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부터 천천히
박솔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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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부터 천천히>는 새파란 배경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연푸른 빛깔의 하늘이 쭉 펼쳐지고, 그 아래에는 더욱 진한 파란 수영장이 펼쳐져 있었고, 그 위로는 '머리부터 천천히' 뛰어드는 한 사내가 있었다. 박솔뫼 작가의 장편 <머리부터 천천히> '여름', '부산'이란 이미지로 기억될 소설이다. 사실 이야기를 요약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인상적인 명장면이나 명대사도 딱히 꼽기 어려웠다. 그저 머릿속에서 자유롭게 뛰놀고 맴도는 이미지들이 한데 뒤엉켜 빛나는 기분이었다. 

 
표지만 보고는 가볍고 말랑말랑한 일본 소설이 떠올랐지만, 페이지를 넘길 수록 난해함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혼수상태에 빠진 병준, 중환자실을 드나드는 옛 애인 우경, 세 명의 화자가 번갈아 등장하며 심지어 전구, 침대, 의자 등도 말을 이어간다. 시제가 증발한채 중문과 비문이 이어지기도 하며, 시가 느닷없이 등장한다. 또 길게 이어지고 뒤섞인 문장들은 자연스레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기 일쑤였다. 마치 꿈처럼 뒤죽박죽 이어지는 문장들을 마주하면 언제 마무리될지 의아했다. 
 
"소설의 범위라는 게 굉장히 넓잖아요. 그런데 소설의 영역 자체를 굉장히 한정 지어놓고 '너는 좀 다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쓰냐'고 해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안 쓸 이유가 없다'고 말하죠. 끊임없이 더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선택이기도 했고요. 어떤 작가를 구분 짓는 특성이 있다고 했을 때, 그 특성은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요. 이를테면 제가 유려하게 쓰는 걸 못해서 이렇게 쓰는 것일 수도 있고요.(웃음) 그래서 저의 이러한 특성은 어느 정도는 의도됐고, 어느 정도는 못하는 것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무의식으로 되는 것 같아요." - 박솔뫼 작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막상 읽고 나니 힘겨운 숙제를 겨우 끝낸 기분이었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그렇게 읽지 않는 걸 추천했으나...) 실제 책을 읽는 속도도 더뎠고, 내용을 이해하려 애쓰기 보다는 그저 문장 하나하나에만 집중하니 조금은 어려움이 덜하더라. 아리송한 문장들이 실험적으로 짜여진 소설을 읽는 내내 궁금증은 커졌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가 갈피가 잡히지 않았지만, 그런 혼란스러움도 색다른 감정이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공간'에서 제멋대로 빛나는 이야기 속 인물들이 마치 흔들리는 젊은 세대 같기도 하다가도 세대라 표현하기에는 그리 거창한 거창하다 못해 지나치게 단정적일 수도 있으면서도 중문을 이어서 쓰다보니 아무나 할 수 있거나 없을만한 영역의 것이 아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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