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라면 으레 피라미드. 에펠탑같은 유적이 박살나거나 워싱턴 시내가 대혼란에 빠지는 장면부터 떠오른다. 하지만 한국에서 <컨택트>로 개봉한 드뇌 빌뇌브의 영화에는 언어, 시간 등 다양한 생각할 거리가 가득 담긴 차분한 SF영화였다. 12개의 외계 비행 물체가 세계 각지에 등장했고, 정체 모를 햅타포드와 소통하기 위해 언어학 전문가가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면서 햅타포드가 보기에는 시간에는 시작과 끝이 없고, 과거와 미래가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기억인줄 알았는데 미래의 일일 수도 있고,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이해할 수도 있다. 목적론적 세계관이 중심인 <컨택트>의 원작 소설은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 최고의 과학소설에 수여되는 네뷸러상, 휴고상, 로커스상, 스터전상, 캠벨상, 아시모프상, 세이운상, 라츠비츠상까지 8개상을 모두 석권한 테드 창 작가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총 8개의 SF 소설이 담겨있다.

-만약 성서 속의 그 탑을 쌓아올려 실제로 ‘하늘의 천장’에 닿는다면 어떻게 될까? _「바빌론의 탑」
-만약 인간의 지능이 인공적으로 계속 강화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원하게 될까? _「이해」
-만약 외계의 생명체가 지구를 방문하고 지구의 언어학자가 그들의 언어를 배우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_「네 인생의 이야기」
-만약 한 수학자가 수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증명을 도출해내게 된다면? _「영으로 나누면」
-만약 일흔두 글자만으로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된다면? _「일흔두 글자」
-만약 인류과학자들의 지성이 인류의 과학 발전을 따라갈 수 없게 된다면? _「인류 과학의 진화」
-만약 전능한 신과 그의 천사들이 정기적으로 지구를 방문하여, 사람들에게 축복과 고난과 응징을 배분한다면? _「지옥은 신의 부재」
-만약 외모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느끼는 뇌의 기능을 임의로 차단할 수 있다면, 당신의 선택은? _「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 다큐멘터리」
- 출판서 서평 中

삶의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색다른 상상을 이어가는 8가지 소설은 그 자체로 경이롭고 신비하다. 전형적인 문과생 출신으로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과학도 테드 창의 소설이 어려운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과학이 줄 수 있는 지적 상상력의 극한을 살짝 엿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신비했다. (배경지식이 조금 더 폭넓었다면 이야기에 몰입도가 달라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영으로 나누면>은 거의 이해하지 못한채 책장을 넘겼으니.) 이야기를 읽고 테드 창의 창작 노트를 읽어보니 인간의 '감정'이 중심이고 과학은 훌륭한 소재이자 배경이더라. 읽는 내내 할리우드 영화로 구현하면 무척 화려하고 재밌을 것 같단 생각이 자주 들었다. 천사의 등장과 영험함을 체험해 천국을 가기 위해 기다리는 인간들의 행렬이 그려지는 <지옥은 신의 부재>, 인간 두뇌를 극한으로까지 끌어올렸을 때 벌어지는 두뇌 싸움이 기대되는 <이해>, 성서속의 탑이 하늘의 천장을 닿는 웅장한 규모의 <바빌론의 탑>. 각각 소설이 영화화할 거리가 무척 넘쳐나는 소설이었다. 특히 인간의 지능을 인위적으로 향상시켜 한차원 위의 세상에서 사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해>는 실제 영화화가 결정되었다. (머리를 밀어야한다는 것만 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캐릭터다.) 과연 내 기억이 과거가 아닌 미래의 일이라면? 온 세상의 패턴을 읽어낼만한 엄청난 지능을 가진다면? 즐거운 상상만으로도 이미 SF 소설의 묘미는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그나저나 만약 내가 아이의 죽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과 절대 반복될 수 없는 추억을 위해 끌어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