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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일 것 행복할 것 - 루나파크 : 독립생활의 기록
홍인혜 지음 / 달 / 2016년 11월
평점 :
항상 여행을 떠날 때는 함께 읽을 책을 한권씩 들고 갔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 대부분이라 책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잠시 산책을 하고 카페에 들러, 남는 시간을 보내는 가장 큰 동행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가 아닌 함께 떠나는 여행인 만큼 조금은 가벼운 책을 골랐다. 제목부터 <혼자일 것 행복할 것>. 혼자가 아닌 상황에서 읽는 혼자의 행복이라. 평소 '나 혼자'의 길을 당당히 외치며 살아가는 독립적인 인간이지만 이제는 함께 하는 일에 익숙해져야하기에 나름 의미있는 선택이었다. <혼자일 것 행복할 것>은 카피라이터이자 카투니스트인 홍인혜 작가의 1인 독립가구 이야기다. 처음에는 '낢이 사는 이야기'와 '루나파크'가 헷갈렸지만, 어느덧 루나의 블로그도 살펴 보며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팬이 되었다. 자연스레 새 책도 구매했고 대학 시절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2년여의 자취 생활이 떠올라 기대를 안고 책장을 넘겼다.
단순히 일기 형식의 글뿐 아니라 깨알같은 루나의 카툰과 살림살이 추천 등 만화도 담겨있어 반갑고 읽기도 즐거웠다. 게다가 혼자말 사전에서 선정한 키워드들에 대한 짤막한 단상을 풀어내며 카피라이터의 능력치도 선보였다. '혼술, 혼밥'이 유행처럼 번지며 1인 가구에 대한 환상은 점점 커져가는 게 현실이다. 오롯이 자기만의 공간에서 차별화된 취향으로 꾸미고, 반려묘나 반려견을 키우며 지내는 일상. SNS를 가득 채운 행복한 독립적인 공간은 사실 빙산의 일각이자, 유행처럼 번지는 지향점에 불과했다. 루나는 <혼자일 것 행복할 것>에서 핑크빛 자취가 아닌 반대와 역경, 고비와 불편함을 빼먹지 않고 기록했다. 그녀는 집을 나오겠다는 결심에서부터 반대에 부딪힌다. '대입-졸업-취업-결혼-육아'란 반강제적으로 꾸려놓은 길을 따라가라는 사회는 1인 가구를 탈주자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첫번째 에세이집 이름처럼) 루나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큰 다짐을 하고 과감하게 집을 나선다.
나름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이라 여겼지만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집을 구하고 나서도 흉흉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여자 혼자 사는 티를 내지 않아야 했다. 주변 이웃의 층간소음으로 유발된 싸움에도 마음 졸여야 했으며, 그동안 집안은 엄마의 손길이 엄청나게 뻗쳤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낀다. 때로는 홀로 외롭고, 때로는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에 우울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울타리에서 한뼘 자란다. 야구 중계와 치맥을 때리는(때린다는 표현만큼 입에 딱 달라붙는 단어도 없다!) 저녁, 타인의 재능을 부러워하면서도 차근차근 시를 쓰기도 한다. 게다가 개인PT까지 신청해 운동도 하며 건강의 중요성도 몸소 느낀다. 나 자신과의 대화를 소홀히 하지 않고 진정 원하는 욕망을 찾아가며 삶 전체의 균형을 잡아나가는 과정이 제법 흥미롭다. 무엇보다 자신의 취미를 새롭게 찾아내 흥미를 붙였다는 점은 정말 바람직하고 부러운 일이었다. 단순히 스마트폰에만 빠져 손가락 운동만 하다가 퇴근 후 여가시간을 보내는 회사원이 매우 많은 세태에서 말이다.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거치며 점점 나아지는 루나의 독립생활을 보니 지난 자취방이 생각났다.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에 좋다고 계약했지만 서서히 안좋은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자본주의 세상에서 공짜는 없더라. "아이고, 할머니가 가고, 학생이 왔네.."란 옆집 할머니의 말을 곰곰히 샘각해보니 전 세입자는 고향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가셨던 것이었다. 여름철엔 대구 최고 기온을 가볍게 뛰어넘어 선풍기가 무력화되었으며, 겨울에는 수도가 얼어 머리를 감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심지어 최악의 경우 쥐가 눈 앞에서 튀어나온 걸 보고 여동생과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함께 침대 위에서 벌벌 떨며 잤다. 하지만 학교 앞에서 살며 삶의 질이 달라졌고, 나름 동생과 소소한 음식을 해먹으며 매우 잘 지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곳에서 살았나 싶지만 20년 넘게 부모님의 따뜻한 손길 아래 자랐던 나에게 충분히 훌륭한 경험이었다. 새삼 부모님의 고마움과 강제로 길러진 독립심이 전세금과 함께 내게 남은 자양분이었다. 이제 다시 새로운 공간을 나만의 취향, 아니 타인의 취향과 절충선을 찾아 꾸밀 시간이다. '다른' 것은 있을지 몰라도 '틀린' 것은 없을 게 분명하다. 온전히 내 편이 되어줄 사람과 독립적인 공간을 함께 꾸밀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배려하고 맞춰가며 작지만 넓은 우리만의 세계가 탄생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