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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개인주의자로 살다보면 필연적으로 무수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고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와 다른 타인을 존중해야 하는가. 아니, 최소한 그들을 참아주기라도 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가끔은 내가 양보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내 자유를 때로는 자제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타인들과 타협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과 연대해야 하는가.
결국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목적이고 나머지는 방편이다.
-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을 요약하면 8글자다. 우리가 남이가? 튀는 걸 곧 죄악시하는 우리 한국 사회에서 제일 부족한 건 관용의 정신이다. 단체를 강조하고 집단주의 문화가 갖는 장점도 분명 있지만, 그것은 오로지 결과만 강조하는 구시대적 유물이다. 개인의 희생을 강조하면서 예전 사례를 들먹이는 것은 꼰대가 하는 짓이다. 그런 꼰대를 팩트로 폭격하며 유명세를 얻은 판사 문유석의 개인주의 담론집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찌 보면 가장 경직된 조직, 수직적인 문화가 팽배한 법조계에서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그와 공감하는 성향의 숨은 개인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 역시 기본적으로 이타심이 크지도 않고, 인간애가 넘치는 휴머니스트도 아니라며 고백하며 자신의 고민을 담담히 풀어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는 그의 인생 모토는 너무나 공감이 되더라. 다양한 사례를 관통하는 그의 메시지 개인주의는 결코 이기주의와 같은 말이 아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신의 이익, 쾌락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이기주의다.
반면 문유석 판사가 꿈꾸는 사회는 어찌보면 개인의 자유를 논하면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되짚어보는 곳이다. 대단한 명판결로 사건을 한번에 해결하는 일보다 억울한 이들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국가가 갖출 최소한의 예의에 대해 고민하는 그는 분명 이기주의가 아닌 합리적 개인주의자다.
법을 다루는 지위의 사람이 어찌보면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공정한 사회의 룰을 강조하는 것은 신기했다. 돈 몇푼에 사람을 쉽게 죽이고, 욕심에 사로잡혀 사기를 치고, 국가적 재난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자들과 시스템의 붕괴를 일반인보다 훨씬 낱낱이 지켜볼텐데 그런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금세 나약한 인간에 환멸을 느끼고,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에 불만을 갖고 욕하면서도 순응하기 바쁠 것 같은데 문유석 판사는 더 나은 공동체, 그 속에 행복을 찾는 따뜻한 인간을 찾으려 애쓴다. 진짜 문제는 본인이 따뜻한 멘토라 생각하고 결과주의, 단체주의란 허울 아래 폭력을 일삼으면서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문제적 인간들이다.
분명 피곤하고 괴롭고 외로운 시대다. 학교, 직장, 사회, 결혼, 육아, 거주, 살림살이. 뭐 하나 여유있고 더 나아졌다고 확실히 말하기 미안한 게 '헬조선'이다. 타인에게 양보하고 존중하는 것은 패자의 변명이고, 모조리 가로채야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자신이 정글같은 세계에서 왕으로 군림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합리적이고 환영할만한 논리겠지만, 절대 다수는 남은 조각을 가지고 다시 싸워야할 운명이다. 나는 1등으로 살아남을 자신도, 그러고 싶은 욕심도 없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묵묵히 일하고 열심히 참고 이겨낼 뿐이다.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를 항상 명심하고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며 최대한의 행복을 끌어내고 싶다. 이런 마음가짐의 변화만으로도 조금씩은 공동체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