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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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국에서 6개월 동안의 생활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출국장을 빠져나오면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다름아닌 서점이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한국어로 된 책, 책 중에서도 20대여 어떻게 살아라, 나는 이렇게 산다 등의 에세이나 산문집이 아니라 가장 황당하고 재미있어서 이 땅에 다시 내려앉은 내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든지 상관없을, 모두가 바른 길이라고 말하는 ‘방향’, 이십대 중반쯤에는 가지고 있어야 하고 늘 잊지 않아야 한다는 인생의 ‘목표’를 잠시라도 잊고 다른 세계에 푹 빠지게 할 소설책을 찾고 있었다.


  그 때 찾은 책이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 그네’다. 표지에 쓰여 있는 것처럼 마냥 ‘낙천적이고 유쾌하고’, ‘배를 잡고 웃는’ 정도의 소설은 아니었지만 엉뚱한 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그의 간호사 마유미의 환자(?) 치료기가 읽는 내내 미소를 자아냈다.

  그들에게 치료를 받는 다섯 명의 환자들은 야쿠자의 제 2인자, 서커스 단원, 야구선수, 소설가, 정신과의사 등 다양하고 그다지 보편적인 직업은 아니지만 그들이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나나 내 옆 친구가 충분이 겪고도 남을 스트레스다.

  나를 이길 자가 없을 것 같은 내 것이 됐다고 느꼈던 세상에 스물스물 나 보다 뛰어난 것 같은 뜨끈뜨끈한 젊은 피가 수혈된다. 유치원 때부터 경쟁사회에 적응되었던 터라 통쾌하게 한 번 웃고 쿨하게 넘기려 했지만 마음은 그게 잘 안 된다. 새로 수혈된 젊은 피가 주위의 시선, 돈, 명예 등 때문에 그냥 지나쳤던 젊은 날 가고 싶었던 길을 왜 무시했냐고 자꾸 쿡쿡 찌르기 때문이다. 실력은 나보다 못한다지만 무엇보다 어쩌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 부러운지도 모른다.

  그 때부터 나를 옭아매는 내 콤플렉스, 내 자격지심, 잠재된 불투명한 자아정체성, 열등감 그리고 그것을 숨기려는 알량한 자존심과의 대결이 시작된다. 내 안에서 내가 나를 향해!
 

  내가 이라부였다면 이들을 어떻게 치료했을까? 이라부는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고 사회에서 어느 정도 존경받고 존중 받길 원하는 어른이라는 이름의 이들에게 주사 한방을 반강제적으로 먹인다. 그리고 존중받는 어른이 아니라 내 친구로 옆에 둔다. 나름대로 상당한 직업의식을 갖고 있다는 그 일을, 이라부는 조금 잘하는 친구와의 놀이로 생각한다. 실패해도, 못해도 상관없으니 우선은 체면을 지키기 위해 보여줘야 하는 모습들을 버렸으면 좋겠다고 정말 우스꽝스럽게도 ‘몸으로’ 이야기한다.


  내가 나를 향해 쏜 화살들, 상처투성이지만 가해자도 나이기에 꾹 참아야 하는 모습들. 지금도 소설 속, 작가가 만들어 낸 인물들의 이야기라고 믿고 싶은 나지만,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라부의 치료법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구지 이해해 주지 않아도 된다. 내가 속으로 무슨 계산을 하며 손익을 재고 따지는지 상관하지 않고, 내가 어렵게 생각하는 것들을 단숨에 놀이로 바꿔버릴 수 있는 이라부 같은 무언가. 화살이 꽂힌 자리를 숨기는 것이 더 웃기다고 나 스스로 깨닫게 해줄 무언가.

  그 무언가를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찾길 기대한다. 이게 소설 속 환자들이 그랬듯 어렵지만 '아마도' 정답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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