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Voice - 스탠딩에그 포토 에세이
에그 2호 글.사진 / 한겨레출판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기도할게, 모두 다 사라져도
너도 내 곁에 있기를.
그래, 나 너의 아픔 지워주진 못하지만
- 스탠딩에그, 「Voice」 中


연말 공연 리스트를 찬찬히 살펴보다가 심드렁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설레는 마음으로 후분군을 추리고 노래를 듣기보다는 차분하게 보고서를 읽듯 클릭을 이어갔다. 25일에 회사를 출근해야하는 슬픈 운명때문이기도 했지만, 여러모로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져서 정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하나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캐롤을 들을 여유가 없었고, 실제로 흘러나오지도 않더라. (저작권 때문이라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잔잔하고 달콤한 노래로 익히 들어온 스탠딩에그 콘서트에 갑자기 끌렸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노래를 추천하고, 푹 자기를 바라던 그때가 어렴풋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정작 'Little Star'를 추천한 나는 가사에 흠뻑 빠진채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곯아떨어졌지만. 뭔가 신나고 밝은 느낌보다 차분히 연말을 정리하고 따뜻하게 마무리하고 싶었기에 '스탠딩에그 전국투어 콘서트'를 택했다.

하지만, 그건 완전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엄청나게 웃었다. 노래도 노래지만 네버엔딩 사연 소개가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목소리로만 자신을 상상했던 관객에게 미안하다는 셀프디스를 시작으로, 시크함+간결함의 극치를 달리는 신청곡 시간은 정말 유쾌했다. "네, 그건 불러드렸고요.", "아, 이런 제목은 없고요.", "그렇다면 다음에 들어보시고요.", "자랑하시는 건가요? 아까 읽어드렸고요." 등등. 애드립이 분명한 30여분의 사연 소개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어떤 라디오든 빨리 이 시크하면서 수다스러운 입담꾼을 데려가라고 추천하고 싶을 정도였다. 쟁쟁한 아이돌 신곡을 꺾고 차트 반란을 일으켰던 스탠딩에그는 노래뿐 아니라 예능감부터가 아이돌 이상이었다. 거의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이끌어가는 유희열의 입담과 견줄 정도로 재치 넘치고 엄청 웃겼다. 게다가 잔잔한 어쿠스틱, 호소력짙은 목소리라 알았던 스탠딩에그의 노래는 매우 다채로웠다. 랩이 담긴 빠른 노래부터 펑키 댄스 등 자신의 이야기를 다양한 그릇에 담아내더라. 물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오래된 노래'를 앵콜곡으로 불러주며 무반주에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진심을 담아내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콘서트의 여운, 정확히 말하면 이토록 유쾌하고 노래를 (생각보다 더!) 잘하는 뮤지션의 일상이 궁금해 '에그 2호'의 포토 에세이도 구매했다. 토이, 015B처럼 객원보컬을 쓰는 그룹인줄 알았는데 에그1호(작곡), 2호(작곡, 보컬), 3호(작사)로 구성된 인디밴드였다. 매년 최고의 인디밴드상을 휩쓸고 있지만 인디라 하기엔 너무나 유명해진 그들의 노래는 꾸밈없이 일상의 감정들을 담아내서 좋았다. 최근 결혼한 에그 2호의 일상을 담은 <VOICE> 역시 담담하게 읽기 좋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옆집 신혼부부의 일상을 조곤조곤 듣는 느낌이더라. 그는 음악과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이자(실제 일진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광대의 추억도 있다),  레고에 푹 빠졌다가 문득 미국으로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이자, 노래에 대한 영감이 나오지 않아 고민하다가 불안해하기도 하는 뮤지션이었다. 그리고 사랑스런 강아지 망고의 아버지기도 하다.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아버지와 아버지의 어머니, 할머니를 추억을 곱씹는 장면은 참 따뜻했다. '스탠딩에그 콘서트 보기'가 버킷리스트였던 한 팬의 죽음에 함께 펑펑 우는 모습은 안타까웠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하지만 너무나도 특별한 행복이란 감정과 마주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더라. 기계처럼 노래를 찍어내는 딴따라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풀어내는 뮤지션답게 무척 감수성이 풍부해보였다. 일상의 소중함이 고스란히 글에 담겨 있어 읽는 내내 부담없고 지난 나의 일상도 돌아보게 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일한다는 이유로 항상 성취해야할 목표를 억지로라도 설정하고 그 안에서 위안을 찾았다. 물론 성취했다는 뿌듯함보다는 성취 단계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자기위안이 8할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대단한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과 조곤조곤 하루 일상을 공유하는 일, 그리운 가족에게 보고싶다 말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 문득 지나가는 길에 꽃을 사들고 하루 내내 행복한 일, 점심 메뉴가 내가 좋아하는 샌드위치가 나오면 1시간 전부터 설레는 일(?), 스탠딩에그의 새로운 명곡을 알게 되어 찾아 듣는 일. 이 모든 소소한 행복이 모여 내 삶을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가꿔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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