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시아의 여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5
윌리엄 트레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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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펠리시아는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며 처음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과 조니는 사랑에 빠졌다고.

 

나는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 힐더치는 펠리시아를 사랑했다고. 그렇다면 아마 펠리시아의 앞을 가로막았던 여성들처럼 사람들은 힐더치는 연쇄살인마로 봐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사실 위의 장면 펠리시아가 자신과 조니는 사랑을 한 것뿐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바라보는 시선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뉠지 모른다. “항상 널 생각할 거야라는 말만 남긴 채 사라진 남자친구이자 펠리시아 뱃속 아이의 아버지 조니를 독자와 펠리시아를 제외한 인물들은 그녀를 이용했다고, 혹은 사랑을 운운하며 정작 중요한 지켜야 할 책임과 도리로부터는 도망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펠리시아는 그런 그들에게 다시 한번 그런 게 아니라고 항변한다

 

항변을 하던 펠리시아가 입을 다물게 된 건 실패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여정 속에서 만난 이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하느님,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던 그녀는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끝내 조니를 찾지 못했고, 아이는 몸속에서 지워졌다. 그런 그녀에게 온전한 친절을 베풀었던 것은 힐디치뿐이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얼굴의 반대편을 보지 못한다. 그 반대편을 따뜻하게 데워주기 위해선 고개를 숙여야 하며, 생각을 뒤집어야 한다.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작가는 세상 어디에나 자비와 경멸이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사랑을 더하고자 한다. 힐디치는 펠리시아의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녀의 돈을 감춰 그녀를 곤경과 비난에 빠지게 했다. 잘못된 행동, 잘못된 사랑일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힐디치에게 잘못된 행동을 했듯이, 그가 전부라고 믿었던 친구들이 하나씩 그를 떠나고, 그가 스스로 착란과 망상을 겪고 있다고 느끼듯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다. 타인의 시선을 늘 신경 쓰던 그가, 사라진 펠리시아를 걱정하며 자기만 아는 이유로 차를 지나쳐 그냥 가버렸다고 말한다. 그는 펠리시아를 곁에 두고자 그녀의 돈을 훔쳤다. 이를 자신을 찾아온 캘리거리에게 고백하자, 캘리거리는 펠리시아를 비난했듯이 순식간에 그를 비난한다. “그 남자는 보기와는 다른 사람이었어요.” 보이는 것이 전부인 사람은 없다.

 

펠리시아는 힐디치에게 의지하다 어느 날 밤 문득 그 여자들이 죽었다고 생각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정확한 정황을 던져주는 것은 없다. 그저 분위기를 만들 뿐. 심증만으로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것만으로 힐디치를 살인마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결심을 펠리시아의 말을 빌려 대신하고 싶다. 펠리시아는 다시 한번 자신도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되뇌다 조심스러운 회의가 들어, 여전히 자신이 확실히 아는 것만을 선택하리라 생각한다

 

펠리시아도 힐디치도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어머니를 잃었고, 사랑에 실패했으며, 자신의 것을 지켜내지 못했다. 그들이 절망했을 때 자비가 있었어도, 그들의 울음에 응답해주는 누군가가 있었어도 과연 그들이 삶의 여정에서 방황하고 배회했을까. 소설은 이런 질문을 던지며 끝이 난다. 아이들은 엉망이 된 삶에서 도망치기 위해 길을 떠났다. 하지만 그런 이들을 누군가는 밑바닥 인생이라 부른다. 진실은 감춰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무엇을 볼 것이냐는 선택에 달린지도 모른다. 진실이 감춰진 길 위에 꼭 절망과 경멸만이 있는 건 아니듯, 자신의 존재 이유를 길 위 부랑자들에게 바치던 치과의사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펠리시아와 조니가 나눈 것이 사랑일 수 있을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차가운 반대편을 데우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과 행동을 하며 끝없이 후회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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