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 발칙한 글쟁이의 의외로 훈훈한 여행기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기를 읽는 목적은 대부분 두 가지다. 여행을 떠나기 전 부푼 마음을 안고 정보를 얻기 위한 목적이 첫째라면, 여행을 다녀온 후 추억을 곱씹기 위해 읽는 게 둘째다. 하지만 나는 여행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치밀하게 여행 계획을 짜는 준비성 강한 성격도 아니고, 여행기를 너무 많이 읽다 보면 애초에 질려버리기 때문이다. 기대와 설렘이 정점을 찍고 나면 어느 순간 여행지를 벌써 다 둘러본 느낌이랄까? (특히 내가 찍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환상적인 사진들이 담긴 포토북을 보면 더 심하다!) 그렇다고 여행을 다녀와서는 내가 직접 다이어리에 느낌을 쓰지, 남의 감상을 훑어보며 애써 공감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여행기를 인상 깊게 읽은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빌 브라이슨은 다르다. 북유럽, 오슬로, 파리, 벨기에, 로마, 나폴리 등등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여행지가 나온다. 막연히 유명한 도시를 가보고 싶단 생각은 들지만, 현실적으로 훌쩍 떠날 수도 없기에 그냥 책으로 읽어보았다. 확실히 큰 기대 없이 보니 참 재밌더라. 책을 읽으면서 줄을 치고 여행 플래너에 꼼꼼하게 옮겨 쓸 필요도 없고, (다녀온 적이 없으므로!) 내용을 읽고 낡은 서랍 속에서 예전 사진들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저 불평불만이 가득한 투덜이 스머프같은 배 나온 미국 아저씨의 유머만 즐기면 된다. 그의 발자취를 따르다 보면 유럽은 '나라'가 아닌 '도시'가 중요한 갈림길이 되는 것 같다. 각기 다른 기질에서 나오는 묘한 차이를 건드리지만 어째 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느낌도 받는다. 왜냐하면, 가는 곳마다 싸우고, 불평하고, 따지고.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한 번도 빼먹지 않고 거치기 때문이다.

 

시계가 4시를 치자마자 여행사에 들어섰더니 항공사 예약 창구에는 다른 여직원이 앉아 있었다. 내가 정황을 설명하자 여직원은 대기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나 훑어보았다. 잠시 후 하는 말이 내 이름이 명단에 없단다. 나는 직장에서 잘리고 차도 도둑맞았는데 아내가 제일 친한 친구와 도망간 사실을 방금 알게 된 사람 같은 표정으로 여직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라고요?"

여직원이 이어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저녁 비행기 좌석이 아주 많이 남아 있으니 상관없다는 것이다. 나는 물었다.

"뭐, 뭐라고요?"

여직원은 지극히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소피아행 비행기 표는 112달러란다. 그걸로 하겠느냐고?

내가 비행기 표를 원했느냐고? 교황이 천주교냐고? 베티 포드가 병원이냐고? 두말하면 잔소리지.

"당장 하나 주시죠."

- 유고슬라비아

 

책을 읽다 보면 절반이 호텔에서 바가지요금을 가지고 싸우는 이야기, 나머지 절반은 다른 나라로 이동할 때마다 맞이하는 지옥 같은 줄서기에 대한 불만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이럴 거면 왜 여행을 하는 거지?"란 본질적인 물음이 들 수밖에 없다.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은 '여행 정보가 아닌 여행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라는 책 소개가 딱 들어맞는 솔직한 책이었다. (아, 적어도 어떤 도시를 피해야 하는지는 120% 알 수 있다.) 함메르페스트부터 이스탄불까지 부지런히 오다니면서 빌 브라이슨의 퉁명스러운 유머는 빛을 발한다. 예를 들면 리히텐슈타인의 군대 이야기라든지, 소피아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대한 유머라든지, 혹은 웨이터를 살려주며 영웅이 된 로마의 에피소드라든지.

(특히 식당 자리가 모자른 로마의 에피소드는 정말 재밌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가운데, 자신의 상상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상황을 상상한다.)


웨이터는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오히려 손님들을 더 모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아돌포는 똘마니에게 다시 한 번 뭔가 귀띔했고, 똘마니는 자리르 떠났다. 기관총을 가지러 갔거나 불도저로 입구 쪽 벽을 밀고 들어오려나 보다.

"스쿠지(실례합니다)."

이날은 이탈리아 어가 좀 됐다.

"제 테이블을 쓰시지요. 전 이제 나갑니다."

나는 남은 커피를 마저 들이켰고, 잔돈을 챙긴 다음 일어섰다. 매니저는 내가 목숨이라도 건져준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 그랬는지도 모른다.) 웨이터는 내 입술에 키스라도 퍼붓고 싶은 게 분명했지만, 키스 대신에 '그라치에(고맙습니다)'만 연발했다. 내 평생 그 같은 인기를 느껴본 적도 없었다. 웨이터들의 얼굴은 환히 빛났고 식당 안의 다른 손님까지 나를 존경하는 눈길로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아돌포까지도 고개를 살짝 까딱여 감사의 표시를 했다.

-로마 

 

그는 전형적인 미국인으로 유럽에 대한 막연한 동경보다는 날카로운 비판의 눈길이 강한 남자다. 그는 나치즘을 도운 발트하임을 떡하니 대통령으로 선출한 오스트리아를 조롱한다. 공산주의가 저물어 가는 소피아도 냉정하게 바라본다. (물론 그러면서 그들의 변화 이전의 공간을 다녀왔다는 데 만족감을 느낀다. 전형적인 츤데레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까기'의 대표 주자 빌 브라이슨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외치는 미국 찬양론자도 아니다. 맥도날드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비판이나, 획일화되는 미국에 대한 냉소를 보면 그의 화살이 아군, 적군이 따로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심지어 여행을 가지도 않은 일본을 까는 부분도 있다.) 

 

맥도날드 임직원들은 유럽이 디즈니랜드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적당한 골목에 점포를 내도록 하고,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고 기능에 걸맞으면서도 좀 덜 튀도록 점포를 꾸며야 한다. 외관은 유럽의 보통 비스트로처럼 보여야 한다. 가령 붉은색 커튼이나 장식용 수족관 정도만 써야지, 창문에 새겨진 맥도날드의 노란 엠(m)자와 거대한 엉덩짝을 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락거리는 모습을 빼고는 밖에서 봐서 맥도날드라는 표시가 나서는 안 된다. 말이 난 김에 한마디 더 하자면, 맥도날드는 뚱보만 양산하고 건강에 나쁜 지금의 메뉴는 더 이상 팔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발 로너드 좀 치워달라고 누가 말 좀 해줬으면 좋겠다. 맥도날드는 이런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을 때에만 유럽에서 영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전까지는 절대 안 된다.

- 오스트리아 

 

반복된 불평불만이 사실 조금 지루해질 때도 있다. 그래서 글이 재밌고, 읽기 쉬운 데 비해 의외로 책을 끝까지 읽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내가 가본 도시라면 더 공감하고, 재밌게 함께 욕하면서 봤을 텐데. 하나도 가보지 못한 도시들이라 사실 머릿속에 그려지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쓰고, 저널리즘 글쓰기에 익숙한 (물론 <발칙한 유럽산책>은 소설보다 더 가볍고 유쾌하다. 그렇다고 밝은 것은 절대 아니다.) 그의 깊이를 따라가기엔 배경 지식이 미천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여행 막바지에 갑자기 훈훈하고 따뜻한 결말을 읽는 순간 책을 읽는 내 여정도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여행이란 어차피 집으로 향하는 길이니까."

 

아니. 이게 무슨 뒤통수 때리는 결말인가! 쉼 없이 전방위로 폭격을 퍼붓던 불평쟁이가 갑자기 회한에 잠기며 집에서 자신을 반길 가족들을 떠올리다니. 묘한 배신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런 따뜻한 마무리도 그리 나쁘진 않다. 여행하다 보면 결국 매번 느끼는 감정은 '역시 집이 최고야'란 것 아닌가? 이국적인 풍경에 사로잡혀 신선함에 즐거워하다가도 결국에는 자신이 익숙한 공간이 그리워지는 건 모든 사람의 공통 분모일 것이다. '여행'이란 것도 결국엔 역설적으로 돌아오는 게 정해져 있기에 더욱 즐겁고 낭만적이며, 흥미진진한 게 아닌가? 그게 아니라 체류가 된다면 어느덧 그것이 일상이 되고, 무거운 짐이 되는 법이지. 그나저나 빌 브라이슨이 한국에 온다면 어떤 글을 쓸지 갑자기 궁금하다. 믿을 수 없이 빠른 인터넷, 깨끗하고 치안 걱정이 없는 밤거리, 아름다운 곡선이 살아 숨 쉬는 한옥일까? 아니면 집에 우환이라도 있는 듯 굳은 얼굴도 어디론가 빠르게 걸어가는 사람들, 외국인을 보면 일단 경계하고 보는 배타적인 마음, 그저 미친듯 맵고 짠 음식일까? 때론 이방인이 보는 우리의 밑낯이 궁금하기도 하다. 물론, 보나 마나 빌 브라이슨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는 없지만 말이다. 

나는 분명 여행의 끝에 와있었다. 저 반대편이 아시아가 아닌가. 유럽에서 가장 멀리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였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오랫동안 고생만 하고 있는 내 아내는 한 해 걸러 아기를 가졌는데 지금도 임신중이었다. 아내는 전화 통화에서 아이들 중 어린 두 녀석은 성인 남자만 보면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잔디는 허리까지 자랐고, 목장 울타리는 일부가 쓰러져가고 있었으며, 양들은 물가의 풀밭에, 소들은 옥수수 밭에 아무렇게나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그리고 나도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족이 보고 싶었고, 내 집의 친숙함이 그리웠다. 매일 먹고 자는 일을 걱정하는 것도 지겨웠고, 기차와 버스도, 낯선 사람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도, 끊임없이 당황하고 길을 잃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라는 사람과의 재미없는 동행이 지겨웠다. 요즘 버스나 기차에 갇혀서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대는 내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나 자신을 내팽개치고 도망가고픈 충동을 얼마나 많이 느꼈던가?

동시에, 나는 계속 여행을 하고 싶다는 비이성적인 충동을 강하게 느끼기도 했다. 여행에는 계속 나아가고 싶게 만드는, 멈추고 싶지 않게 하는 타성이 있다. 해협 바로 저편에 아시아가 있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저기가 아시아 대륙이라고 생각하자 경이로웠다. 몇 분이면 아시아 땅을 밟을 수 있다. 돈도 아직 남았다. 그리고 내가 가보지 못한 대륙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가지 않았다. 대신에 콜라를 한 잔 더 주문하고, 오가는 페리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아시아에 갔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여행이란 어차피 집으로 향하는 길이니까.

슬리브니차 강 위로 난 인도교를 건너, 그리고 이름 모를 주택가 거리를 따라 다시 시내로 돌아오면서 소피아는 실로 아름다운 도시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보다도, 소피아는 내가 가봤던 도시 가운데 가장 유럽다운 도시였다. 현대식 쇼핑센터도, 대형 주유소도, 맥도날드나 피자헛도 없고, 코카콜라 회전 광고판도 없다.

내가 가본 어떤 도시도 미국 문화의 달콤한 유혹에 이토록 철저하게 저항한 곳은 없었다. 소피아는 어느 모로 보나 완전히 유럽다운 도시였다. 내가 어린 시절 꿈꾸었던 유럽은 바로 이런 곳이었다는 걸 깨달으며 마음 깊이 뭔가 불편해졌다.



불가리아에서 공산주의는 지속되지 않을 것이며, 지속될 수도 없다. 국민을 배곯게 하며 아이들에게 장난감조차 주지 못하는 정부를 계속 유지할 국민은 없다. 5년 후에 다시 소피아에 가본다면 피자헛과 로라 애슐리가 즐비하고 거리에는 BMW가 넘쳐나며,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행복하리라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그들을 추호도 비난할 수 없겠지만 그렇게 변하기 전에 그곳에 다녀왔다는 게 너무도 다행스럽다.
- 소피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개를 극도로 흥분시키는 뭔가가 있는가 보다. 개가 내 복숭아뼈를 물어뜯으려고 할 때마다 개의 주인들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가만히 서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5센트씩 받았더라면 일찌감치 부자가 됐을 것이다.)

"대체 이해를 못하겠네요. 얘가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분명히 댁이 얘한테 뭐라고 하셨겠죠."

어처구니가 없다. 내가 개한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봐, 견공. 내 다리 정맥 좀 끊어주련?"
- 벨기에

"애들은 자기 침대에서 자야 잘 자잖아요."

나는 큰 감명을 받았다. 미국에서 경찰에게 잡혔을 때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지 주차 위반 과태료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들은 내게 벽을 향해 팔다리를 벌리고 서도록 한 다음 몸을 수색하더니 나를 경찰서로 연행해 갔다. 당시 내 나이가 열일곱 살 정도였다. 시립 공원 벤치에서 마약에 취해 누워 있었다면 경찰이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했을지 자뭇 궁금하다. 지금 이 나이쯤 돼서야 출감하지 않았을까?

-코펜하겐

"개수대 옆에는 등나무 바구니에 무료 샤워 젤과 면도용 크림도 담겨 있나요?"

"물론입니다. 손님."

"휴대용 반짇고리도요? 바지 다리미는?"

"있습니다. 손님."

"헤어드라이어는?"

"비치되어 있습니다. 손님."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매직 와이프에서 나온 일회용 구두 스펀지는 없겠지?"

"물론 있습니다. 손님."

젠장, 이 중 하나는 없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러면 너털웃음 한번 웃어주고 한심하다는 듯 머리를 흔들면서 나오려고 했건만! 그런데 전부 다 있다니 줄행랑을 놓을 게 아니면 투숙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결국 나는 투숙하기로 했다.

- 예태보리

나는 ‘바티칸시티‘하면 늘 고대 도시국가로 생각했는데, 바티칸이 정식으로 인정된 것은 무솔리니와 교황 사이에 라테란 조약이 체결된 1929년부터라고 한다. 나는 바티칸에 도달하면 왠지 국경수비대 같은 게 있어 엄청난 요금을 내야 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국경에서 날 귀찮게 했던 이들이라고는 슬라이드 따위나 폴라로이드로 여행객의 사진을 찍어 시끄러운 소리로 호객하는 장사꾼들뿐이었다. 나는 5미터가랴 떨어진 곳에 덴버 브롱코스(미국 프로 풋볼팀) 트레이닝복 상의를 입고 서 있는 여자를 가리키며 그녀가 내 아내인데 돈을 아내가 모두 갖고 있다고 하면서 이들을 그리로 보냈다. 이들은 그 여자를 향해 몰려갔고, 덕분에 나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대광장을 유유히 누빌 수 있었다.

-로마

오스트리아는 발트하임을 자랑스러워해야 하며, 세계인의 의견에 과감히 맞서 발트하임과 같은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자국의 용기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발트하임이 병적인 거짓말쟁이라는 사실과 전범으로 공식 기소된 인물이며, 예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 그 자신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몹시 구린 그의 과거를 눈감아주면서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배짱은 가히 전투적이다. 발트하임과 같은 인물을 지지하는 국민이라면 특별한 사람들임에 틀림없으니 오스트리아는 과연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가.

- 오스트리아

이런 삶을 상상해 보라.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배우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보, 있잖아. 오늘 쇼핑은 진짜 성공했다. 빵 한 덩이에 리본 15cm를 건진 데다가 쇳조각 하나를 샀는데 써먹을 데가 많을 거 같아. 게다가 도넛도 하나 샀는걸."

"정말이야? 도넛까지?"

"음, 도넛은 사실 농담이었는데.."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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