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스토리
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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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버스토리』를 만나기까지

 

총 700쪽이 넘는 분량, 9명의 인물들이 풀어나가는 이야기, 등장인물들과의 접점이 있는 많은 종류의 나무들... 이 깊고 넓은 책을 내가 온전히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책의 첫 장을 펼치기 전, 그리고 읽어나가는 내내 들었다.

 

 

『오버스토리』는 2019년 퓰리처상을 받은 작품인데, 마치 어린 시절 아버지의 책장에서 먼지가 뽀얗게 쌓이고 색이 누렇게 바랜 『앵무새 죽이기(1961년 퓰리처상 수상작)』를 조심스레 펼쳐보던 때의 감정과 장면이 묘하게 되살아나 오버랩 되는 기분이었다.

 

 

 

나무라는 연결고리로 운명처럼 만난 이들

- '그들의 이야기'

 

각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마치 큰 퍼즐액자의 한 부분을 이루는 것 같다.

각자의 사회, 문화적 배경은 다르지만 그들이 경험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마치 이들이 '숲을 지키는 파수꾼, 혹은 나무의 이야기를 인간사회에 전달하는 대변인이 되기 위한 운명의 장치' 와도 같이 느껴진다.

독자라는 제 3자의 시선으로, 이들의 유년시절부터 따라가본다. 공교롭게도, 혹은 정교하게도 영화처럼 펼쳐지는 각 장면마다 그들 곁에는 나무들이 있었다. 이름 모를 나무들이 아니라, 그들에게 의미있는 '각각의 이름이 있는 나무들'이다.

 

 

 

미미 마 동생들과 함께 나무 아래서 콘 플레이크를 먹는 장면에서는, 수과(瘦果)를 흐드러지게 매달고 있는 뽕나무가 그들의 곁에 있다. 나무를 심기 가장 좋은 때는 20년 전이라지만, 그 다음으로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라 한다. 그 수많은 지금들이 지나간다.

애덤 어피치 네 명의 어피치가(家) 아이들 중 막내이다. 유년시절, 그들의 집 앞에는 각자의 나무들이 한 그루씩 있었다. 느릅나무, 물푸레나무, 아이언우드, 단풍나무가 그것이다. 

애덤이 열세 살이 되었을 때 누나 리의 느릅나무 이파리가 가을도 되기 전부터 노랗게 변한다. 다른 아이들은 하나씩 녹색 식물의 곁에서 떨어져서 다른 사람들의 화려한 파티로 넘어가지만, 애덤은 나무 이파리가 시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식물녀'라고 불리우는 패트리샤 웨스터퍼드는 이 책의 등장인물들 가운데 가장 비중있게 그려진 인물이다. 어린 시절, 반 아이들 중 누구도 '검은호두나무와 미국물푸레나무'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녀에게는 마치 다른 이들이 '식물 장님'처럼 느껴진다.

 

 

 

 

기억의 한 조각 - 나의 '대추나무' 이야기

 

이들처럼 나에게도 나무와의 추억이 있었다.

지금은 그 흔적이 남아있지 않지만, 할아버지댁 마당 한가운데 '대추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어린 시절,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간식이 풋풋하고 아삭하고 달짝지근한 대추였다.

키가 닿지 않아서 빨랫줄 옆에 비스듬히 놓여있는 긴 막대기로 대추나뭇가지를 툭툭 쳐서 대추가 후두둑 떨어지면, 나무가 내게 내어주는 대추들을 낼름 주워 대야에 가득 담아 씻어 먹곤 했다.

이따금씩 할아버지가 직접 따서 주기도 하셨는데, 대추나무에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던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 내게는 참 크게 느껴졌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 추억은 내 기억상자의 한 칸을 오롯이 차지하고 있는데, 나는 이것이 할아버지가 내게 주신 추억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대추나무가 내게 준 추억이자 선물이기도 하다.

 

 

 

 

 

 

그들의 입을 통해 나무들이 말한다.

 

숲을 연구하는데 평생을 바친 패트리샤 웨스터퍼드는 느룹나무가 어떻게 미국 혁명이 시작되는 것을 도왔는지 이야기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한가운데서 500년 된 메스키트나무가 어떻게 자라는지, 절망적인 은신처에서도 안네 프랑크가 창 밖의 마로니에나무를 보고 희망을 품은 이야기에 대해 말한다.

그녀는 나무의 생명력, 나무가 주는 희망을 이야기 하지만 마치 '나무들이 그녀의 입을 통해' 말하는 것 같다.

 

 

그녀는, 아니 나무들은 경제적인 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는 '오래된 숲의 가치'에 대해 말한다. 그 숲은 사람들이 오랜시간 간과했던 '자연의 신비한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내가 가진 것들을 물끄러미 둘러본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유용한 도구들, 책상, 옷장, 연필 등 모두 나무가 내어준 선물들이다.

하지만 자연이 내어준 선물들이 어떻게 우리에게로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 밖이 된지 오래이다.

 

 

 

 

책 안으로 들어가, 문장 사이의 여백을 거닐다.

 

관찰자 시점에서 이 책을 읽던 나는, 어느새 책 안으로 흠뻑 들어가 문장과 문장 사이 여백을 거닐고 있었다. 등장인물들의 유년시절로 시작한 이 책은, 어느덧 그들이 청년과 중장년을 지나 노년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두께 4cm, 700쪽 남짓한 종이에 그들의 일생이,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전하려고 했던 나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는 앞으로 어떤 가치를 품고 살아갈 것인지 반문하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내일의 세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예닐곱 꼬맹이 때부터 나는 책이 너무 좋았다.

흔들리는 어둑한 차 안에서 책을 읽다가 엄마에게 혼나기도 하고, 잠을 안자고 책을 읽는다고 꾸중을 들을까봐 의자 밑에 몰래 숨어서 책 속 문장 사이를 헤맸다.

(그 덕분에 10살 때부터 안경을 쓰게 되었는데, 그게 싫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된 지금도, 종이가 주는 질감, 책장을 넘길 때의 느낌, 활자가 내 마음 속에, 머릿속에 들어와 화학작용을 일으킬 때의 그 모든 순간을 사랑한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다른 이들에게는 미친 파수꾼들 혹은 급진 환경주의자들로 비춰질 수 있다.

작가는 나무가 인간에 의해 이용되고 소유되는 존재가 아니라, 독립성을 가진 지독히 아름답고 기적적인 생명체라는 것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듯 하다.

이 책에서 만난 애덤 어피치가(家) 형제들의 메시지가 내 마음에 포자(spores)처럼 살포시 내려앉았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 품고 있는 꿈, 생각에 따라 같은 책이라 하더라도 다르게 읽힌다.

지금 나는 싹을 티우기 전의 작은 씨앗일지 모르지만, 새싹을 움틀 것이고 시간이 걸려 웅장한 아이언우드 나무처럼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책 속을 거닐었을 뿐인데 희망이라는 선물까지 받았다.

 

 

책장을 덮고 나서 나의 현실로 돌아왔을 때, 길을 걷다가 마주친 이름 모를 나무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무와 읽은 후의 나무가 다르게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이 장편소설이 주는 묵직함 만큼이나, 이 책이 주는 가치는 충분했다.

그리고 다시 내게 말을 걸고, 과제를 던진다.

 

 

★ 원문 http://1winme.blog.me/221547433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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