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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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과의 접점들: Connecting the dots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해서 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거나, 서점에 서서 책 한 권을 다 읽고  집에 돌아온 경험이 많았다.

한때는 책을 마음껏 사볼 수 없었던 내 상황이 잠시나마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수시로 빌려 읽으면서 그 중에는 꼭 소장하고 싶고 여러 번 읽고 싶은 책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따로 메모를 해두었다가 중고책방에서 먼저 검색을 해보고 운이 좋으면 중고책으로 구입할 수 있었고, 중고책으로 구하기 어려울 때에는 인내하고 인내하다가 나름 큰 마음을 먹고 새 책을 사서 손에 쥐어보곤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내 것이 된 책들은 읽고 또 읽었다.

 

 

  여하튼, 읽었던 책들의 많은 부분을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렇듯 책을 소유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일일이 손으로 옮겨 적고 기록한 습관 덕분이다.

 

 

 

 

  ★★ 책벌레, 그리고 메모광들과의 만남  

 

 

 

 

   구구절절, 내 경험을 먼저 늘어놓은 것은 그러니깐 이 《책벌레와 메모광》이라는 책이 내가 곱씹어서 여러 번 읽고 싶은 책, 늘 곁에 두고 싶은 책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내 손에 그 책을 쥐고 있을 수 있는 기한이 정해져있다. 그래서 마음에 울림을 준 구절에는 얇은 붙임 종이를 붙여서 나중에 따로 옮겨적은 뒤, 붙임 종이를 하나씩 떼어내고 돌려주곤 했다.

  이 책은 내가 소유하게 된 책이라서 그냥 편하게 밑줄을 긋거나 형광펜을 칠해도 될텐데 이것이 습관이 되어서 하나씩 붙임 종이를 붙여가면서 읽었다. 책을 다 읽고난 뒤에는 붙임 종이가 너무 많이 붙어버렸지만, 그 중에서 가장 내 마음을 아리게 한 부분이 있었다.

 

 '용서인', 남대신 책을 베껴주는 사람

 

  

  그 시대의 용서인들과는 다르게 지금은 책을 사볼 돈이 없어도 마음만 먹으면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백수생활을 하면서 한창 방황할 때에 도서관과 서점에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으면, 땅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서 배가 고파질 때까지 원없이, 책을 읽고 돌아오곤 했으니깐, 그 때는 돈이 없어도 마음만큼은 부자였다.

 

  사실 요즘에는 책을 베껴쓸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이렇게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아쉬운대로 기록을 남기고 기억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손으로 꾹꾹 눌러써가면서 옮겨적은 것보다는 기억의 깊이와 강도가 얕다. 이 책을 통해서 용서인들과 만나면서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혹은 서글프다고 생각했던 것들,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하루하루, 나의 자서전을 써내려가며  

 

 

  굳이 하루를 세세하게 기록하지 않더라도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 하루를 살아낸다는 것 그 자체로 나의 자서전을 채워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는 내 기억이 너무 쉽게 휘발되는 것이 싫고 때로는 두려워서 나의 매일을 기록하고 감사하고, 그 기록과 기억을 바탕으로 미래의 나를 응원하려고 애쓴다.

 

  나이가 들고 스스로의 가치관이나 틀이 굳어지면서 학창시절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 친구를 사귄다는 것이 좀더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래서 취미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가 없다.

 

  나는 스스로를 책벌레, 메모광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주변에는 그런 이가 드물어서 당당하게 내가 '책벌레이고 메모광이라는 것'을 드러내기가 꺼려졌다.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괜시리 나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프레임이 생길까봐 조금은 겁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저자, 정민 교수님, 그리고 책벌레이자 메모광인 선인(先人)들을 이 책을 통해 만나면서 정말 기쁘고 반갑고, 좋은 친구들을 얻은 것만 같았다.

 

  나는 늦깎이 취업준비생인데 눈에 보이는 것들을 쌓아가려는 경주의 한 가운데 서있는 것 같은 기분에 외롭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취업용 문제집이나 교재 이외의 다른 책들을 꺼내들고 읽기가, 지적 소용돌이를 기록하고, 곱씹고, 숙성하는 그 시간을 내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결국 '조급증과의 싸움'이다.

책 속 인물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위로받으며 내가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지,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지는 알고 뛰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바쁜 삶의 호흡을 잠시 늦추며 '조화로운 삶'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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