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의 행복 - 행복해지고 싶지만 길을 몰라 헤매는 당신에게
법륜 지음, 최승미 그림 / 나무의마음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마음밭에 '꽃씨' 뿌리기

 

 

  이따금씩 스스로에게 가혹한 성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타인에게는 감사하며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알지만,  정작 내 자신에게는 고마워하지 않는다.  타인을 칭찬할 줄은 알지만, 정작 내 자신을 칭찬하는데 인색하다.

 
 
  100이라는 목표치를 세워놓고, 70만큼을 해냈으면 'OO아, 70만큼이나 해냈네. 비록 네가 원했던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고생했어. 다음 번에는 75만큼 한번 해보자.'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법이 없다.
 
 

   

  굳이 기억을 거슬러올라가면  유년시절부터 칭찬이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곳은 비평준화 지역이어서, 고등학교들 간에 줄이 세워져 있었고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학교 때부터 내신관리는 당연하고, 고등학교 배치고사를 잘 봐야했다.

 

 

  중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공부를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었어서 반에서 10등, 전교 90등쯤 했던 것 같다. '가정'이라는 교과목 점수가 45점이었던 것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때부터 공부욕심이 있던 편이어서 바로 그 다음 시험에서 반에서 1등, 전교 7등을 했다.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면 '꼬리표'라는 것을 받았고 거기에 전과목 점수, 반등수, 전교등수가 적혀있었다. '우와~ 노력하니깐 되네?' 신기하고 기뻤다.

 

  어린 마음에 부모님께 너무 자랑을 하고 싶었고,
그렇게 빨리, 성적을 엄청나게 끌어올린 내 자신이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하지만 그 때 내가 들었던 말은, "그럼 전교 1등, 2등은 누구니?" 내 '노력'에 대해, 과정에 대해 칭찬받지 못한 것이 그 때 처음 '억울하고 분하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중학교를 전체 전교 4등, 여학생 가운데서는 전교 2등으로 졸업했다는 얘기를 졸업식 때 들었다. 그리고 내가 살던 곳에서 가장 점수가 높은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 번번이 수능에 실패해서 3수를 하게 되었다. 
  한 어른이 했던 말,
"너 고작 거기 들어가려고 3수씩이나 했니?"
그 땐 너무 마음이 삐뚤어져서 그게 '고소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아버지는 내게 "쪽팔려서 직장에 못나가겠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물론, 아버지는 기억을 못하시겠지만, '쪽팔린 존재'라는 게 많이 슬펐다.
 
 
 
 
 
 
  어린 내게 쓰레기를 던지는 어른들의 말은 내 마음에 비수가 되어 박혔고, 객관적으로 충분히 좋은 학교를 다녔음에도, 대학교를 다니던 내내 열등감에 시달렸다. 충분히 자부심을 갖고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대다수였는데, 나는 그렇지 못해서 그런 내 못난 마음이 도드라져 보였다. 그런 못난 마음 때문에 대학교에 와서는 사람을 잘 사귀지 못했다.
 

   대입에서 느꼈던 열등감,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들로 인해 스스로 피해의식을 갖고, 그것을 '보상받기 위해서,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보이기'위한 동기로 처음에 고시 공부에 뛰어들었던 것 같다.
'인정 받고 싶어서'의 또다른 말은 '칭찬이 듣고 싶어서'일 것이다.

 

 

 

 

  내 상처를 보듬지 못하고 그 때 그런 마음으로 내 미래를 결정했던 것을,
지금은 몹시 마음 아파하고 후회한다. 하지만 실전 수능에서 번번이 황당한 결과지를 받아들었던 것처럼, 고시에서의 도전도 내게 패배감을 학습시켰던 것 같다. 두려움은 매해마다 제곱배가 되어 커졌다.

  내가 끝내 그 시험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놓아준 이유는, 그런 내 마음을 끝내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래 매달려왔던 고시를 놓아준 뒤,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늘 미뤄왔던 봉사활동이라는 걸 시작하면서, 내가 처음으로 사회에서 쓸모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참 기뻤다.

 

 

 

 

 

  열등감과 우월감이 동전의 양면인 것처럼, 같은 상황에서도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인 것 같다. 객관적인 상황은 사실이고, '행복하다'거나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상황이나 자극에 대한 내 반응이다.


  책을 읽고 난 뒤, 굳이 청소년기의 기억부터 온갖 실패의 기억들을 끄집어내서 회고적 글쓰기를 할 생각은 없었는데, 이렇게라도 풀어내고 보내주고 싶었나보다. 아직도 내 마음에 '이런 어린아이'가 남아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래, 그랬구나.' 나라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왜 나한테 이런 상처를 줬어?!'라고 그것을 꺼내어보고, 시간이 지나서 또 꺼내어볼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빨리 마음에서 버리고 비워냈으면 좋았을 것을,
내 자신에게 많이 미안하다.

 

 

 


  쓰레기를 끌어안고 살면서 내 마음밭에 꽃이 피길 바라다니, 참 어리석고 이기적이었다.

  '행복의 무기'
나도 이것 하나쯤은 있어야 내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 마음밭에 꽃씨 뿌리기' 



"미안하다, 고생했다, 고맙다." 

이제 행복해져도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