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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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해 부르면


마음을 다해 부르면

내 마음속 생채기가 아물 수 있을까

차마 보내지 못한 조그만 핏덩이들을

검은 바다에 흘려보낼 수만 있다면야

억겁의 시간을 견디고 또 견디고

굳게 응어리진 돌덩이를 깨부수고 즈려밟아서라도

천천히 따라가고싶다


제발

가지 마라

아직

우리는 차마

못 하겠다


네가 아직 마음 속에 퐁당퐁당 조약돌을 던지고 있는데

그 잔잔한 물결이 폭풍우마냥 숨통을 쥐어짜는데

내가 어찌 너를 보낼 수 있겠느냐


차라리 크게 울어라

부디

웃으라고 손을 잡을 용기조차 없다

그렇게라도 어렴풋이 떨림을 느끼고 싶다


잊지 않겠다는 말은 입가를 맴돌지조차 않는다

내안의 온전히 완벽한 세상을 선물해준

너를

잊는다는 건


꿈에서라도 그려지지 않는다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다

자꾸 흐려지는 게 나의 잘못인 것 같구나


 

지난 한 달간 많은 걸 보고 들었다. 보지 않으면 놓칠 것 같았고, 놓치고 나면 속을 것 같았다. 되도록 모든 걸 보고, 누가 어떤 식으로 말하고 있는지 기억해두려 했다. 지금 진도에 '사실'은 차고 넘치나 '진실'은 아직 다 드러나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그사이 나는 망가진 문법더미 위에 앉아 말의 무력과 말의 무의미와 싸워야 했다. 어떤 말도 바다 속에 가 닿을 수 없고, 어떤 말도 바로 설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납득시킬 만한 말조차 찾을 수 없었다.

- 김애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中 


삶은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몇 겹의 다른 그림자를 드리우고 하염없이 검은 바위를 철썩거리는 파도처럼 메아리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고밖에 말 못해서 미안하고, 가만히 있어서 미안하고, 미안하다고밖에 말 못 해서 미안해지는, 어쩔 줄 모르겠는 밤입니다.

- 김행숙, <질문들> 中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사전적 해석을 빌리자면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의미한다. 반면 '사건'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받을 많나 뜻밖의 일을 의미하는데 거기엔 또 다음과 같은 해석이 뒤따른다. 주로 개인, 또는 단체의 의도하에 발생하는 일이며 범죄라든지 역사적인 일 등이 이에 속한다. 그렇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교통사고를 교통사건이라 부르지 않으며, 살인사건을 살인사고라 부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월호 사고와 세월호 사건은 실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나는 후자의 비중이 이루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한다. 이것은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中


마치 이 배를 닮은 한 척의 배가 침몰했다. 기울어가는 그 배에서 심지어 아이들은 이런 말을 했다. 내 구명조끼 입어...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기울어진 배에서...그랬다. 나는 그 말이 숨져간 아이들이 우리에게 건네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는 정치의 문제도 아니고 경제의 문제도 아니다. 한 배에 오른 우리 모두의 역사적 문제이자 진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 에밀레종의 실제 타종 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다. 그 소리는 매우 슬펐으나 어떤 슬픔도 극복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기나긴 여운을 간직한 것이었다. 우리가 탄 배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세월호라는 배를 망각의 고철덩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밝혀낸 진실을 통해 커다란 종으로 만들고 내가 들었던 소리보다 적어도 삼백 배는 더 큰, 기나긴 여운의 종소리를 우리의 후손에게 들려줘야 한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낸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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