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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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소설의 전형적인 구조나 캐릭터를 빌려왔지만, 김중혁식 씨니컬하고 유쾌한 유머는 그대로였다. 의뢰인의 비밀을 지워주는 직업 '딜리터'로 활동하는 구동치는 냉철하면서 차가운 탐정이다. 하드디스크, 편지, 일기장, 소설 등 다양한 사람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딜리팅을 의뢰한다. 자신이 아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비밀을 알지 못하게 자신이 모르는 구동치를 찾아오는 것이다. 구도칭가 사는 악어빌딩 역시 신비로운 공간이다. 그는 '깊게 땅을 판 다음 음식물 쓰레기와 동물의 시체와 곰팡이와 사람의 땀과 녹슨 기계를 한데 묻고 50년 동안 숙성시키면 날 법한 냄새가 나는 비밀이 가득한 악어빌딩 4층'에 산다. 그의 주변에는 '시칠리아'에는 가본 적 없는 요리사 박찬일, 무도인의 정신을 항상 강조하는 차철호, PC방에서 자잘한 딜리팅을 도와주는 이빈일이 있다. 타인의 비밀, 그리고 그에 얽힌 불안을 매개로 돈을 버는 구동치는 의뢰를 받으면서 점점 실체를 알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린다. 그리고 <역지사지 살인사건>을 끄적이는 터프한 김인천 형사, 돈이 제1 고려 요소인 이리 탐정의 도움을 받으며 원수도장, 대기업의 범죄에 다가선다.

 

악취가 나는 악어빌딩도 좋았고, 다닥다닥 붙은 집들도, 길과 길이 도대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종잡을 수 없는 골목도 좋았다. 복잡한 빌딩과 골목 속에 들어가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인파 속으로 숨은 범인을 찾기 힘든 것처럼 악어동네 속으로 숨은 범인도 찾기 힘들 것이다. 실제로 악어동네 어딘가에는 살인 사건을 저지르고 꼭꼭 숨어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누군가를 죽이고, 죽였다는 사실을 숨긴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악어빌딩 뒤쪽 악어동네에는 몇 명이 사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살았고, 악어 가죽의 무늬처럼 모든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후반부에 본격적으로 탐정물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부분보다 복작복작 악어빌딩에서 벌어지는 초반부 해프닝이 더욱 재밌었다. <뭐라도 되겠지>에서 받은 단편의 발랄함과 재치가 그대로 녹아있었기 때문일까? 김중혁 소설에 단골 손님인 유머러스한 캐릭터들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티격태격 CCTV 장면을 놓고 차철호와 박찬일이 벌이는 말다툼이나, 짝사랑하는 오윤정과 PC방 알바 이빈일에게 전혀 다르게 대하는 박찬일의 요리같은 소소한 이야기들. 점점 스케일이 커지며 범죄의 실체에 다가가는 절정보다 오히려 이런 전개 부분의 악어빌딩 스토리가 더욱 정이 가더라.

 

"그렇죠. 무도인은 아니지만 탄탄한 살기 같은 게 좀 보여요."

"무도인은 딱 보면 아냐?"

"아, 알죠.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입니다."

"웃기고 지랄한다. 네가 고수라고?"

"언제 한번 도장에 올라와 보십시오. 제가 확실히 보여드릴테니까. 아니면 아드님을 보내시든지요."

"우리 귀한 아들을 거기 왜 보내."

 

역시 지극히 개인적으로 테니스를 치는 구동치도 매력적이었다. (나달에 대한 천일수 회장의 평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 페더러의 우아함이야 당연히 공감하지만, 나달은 무슨 우직하게 뛰어다니는 듯이 평하다니!) 노블 클럽이 하는 스포츠가 골프가 아니라 테니스란 점도 무척 마음에 든다. 역동적인 움직임과 오고가는 공 속에서 묘한 권력 관계를 드러내기 최고의 스포츠가 아닌가? 접대 테니스의 고충도 조금은 알겠고. 한편 차갑고 냉정한 구동치가 딜리팅 과정에서 실수로 얼굴을 마주친 정소윤과 병원에서 투닥거리는 장면은 묘하게 인간적이고 연애소설 느낌도 났다. 아마 김인천 형사의 죽음만큼이나 정소윤의 만남도 그가 딜리팅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바꾸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구동치는 자신만의 세계에 비밀을 몰래 옮겨 놓는 하프 딜리팅도 포기하게 된다.) 

 

'포티,러브'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40 대 0은 낭떠러지에 서 있는 점수이고, 궁지에 몰린 점수다. 0이라는 숫자에다 왜 '러브'라는 감미로운 의미와 발음을 결합시킨 것일까. 구동치는 '러브'라는 발음이 달걀을 뜻하는 프랑스러 'l'oeuf'에서 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다른 상상을 하곤 했다. '러브'는 한 점도 내지 못한 패자에게 들려주는 위로의 말이 아닐까. 포티 러브로 이기고 있을 때도 있었고 포티 러브로 지고 있을 때도 있었지만 구동치는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한편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나온 것처럼 희한하게 남녀캐릭터의 강렬함이 너무 다르다. 구동치, 천일수, 박찬일, 차철호. (김중혁은 'ㅊ' 성애자인가?) 정소윤, 백승자, 한유미. (이것도 심지어 책을 다시 찾아보고 떠올랐다.) 단숨에 그 모습이 그려지고 에피소드가 떠오르는 남자 캐릭터와 달리 여자 캐릭터는 누가 누군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름 구동치란 매력적인 캐릭터에 올인했다고 치지만, 신기하게도 여자 캐릭터들이 모두 잠수를 타버리다니. 뭐 그렇다고 소설의 재미가 반감되는 건 아니지만, 그저 특이해서.

 

구동치는 일기 쓰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일기를 쓰는 사람은 반성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며, 반성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은 반성을 빌미 삼아 더욱더 나쁜 짓을 하게 된다고, 구동치는 생각했다. 일기는 쓰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일기장에는 어떤 식으로든 진실이 들어 있고, 작은 것이라도 정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딜리팅이란 참 매력적인 소재다. 최근 잊혀질 권리(The right to be forgotten)란 용어가 새롭게 등장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심지어 국내와는 달리 법규가 자유로운 해외에서는 사망 신고가 접수되면 친구들에게 마지막 이메일을 보내고 각종 사이트에 올린 사진을 삭제하는 온라인 상조회까지 등장했다.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사람은 죽어서도 좋은 기억만 남기고 싶어한다. 늘 기억해 달라는 말을 남기지만 그 안에는 '좋은' 기억만 남겨달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평판에 끝까지 신경쓸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특성이다. 하지만 소설 속 딜리팅이 불완전하듯이(타인의 방해로 혹은 딜리터의 욕망때문에), 죽음 이후 삶의 자취를 조정하기란 상당히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그만큼 하루하루에 충실하고 주변에 잘하는 게 중요한 법이지. (더불어, 술먹고 SNS는 금물.)

 

지우는 건 말입니다, 생각보다 대단한 일이 아니에요. 나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문장을 지웁니다.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또 지웁니다. 그걸 지워야 새로운 걸 쓸 수 있어요. 새로운 걸 쓰려면 계속 지워야 해요. 그렇게 지우고 지우다 마지막에 남는 것들, 그런 것들이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 

 

최근 소설 원작의 영화가 쏟아지는만큼 책을 읽으며 영화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더라.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은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워낙 캐릭터들의 특성도 강하고, 대사 또한 그대로 대본으로 써도 될 정도로 생생하다. 영화는 물론 (명색이 탐정 소설인만큼) 시리즈 물로도 굉장히 훌륭한 떡밥들을 감추고 있다. 프리퀄이나 스핀오버로 구미가 당기는 소재가 참 많다. 구동치의 형사 시절 이야기, 새로운 딜리팅 에피소드, 구동치와 김인천 형사의 형사 버디물, 구동치와 XXX의 연애물(이건 좀 기대가 안 되네.) 등등. 실제 마지막 에필로그는 따로 단편으로 나왔다고 들었던가?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읽어본 작가의 말 중 이번 작품이 최고였다. 가장 뇌리에 남는 강렬한 세 마디. 이 문장만으로 두꺼운 책 한권을 요약하고, 마지막 한방을 날린다.

 

썼는데
누군가
지웠다.

 

마치 책을 읽었는데, 여자 캐릭터들의 대한 기억을 누군가 지운것 처럼..

아마 페더러는 부드러움으로 힘을 제압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 사람일 겁니다. 다른 선수들은 백핸드를 두 손으로 치지만 페더러는 한 손으로 가뿐히 공격합니다. 부드럽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진정한 힘은 근육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유연함에서 나오는 것이죠. 유연하면 모든 걸 다 꺾을 수 있어요.



구동치가 테니스를 배우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나를 고쳐서 상대방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상대방을 때리거나 물어뜯거나 비난하지 않고 자신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물론 시합에 나가면 상대방의 약점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밸런스였다. 구동치는 자신의 밸런스를 지키지 못하는 바람에 부상을 당했고, 너무 사랑하는 바람에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졌다. 무엇인가를 사랑하게 될 때마다 구동치는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보다는 아예 사랑하지 않는 게 낫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구동치는 왜 돌아보지 않았는지, 왜 대답을 하지 않았는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간단한 일이었다. 돌아보면서 한마디 할 수 있었다. ‘네, 선배도 조심해요.‘ 그렇게 말하면 되는 일이었다. 구동치는 다정한 말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 마지막 통화를 할 때도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고 말았다. 다정한 마지막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 조심하라고, 늘 고마워하고 있다고, 선배를 존경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마지막 말이란 대부분 마지막일 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마지막 말은 할 수 없는 말이다. 불가능한 말이다. 늘 비어 있는 말이다. 텅 비어 있는 마지막 한마디가 구동치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김인천을 보낸 것 같았다. 구동치는 소설을 더 읽을 수 없었다. 거기엔 김인천이 있었다. 김인천이 거기 있어서 차마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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