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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반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요즘 우리들에게 가장 두려운 상황은 스마트폰 배터리 부족 알람이 깜빡이는 순간이다. 21세기는 정보의 홍수를 넘어 정보의 과잉 시대로 변질됐다. LTE 속도로 클릭 한번이면 온갖 정보들이 쏟아지고, 궁금한 게 있으면 최고의 지성집단 '지식인'을 먼저 찾기 마련이다. 옛날처럼 도서관 대출에 목맬 필요도 없고, 힘들게 물어물어 그 분야의 대가를 찾아갈 것도 없다. 하지만 정보의 접근성이 높아진만큼 오히려 신뢰도는 떨어지고 논리는 빈약해지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페이크뉴스와 허위 루머가 한번 퍼지면 쉽게 바로잡기 힘들고, 내용의 구성이 조악한 발표나 PPT가 판을 친다. (얼마나 심하면 대학 강의 발표시 지식인, 위키백과처럼 오픈소스 라이브러리 정보는 사용하지 말라고 미리 말하는 경우도 있다.) 정보의 과잉 시대에 필요한 고급 정보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훌륭한 결과물로 빚어내는 건 '편집'의 힘이다. 그리고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이자 문화심리학자인 괴짜 김정운 교수가 펴낸 <에디톨로지>는 이런 문제를 콕 짚어낸 책이다.
'에디톨로지는 다시 말해 '편집학'이다. 세상 모든 것들은 끊이없이 구성되고,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이 모든 과정을 나는 한마디로 '편집'이라 정의한다.'-24페이지
'융합형 인재, 크로스오버, 통섭.' 정보 과잉 시대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과 비슷한 개념인 '에디톨로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새로운 생각을 창조해내는 지혜와 힘은 결국 에디톨로지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 <남자의 물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등 다른 저서들과 비슷하게 유쾌하면서도 (마음먹고 논문투로 글을 쓸 정도로) 진중하고 묵직한 느낌도 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성경 구약처럼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다른 편집이다. 그럴듯한 짜깁기, 표절과 묘하게 다른 영역에 있는 구체적이고 주체적인 편집 행위에 대한 분석이 다양한 사진, 그림 자료와 함께 있다. 그대로 차용하는 게 아니라 한단계 발전시키고 심화시키는 게 편집학의 매력이자 진정한 힘이다. 역사상 위대한 천재라 불리는 이들도 아예 새로운 걸 창조해낸 신은 아니기 때문이다. 독일의 통일이 단순한 우연의 결과였다는 에피소드, 스티브 잡스의 창조성은 결코 새로운 게 아니라 누누이 본인이 주장했었다는 등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색다른 관점이었다. (한편으론 자기 자랑같이 느껴졌지만, 이렇게 대놓고 하는 건 오히려 적대감이 덜하다.)
뭔가 새로운 것을 손에 쥐려면,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한다. 지금 손에 있는 것 꽉 쥔 채 새로운 것까지 손에 쥐려니, 맘이 항상 그렇게 불안한 거다. -377쪽
사실 MBC 간판 예능 <무한도전>을 보면 얼마나 편집의 힘이 큰지 알 수 있다. 여기저기 멘트가 맞물리는 상황을 빅재미로 살리는 건 PD의 자막과 특수효과 등이다. 아울러 PD의 생각까지 자막으로 상황에 덧붙이며 질적으로 다른 색다른 형식의 예능으로 거듭났다. 결국 비슷비슷한 재료를 가지고 얼마나 훌륭하게 빚어내는 가는 편집자의 몫이다. 직접 편집자가 되는 경우도 많지만 편집되어 나온 결과물을 융통성있게 받아들이는 것도 능력이요, 실력이다.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고, 해석하는 것도 에디톨로지의 영역이다. 가장 알맞은 예로 김정운 교수는 빌게이츠와 스티브잡스를 비교한다. 빌게이츠의 교장 선생님 훈화말씀과 비슷한 친절한 연설은 기부와 교육의 기회 제공 등 훌륭한 내용을 일관되게 이어진다. 하지만 'Stay hungry, Stay foolish'로 요약되는 스티브 잡스는 듣는 이에게 해석의 장을 열어준다. 그렇기에 괴팍하지만 매력적이고 거듭 회자되는 연설이란 것이다. 이밖에도 독일, 일본 거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다양한 에피소드, 축구 이야기, 프로이트 신랄하게 까기 등 전방위를 넘나드는 화려한 편집술은 독자의 흥미를 끌기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