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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시장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2월
평점 :
화폐로 바꿀 수 있는 기억이 있다면 지울 수 있을까? 내가 작곡한 불멸의 명곡이 다른 누군가도 함께 만들었다면? 생명을 갉아먹지만, 천재적인 작품을 쏟아낼 수 있다면? 어느덧 내 육체는 사라지고 관념만이 잼통안에 담겨 있다면? 독특한 상상력을 자신만의 세계에 담아낸 김성중 작가의 <국경시장>은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국경'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몽환적인 느낌으로 담아낸 그녀만의 이야기판이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욕망'이란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항상 누군가를 부러워했고, 얻지 못한 것을 경멸하며 동시에 동경했다.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날려버리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탐욕스러운 시기와 질투에 빠져 상대를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나아가 자신의 육체마저 사라지고 관념만이 덩그러니 남아버린다. 소설이란 장르에서만 가능한 유쾌하며 재기발랄한 상상력의 연속이었다.
개인적으로 단편마다 선호도의 편차가 조금 있었다. <국경시장>과 <쿠문>의 강렬한 무대와 흥미로운 문제의식에 사로잡혀 초반부가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면, <나무 힘줄 피아노>나 <필멸>을 보면서는 약간 지루한 감도 있었다. 킹코브라의 삶을 그린 <동족>은 머릿속에 하나의 다큐멘터리 속 숨은 이야기가 그려졌지만, <에바와 아그네스>는 통 집중하기 어려웠다. 물론 자전적인 <한 방울의 죄>에서 이야기꾼이란 숙명을 타고난 작가의 인생을 엿볼 수 있어서 개운하게 마무리했지만 말이다.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국경시장>읜 책의 제목이 될 자격이 충분했다. 물고기 비늘이 화폐이고, 기억을 팔 수 있는 시장이라니! 비록 마지막이 예상대로 비극적으로 끝나버렸지만, 그 환상적인 공간을 사실적으로 꾸며낸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했다.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해도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일 것 같았다.
책을 덮고 나는 <쿠문>에 기꺼이 짧은 삶을 던질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천재적 재능을 얻는 대신 짦은 인생을 고통스럽게 마감해야만 하는 운명이라. 항상 글을 쓰든 운동을 하든 나는 천재형이라기 보단 노력형에 가까웠다. 남들보다 빠르게 뭔가를 배우고 따라했지만, 어느 경지 이상에서는 정체하곤 했다. 즉 빨리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만 그 벽을 깨기가 쉽지 않았다. 그럴 때면 그 현실에 안주하거나, (이정도면 충분하지. 못하는 건 아니니깐.) 또 다시 새롭게 배움의 재미를 느끼는 것으로 갈아타곤 했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재능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이들을 보면 샘이 나곤 했다. 같은 노력을, 아니 적어도 나보다 덜 노력했는데도 더욱 훌륭한 성과물을 토해내는 게 처음엔 질투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수준이 지나면 동경의 단계에 접어들고, 그 샘을 원동력 삼아 나도 열심히 노력하는 게 맞다고 깨달았다. (블로그 아이디인 샘바리도 비슷한 맥락에서 지었다.) 가늘고 길게 살자가 모토지만, 가끔은 한번 사는 인생.. 천재처럼 화려하게 불타오르고 멋지게 퇴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단 생각도 든다. 분명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문앞에서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것 같다.
이 종이를 읽을 때쯤 나는 너를 알아보지 못할 거야. 기억을 모두 팔아 이 가게를 샀거든.
첫 줄을 읽자마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로나는 마지막 환전을 하기 전에 이글을 써두었던 것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녔지. 처음에는 6개월, 다음에는 27개월, 그 다음엔 5년이 걸렸어. 떠날 때마다 내 여행은 점점 더 길어져. 비행기를 타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어. 수많은 나라에서 이방인이 되어봤으니 진정한 고향을 발견하면 그곳에 머물러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고.
"여기가 네 고향이라고?" 이미 대답할 수 없게 된 로나에게 물었다. 그녀는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설명을 해야 할 사람은 나라는 듯이, 나는 눈물을 흘리는 대신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다음 만월에 날 만나러 와줘.
그때부터 그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작곡, 그림, 저작, 무용 등 온갖 창조적인 작업에 매달릴 것이다. 자기표현을 향한 의지야말로 쿠문의 가장 큰 특징이다. 발진이 연달아 터지고 강렬한 감정으로 으르렁대는 시기에 놀라운 작품들이 탄생하기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가족들도 적지 않다. 환자는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그를 호출한 환상에 매달릴 것이고, 그렇게 남긴 작품이 유가족에게 뜻하지 않은 부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쿠문으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는 약 3~5년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재능이 자신의 삶과 인간관계를 파괴시키는 것을 방관한다. 그러나 쿠문 사망자들은 한결같이 미소를 짓고 있어 그들이 만족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쿠문은 인류에게 축복일까, 저주일까? 만약 당신에게 쿠문에 걸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짧고 고통스러운 천재의 삶과 이전의 삶 중에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가벼운 행복, 그렇다. 꽉 찬 환희는 아니지만 기분좋을 정도의 게으름과 활력이 그에게 존재했다. 모든 사물이 제자리에, 자기 자신조차 제자리에 있었다. 완벽한 화음의 일부에 자신도 들어 있는 것이다. 평생 흰건반으로만 살아오다가 검은건반으로, 그러니까 플랫 하나 정도 올라온 감각이랄까. 모든 것이 신선한 사물들이 베풀어준 호의 덕분이었다.
죽음처럼 편안한 세 개의 장화음. 포르테, 포르티시모! 앙투안은 섬망 속에서 마지막 지휘를 하는 중이었다. 자기가 흘린 피에 서서히 가라앉는 최후는 고통스럽기보다 황홀했다. 좋은 음악은 언제나 육체를 벗어나는 감각을 선사하는데, 이번에야말로 감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음악이 끝나는 순간 앙투안의 심장도 박동을 멈추었고, <불멸>은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오후가 되어서야 풍경이 새삼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곧 떠날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행지가 가장 좋아지는 순간은 그곳을 떠나기 직전이다. 이별이 가시화된 순간에야 사랑을 확인하는 연인처럼.
희정이는 내가 만난 최초의 이야기꾼이었다. 그애는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환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없는 잠옷과 없는 어머니, 그밖에 부재하는 모든 세계를 자신의 힘으로 채워넣기 위해, 공란이 그렇게도 많은 어린 삶을 방어하기 위해 숱한 거짓말을 발명한 것이다.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왜 아저씨를 무시했을까?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사람을 차별하는 감각. 그런 건 누가 구태여 말해주지 않아도 깨달을 수 있다. 말하자면 공기중에 섞여 있는 매연 같은 것으로 나는 입과 코의 땀구멍을 통해 전부터 이 비열한 공기를 흡입하고 있었다. 이 공기는 오래전에 내 속에 들어와 아저씨를 무시하던 순간에 날숨으로 훅 새어나간 것뿐이다.
환전소를 향해 걸어가면서 남자는 지갑에서 뭔가를 꺼내 보여주었다. 어른 손톱만한 크기의 노르스름하고 반투명한 조각이었다. 자세히 살펴봐도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강 상류에서 잡히는 물고기 비늘입니다. 열다섯 살 미만의 소년에게만 잡히는 진귀한 물고기들이지요. 산 채로 튀겨내면 비늘 하나하나가 곤두서서 떼어내기 좋은 상태로 변합니다. 듣자니 비늘만 쓰고 몸통은 버린다고 하더군요." 이처럼 허무맹랑한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주코는 호기심을 보이며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래서요?" "이 물고기들은 세상의 어떤 화폐로도 환전해주지 않습니다. 오직 그 사람의 기억과 맞바꿀 수 있을 뿐이죠...자, 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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