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소설가 김영하는 단순히 글만 쓰지 않는다. 북 콘서트,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SBS <힐링캠프>. 잡지, 인터뷰. 번역. 글쟁이라 하기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활동 중이다. 그리고 그런 원천은 결국 호기심이란 걸 <보다>를 읽으며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소설가의 눈에 비친 인간이라는 작은 지옥' 이라는 소개처럼 김영하는 담담하게 영화, 패션, 명절, 택시, 드라마 등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저 관성처럼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하나하나에도 김영하는 '호기심'을 잃지 않는다. 왜? 무엇 때문에? 혹시? 만약에? 다양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현상의 이면에 감춰진 것들은 들춰본다. 그리고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쓰고 또 쓴다. 소설가란 직업의 특수성 탓만은 아니다. 단순히 보고 듣는 것에서 그친다면 그 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보고 들은 걸 쓰고, 말하고, 그리고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소중한 순간을 기억하려 발버둥 치는 것이다. 본 것을 기록하고, 기록한 것을 보는 순환적인 행위는 적어도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일지라도 어느 방향으로라도 사고의 범위를 넓혀 준다.


<그래비티>, <설국열차>, <신세계> 등 내가 재밌게 봤던 영화들에 대한 소회도 인상적이었다. 반드시 내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가 아니다. 같은 사물을 두고 다르게 생각하는 타인과 만나 그 생각을 공유하며, 사고를 확장하는 즐거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따스한 햇볕에 누워서 편하게 읽기 좋았다. 분량도 짧았고, 소재가 워낙 전방위적으로 넓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제일 인상적인 글은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할 용기"였다. 김영하는 <폰 쇤부르크 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인용하며 귀족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들고나온다. 번거롭고 위험한 여행을하기 보다는 당당하게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떠나지 않는 것도 좋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은 기막힐 정도로 신통하다.


"새삼 당연한 얘기지만, 여행을 하고 안 하고는 단지 선택의 문제일 뿐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해외여행을 다녀오지 못하면 촌스러운 게 아니다. 어느덧 유럽 배낭 여행이 "도전정신이 뛰어나고 열정적이며, 활발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마음껏 뽐내는 글로벌한 인재"의 필요충분조건이 되어버렸다. 마치 남들이 다 가니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해외 여행을 떠나는 추세다. 마치 자소서에 올릴 스펙처럼, 여행마저도 스토리텔링의 준비 단계로 전락한 느낌이다. 여행은 분명 선택의 문제이며, 각자 여건에 맞게 고를 사항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떠나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가 추천한 대로 여행지만 콕콕 짚어서 사진만 남기고 오란 말이 아니다. (환상적인 여행 사진은 차라리 인터넷에 더 많다.) 정말 자신이 원하는 걸 보고, 듣고, 느끼기 위해 떠나란 것이다. 누군가에겐 길거리 야시장의 음식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겐 관중이 가득 찬 축구 경기장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단순히 여행을 떠나기 직전 공항에서 느끼는 설렘과 떨림이 필요할 수도 있다. 뭐든지 상관없다. 여행은 떠나기 전, 돌아온 후에도 삶의 활력소가 되어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행 계획을 짜면서 일상의 권태로움을 날릴 수 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그때의 추억을 벗 삼아 지치고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


우스갯소리처럼 하는 말들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학생 때는 여행 갈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고, 직장인이 되면 돈은 많은데 여행 갈 시간은 없다고. 공감하고 또 공감한다. 짧게나마 대만을 다녀온 지금에 더욱 크게 생각난다. 여행은 익숙한 곳을 떠나 조금 더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힘들고 지치고 피곤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다고. 더 늙기 전에 더 많이 보고 배우고 느껴야겠다. 세상의 불평등한 시간이 더 이상 닥치고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되기 전에.



더 읽을 거리.


부자들은 이제 빈자들의 마지막 위안까지 탐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선택의 여지 없이 닥치고 받아들여야 하는 상태가 누군가에게는 선택 가능한 쿨한 옵션일 뿐인 세계. 세상의 불평등은 이렇게 진화하고 있다.


남자5, 꼬리칸 승객, 시인 : 시를 써서 뭐하냐고요? 그럼 달리 뭘 하죠? 몸은 갇혀 있는데... 언어는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가둘 수 없잖아요?


언젠가부터 여행은 신성불가침의 종교 비슷한 것이 되어서 누구도 대놓고 "저는 여행을 싫어합니다"라고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혹시 신입사원 모집 공고마다 나오는 "해외여행에 결격사유가 없을 것"이라는 문구의 영향일까?).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쩐지 나약하고 게으른 겁쟁이처럼 보인다. 폰 쇤부르크처럼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났더라면 '우리 귀족들은 원래 여행을 안 좋아해'라고 우아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그건 우리 같은 평민들이 쓸 수 있는 레토릭이 아니다.


우리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운명예정설 따위를 믿을 게 아니라면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에게 자기실현적 암시가 꼭 필요한 인생의 순간들이 있다는 것. 그 암시가 꼭 점쟁이나 관상쟁이에게서 나올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사람들이 책값을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다. 과당경쟁과 적은 이윤율로 출판계가 공멸하고 사람들은 책이 없는 상황에 익숙해지고(음반이 사실상 사라진 세상에 우리는 이미 적응하고 있다), 그리하여 책이 더이상 필수품이 아니게 된다면 말이다. 그때는 선택받은 부유한 소수만이 책을 사고 읽을 것이다. 소설은 '리미티드 에디션'같은 라벨이 붙어서 한정된 독자에게만 비싼 값으로 팔릴 것이다. 필요한 사람이 없으니 비싸다는 항의도 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런 시대를 원하는가, 답은 물론, 아니오다. 나는 지루하고 쾌적한 천국보다는 흥미로운 지옥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선택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책이라는 상품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우선은 자신이 예측 가능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탐정의 눈으로 자신의 일상을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이다. 출근길을 바꾸고 안 먹던 것을 먹고 안 하던 짓을 하며 난데없이 엉뚱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점차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 되어갈 것이다. 이런 엉뚱한 연습에서 얻어지는 부산물도 있다.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감수성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무심하게 내버려둔 존재, 가장 무지한 존재가 바로 자신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한동안 나는 망명정부의 라디오 채널 같은 존재로 살았다. 소설가가 원래 그런 직업이라고 믿었다. 국경 밖에서 가끔 전파를 송출해 나의 메시지를 전하면 그것으로 내 할 일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2012년 가을에 이르러 내 생각은 미묘하게 변했다. 제대로 메시지를 송출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사는 사회안으로 탐침을 깊숙이 찔러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보는 것, 듣는 것, 경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고정적으로 여러 매체에 동시에 기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정해진 마감일에 맞춰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보고 경험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정연하게 써내도록 스스로를 강제하게 된다. 그렇게 적은 것을 다시 보고 고치는 것이 그 마지막이다. 이 순환이야말로 한 사회와 세상을 온전히 경험하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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