빈곤경험이 예술 활동에 밑거름이 될 거라는 핑계아래 골은 배를 달래기 위해 기타, 만년필, 화구, 캔버스 심지어 옷과 모자, 신발까지 저당잡히고 빈둥거리기만 하는 류조, 시모카와, 쇼이치. 이런 셋을 위해 10일 하고도 일주일동안 어시스턴트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은 에스케는 그리고 싶은 만화는 돈이 안 되고, 돈이 안 되니 출판사에서 그리라는 만화를 그려야 한다. 그러니 이 돈을 아껴 이 여름,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자며 그의 자유론을 펼친다. 이 여름, 이렇게 이들은 돈 때문에 ‘하지 못했던’ 각자의 예술 활동을 시작하는데... ... .
 

  이 여름 에스케는 책상 앞에 앉아 오랫동안 꿈꾸던 만화를 그린다. 류조도 늘 가던 까페에 앉아 소설 구상에 여념이 없다. 공원에서 유화를 그리던 시모카와는 영감을 주는 뮤즈를 만나고 그 여인을 위해 그린 그림이 드디어 팔린다. 쇼이치는 나름의 팬층을 확보하며 재능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영화 속에 꿈을 향한 포부로 가득 찬 사람들이 나온다. 그다음 우리가 꿈꾸는 것은 이들이 성공하는 것이다. 갖은 시련을 겪고 정상에 올라간 그가 엘리베이터보다 빠르게 추락할지 몰라도 우선은 ‘성공’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소설가, 만화가, 화가, 가수 등 전문성을 띈 직업군을 꿈꾸는 지망생들이 살아남기란 힘든 일이다. 결과물이 있어야 평가받을 자격이 되고 기존 것과 다른 색을 내지 못하면 피지도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꿈, 꿈, 꿈들. 영화는 성공에 대한 우리의 바람을 배신한다. 주인공들은 악보에 음을 그리고 흰 캔버스에 점을 찍고, 첫 문장을 시작하는 대신 ‘보통 사람’이라는 차표를 받는다.
 

  시인을 꿈꿨지만 지금은 폼나는 은행직원이 된 친구는 그 날 잠에서 깬 순간 문득 자신이 시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꿈이 이루어야만 하는 의무가 돼 버리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영화가 꿈과 재능 거기에 운까지 있는 천재를 그리고 있지 않아 다행이다. 꿈의 세계를 여전히 믿고 있어서 생활고에 시달리지만 하루하루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하는 나를 그려주어, 백지 인생 앞에서 여전히 허둥대는 무능한 보통 사람인 나를 그려 주어, 그리고 어느 순간에나 혼자임을 견디지 못하고 바로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의지가 약한 나를 그려 주어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국에서 6개월 동안의 생활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출국장을 빠져나오면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다름아닌 서점이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한국어로 된 책, 책 중에서도 20대여 어떻게 살아라, 나는 이렇게 산다 등의 에세이나 산문집이 아니라 가장 황당하고 재미있어서 이 땅에 다시 내려앉은 내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든지 상관없을, 모두가 바른 길이라고 말하는 ‘방향’, 이십대 중반쯤에는 가지고 있어야 하고 늘 잊지 않아야 한다는 인생의 ‘목표’를 잠시라도 잊고 다른 세계에 푹 빠지게 할 소설책을 찾고 있었다.


  그 때 찾은 책이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 그네’다. 표지에 쓰여 있는 것처럼 마냥 ‘낙천적이고 유쾌하고’, ‘배를 잡고 웃는’ 정도의 소설은 아니었지만 엉뚱한 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그의 간호사 마유미의 환자(?) 치료기가 읽는 내내 미소를 자아냈다.

  그들에게 치료를 받는 다섯 명의 환자들은 야쿠자의 제 2인자, 서커스 단원, 야구선수, 소설가, 정신과의사 등 다양하고 그다지 보편적인 직업은 아니지만 그들이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나나 내 옆 친구가 충분이 겪고도 남을 스트레스다.

  나를 이길 자가 없을 것 같은 내 것이 됐다고 느꼈던 세상에 스물스물 나 보다 뛰어난 것 같은 뜨끈뜨끈한 젊은 피가 수혈된다. 유치원 때부터 경쟁사회에 적응되었던 터라 통쾌하게 한 번 웃고 쿨하게 넘기려 했지만 마음은 그게 잘 안 된다. 새로 수혈된 젊은 피가 주위의 시선, 돈, 명예 등 때문에 그냥 지나쳤던 젊은 날 가고 싶었던 길을 왜 무시했냐고 자꾸 쿡쿡 찌르기 때문이다. 실력은 나보다 못한다지만 무엇보다 어쩌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 부러운지도 모른다.

  그 때부터 나를 옭아매는 내 콤플렉스, 내 자격지심, 잠재된 불투명한 자아정체성, 열등감 그리고 그것을 숨기려는 알량한 자존심과의 대결이 시작된다. 내 안에서 내가 나를 향해!
 

  내가 이라부였다면 이들을 어떻게 치료했을까? 이라부는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고 사회에서 어느 정도 존경받고 존중 받길 원하는 어른이라는 이름의 이들에게 주사 한방을 반강제적으로 먹인다. 그리고 존중받는 어른이 아니라 내 친구로 옆에 둔다. 나름대로 상당한 직업의식을 갖고 있다는 그 일을, 이라부는 조금 잘하는 친구와의 놀이로 생각한다. 실패해도, 못해도 상관없으니 우선은 체면을 지키기 위해 보여줘야 하는 모습들을 버렸으면 좋겠다고 정말 우스꽝스럽게도 ‘몸으로’ 이야기한다.


  내가 나를 향해 쏜 화살들, 상처투성이지만 가해자도 나이기에 꾹 참아야 하는 모습들. 지금도 소설 속, 작가가 만들어 낸 인물들의 이야기라고 믿고 싶은 나지만,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라부의 치료법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구지 이해해 주지 않아도 된다. 내가 속으로 무슨 계산을 하며 손익을 재고 따지는지 상관하지 않고, 내가 어렵게 생각하는 것들을 단숨에 놀이로 바꿔버릴 수 있는 이라부 같은 무언가. 화살이 꽂힌 자리를 숨기는 것이 더 웃기다고 나 스스로 깨닫게 해줄 무언가.

  그 무언가를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찾길 기대한다. 이게 소설 속 환자들이 그랬듯 어렵지만 '아마도' 정답이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