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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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스의 장편 소설 <스토너>는 한 남자의 일대기다. 거창한 모험이랄 것도 없는 게, 미주리 대학에서 크게 벗어난 적도 없다. 열정적인 사랑에 흠뻑 빠지지도 않았고, 그저 진정한 사랑을 뒤늦게 만나 고민에 빠졌다가 조용히 흘러갔다. 정치판이나 다름 없는 대학 교수 사회에서도 조용 조용 자기가 할 일을 묵묵히 하며 끝까지 버텨 정년을 맞이했다. 미주리 대학교 박사학위를 받은 존 윌리엄스가 분명 허구의 장소, 허구의 인물을 담아냈다고 말했지만, 너무나도 거울을 보는듯한 소설이었다. 실제 잊혀진 지 제법 오랜 시간이 흘러 뒤늦게 재조명을 받는 <스토너> 작품마저도 그를 닮았다. 번역의 문제인지, 나는 영미 소설을 읽을 때며 항상 잘 와닿지 않는 편이었다. 그리 문법이나 번역체에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눈에 밟히면 흐름이 끊기곤 해서 좋아하지 않는데 <스토너>는 달랐다. 농촌, 아니 깡촌에서 태어나 대학교에 처음 들어와 자신이 평생 함께할 학문을 맞이하는 신비로운 경험은 그저 놀라웠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그려온 대학 캠퍼스의 분주함과 적막이 흐르며 지적인 대화가 오가는 교실은 딱 그랬다. 칠판에 적힌 공식을 빼곡히 받아 쓰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몸으로라도 외우곤 했던 정답들이 고등학교의 전부였다면, 대학은 달랐다. 괴짜 교수는 질문을 던져놓고 학생들은 자유롭지만 치열하게 자신의 생각을 주고 받는 그런 지성의 무대가 대학교였다. 물론 실제 대학교의 여러 모습은 그저 고등학교의 확장판이나 다름 없었지만, '철학과'라는 다소 마이너한 전공을 택했기에 이런 로맨스는 종종 있었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경험을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슬론의 시선이 윌리엄 스토너에게 되돌아왔다. 그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 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이 한참 동안 숨을 멈추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허파에서 숨이 빠져나갈 때마다 옷이 움직이는 것을 세심하게 인식했다. 그는 슬론에게서 시선을 떼어 강의실 안을 둘러보았다.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온 햇빛이 동료 학생들의 얼굴에 안착해서, 마치 그들의 안에서 나온 빛이 어둠에 맞서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한 학생이 눈을 깜박이자 가느다란 그림자 하나가 뺨에 내려앉았다. 햇빛이 뺨의 솜털에 붙들려 있었다. 스토너는 책상을 꽉 붙들고 있던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그 갈색 피부에 감탄하고, 뭉툭한 손끝에 꼭 맞게 손톱을 만들어준 그 복잡한 메커니즘에 감탄했다. 작고 작은 정맥과 동맥 속에서 섬세하게 박동하며 손끝에서 온몸으로 불안하게 흐르는 피가 느껴지는 듯했다.


스토너를 괴롭힌다고 봐도 무방한 아내 이디스와의 삐거덕거림에도 그는 꾸준히 책을 읽었다. 딸 그레이스와 가장 행복하고 빛나는 추억이 담긴 곳도 서재다. 사실 스토너는 그리 유쾌하거나 주목받을 캐릭터는 아니다. 심지어 다들 분위기에 휩싸여 참전하던 세계대전 시기에도 그저 자기가 할 일, 가장 하고 싶은 공부를 이어가니 말이다. 친구도 학장인 핀치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로맥스 교수가 죽도록 미워하며 자신의 힘이 닿는 데까지 스토너를 괴롭힐 때도 스토너는 그저 힘들어하며 불편한 강의를 이어 간다. 사실 요즘 한국 대학 사회를 보면 정교수 자리에 올라 정년까지 저술 활동도 한 그는 성공한 삶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답답함은 끊이지 않았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라면 화려한 성공을 위해 도전하거나 핏대를 높일 법도 한데. 속시원하게 화를 내기는 커녕 그저 자리를 쓰윽 피하는 게 전부인 스토너는 애초에 싸움닭이 아닌 곰 같은 사람이었다. 버티는 삶, 어찌 보면 요즘 세상에 가장 필요한 덕목을 갖춘 스토너의 삶을 함부로 성공이다, 실패다 재단하긴 이르다. 슬픔과 고독을 견디며 자신만의 길을 걸은 그가 행복했을지, 아니면 불행했을지는 오롯이 자신의 영역이니 말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주제 넘게 타인의 고통에 공감을 넘어 연민의 감정으로 다가가면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인생이라고 느껴지더라도 그 길을 택한 건 결국 본인이고, 그가 주인공이니 말이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고정시켜주기를 기다렸다. 창밖을 지나가는 햇빛이 책장을 비췄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 쓰인 글자들을 볼 수 없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은 딸 그레이스와의 멀어지는 순간이었다. 책을 읽어주고, 도란도란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던 귀여운 딸 아이는 엄마의 강압에 이끌려 자신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극단적인 임신, 결혼이란 도피를 통해 벗어날 때까지, 그리고 술에 잔뜩 중독되어 몸을 못 가눌 때도 스토너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적어도 식탁 머리에서의 예의를 강조하며, 아이를 자신의 인형으로 길러내려던 아내에는 당당히 맞섰어야 한다. 그레이스가 원했던 것은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대화. 그것만이 그녀가 원했던, 그리고 흔들리는 그녀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다. 나에게는 결코 그 어떤 가치관도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의 시간보다 중요하지 않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일이 얼마나 화려해도, 가족이란 근원적 힘이 없다면 허망한 알맹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스토너의 묵묵히 버티는 삶에 많은 공감을 하는 차분한 성격의 나지만, 이것 만큼은 결코 따라할 마음이 1%도 없다. 내 인생이 중요한 만큼, 제법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가족의 영역도 소중하니 말이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마침내 스토너가 말했다. "뭐, 걱정 마라. 다 잘될 거야.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네가 원하는 일이 무엇이든, 다 잘될 거야."

"네." 그레이스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의자에서 일어나 아버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버지랑 저, 이제는 이야기를 할 수 있네요."



<인상 깊은 글귀>


그는 1918년 봄에 박사학위 필수과정을 모두 마치고 그해 6월에 학위를 받았다. 그보다 한 달 전, 장교 훈련학교를 거쳐 뉴욕시 바로 외곽의 훈련소에 배치된 고든 핀치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가 여가 시간을 이용해서 컬럼비아 대학을 다니는 것을 허락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곳에서 그 역시 박사학위 필수과정을 그럭저럭 마치고, 여름에 그곳 사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게 될 예정이라고 했다.

편지에는 또한 데이브 매스터스가 프랑스로 파견되었으며, 입대한 지 거의 1년 만에 미국의 첫 작전에 참가했다가 샤토 티에리에서 전사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딸에게 그는 아버지라기보다 거의 어머니였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빠는 사람도 그였고, 아기 옷을 골라 입혀주고 찢어진 곳을 꿰매는 사람도 그였다. 그는 아기를 먹이고, 목욕시키고, 울면 품에 안고 달래주었다. 가끔 이디스가 투덜거리면서 아기를 부르면 윌리엄은 아기를 그녀에게 데려다주었다. 이디스는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아무 말 없이 불편한 자세로 잠시 아이를 안고 있었다. 낯선 사람의 아이를 대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다 몸이 피곤해지면 한숨을 내쉬며 아기를 다시 윌리엄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정체를 잘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조금 울고는 눈가의 눈물을 찍어내며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래서 그레이스 스토너가 태어난 뒤 처음 1년 동안 접한 것은 오로지 아버지의 손길, 아버지의 목소리, 아버지의 사랑뿐이었다.


한편 아이에게 강박적으로 집착하던 이디스의 태도가 조금 느슨해졌기 때문에 아이도 이제 가끔 미소를 지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편안한 태도로 이야기를 건넬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가끔 이만하면 살 만하다고, 심지어 행복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했다.


예전의 그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 그러니까 그가 비교적 잘 아는 학생들조차 그를 만나면 어색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심지어 은근히 그의 기색을 살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부러 여봐란듯이 친하게 굴면서 그에게 말을 걸거나, 복도에서 그와 함께 걷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학생들도 몇 명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는 예전처럼 학생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었다. 이제 그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와 함께 있는 데에도, 함께 있지 않는 데에도 특별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는 친구와 절 모두 자신의 존재를 난처하게 여긴다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났다.


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두 사람 모두 수줍어하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서로를 알아갔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물러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에게 억지로 자신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을 보호해주던 과묵함이라는 막이 한 층씩 떨어져나가서 마침내 두 사람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지극히 수줍어하면서도 서로에게 무방비하게 마음을 열고 함께 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지는 관계가 되었다.

이디스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그녀를 부르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죽음은 이기적이야. 그는 생각했다. 죽어가는 사람은 혼자만의 순간을 원하지. 아이들처럼.

그는 다시 숨을 쉬었지만, 그의 몸 안에서 뭐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차이가 느껴졌다. 자신이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지식 같은 것을. 세상 모든 시간이 자신의 것인 양 느긋해도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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