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을 보는 순간 노래 '챠우챠우'가 생각났다. 이종석, 이보영 주연의 SBS 드라마도 언뜻 떠올랐지만, 금세 김영하 소설의 어둠을 생각하면 원작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몽환적인 멜로디에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반복되는 델리스파이스의 주문 같은 노래. 딱 그런 느낌의 장편 소설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막연히 술을 마시고 거나하게 취하면 "챠우챠우"가 귓가에 울려퍼지는 기분일 거라고 상상했다. 뭐 실제는 전혀 아니었지만.) 불안한 불빛 속에서 신비롭게 서 있는 사내아이가 그려진 표지 때문일지는 몰라도. 몽환적인 느낌은 마술사 이야기로 시작되는 처음부터 제법 긴 에필로그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녀가 피 묻은 여린 손으로 아이의 숨을 끊어놓기 직전에, 그 격렬한 생존의 의지를 미처 잠재우기 직전에,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한 남자가 문을 발로 걷어찼다. 부실한 경첩이 뽑혀 허공으로 날아갔다. 귓속을 송곳으로 후벼파듯 맹렬히 울고 있는 갓난아이만 아니었다면 어느 잔혹한 살인자가 소녀를 유린하고 달아난 현장처럼 보였을 것이다. 바닥은 소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불그죽죽한 체액과 약수로 흥건했다. 피냄새에 흥분한 사람들이 원숭이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갑자기 나타난 수많은 팔과 다리는 마치 힌두의 신이 강림한 것처럼 보였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태어난 제이는 고아다. 야생의 세계에서 서서히 길들다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고, 혹은 자각하며 다시 태어난다. 온갖 폭력과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스스로 버티고 생존하는 법을 깨달은 것이다. 폭주족을 이끄는 리더로서 무모함과 신비로움, 경이로움까지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신화가 되려 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단짝 동규가 언제나 있었다. 한때 함구증을 겪으며 제이와 유대감을 나누었던 그도 엇나가기 시작하며 거리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다. 제이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기 도하는 동규는 멈추지 않는 폭주기관차같 은 인생에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제이를 걱정한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친구 혹은 그 이상의 존재가 사라질까봐. 둘 주위에 수많은 비행청소년, 흔히 말하는 사회의 악들이 얽히고설킨다. 그리고 그 복잡한 실타래는 전설로 기억되는 '광복절 대폭주'와 함께 툭 끊어진다.

제이는 환영을 보았다. 자기가 휘두른 맥주병에 맞아 쓰러지던 야구모자와 피를 뿌리며 쓰러지던 나이키의 모습을 보았다. 동시에 머리가 빠개질 것 같은 두통이 엄습했고 오른쪽 어깨는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화끈거렸다. 야구모자와 나이키에게 가한 고통이 자신에게 되돌아왔을을 깨닫고 제이는 눈물을 흘렸다. 이것은 부당하다. 너희들은 죄를 지었고 나는 그것을 응징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너희의 고통을 내가 겪어야 하는가. 눈을 감아도 환영들은 계속 찾아왔다. 의자에 묶인 한나와 담배빵을 당하던 지연의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제이의 몸은 어디에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꼼짝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 부들부들 떨었다.

이야기꾼 김영하가 5년 만에 들고 온 장편 소설은 역시 어두웠다. 하지만 맛깔나는 표현과 실감 나는 묘사 때문에 거부감이 드는 동시에 다음 장에 대한 호기심이 스멀스멀 커졌다. 집단 난교나 폭행, 탈주같은 음지의 청소년 범죄는 무척 적나라했다. "씨발"로 시작해 "개새끼"로 끝나는 이야기는 거북하기까지 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시사매거진 2580에 나올 법한 경악스러운 범죄들을 활자로 더욱 생생하게 엿보는 느낌이랄까? <검은 꽃>에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인간의 밑바닥, 끝자락을 낱낱이 까뒤집어 눈 앞에 들이대는 김영하의 단도직입적인 화법은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웠다.

손을 뻗으려 했지만 육신은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육신이라는 것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전진이 막힌 포대열은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소금을 뒤집어쓴 지렁이가 꿈틀대는 것처럼 보였다. 승기를 잡은 경찰들이 다리에서 밀고 내려왔다. 시선을 돌리자 저 멀리 자신이 태어난 고속버스터미널의 모습이 보였다. 새벽에 떠날 고속버스들이 공회전하는 소리가 마치 옆에서 듣는 것처럼 가깝게 들렸다. 제이는 어쩌면 자신의 영혼이 고속버스터미널에 깃들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책장을 넘기며 재밌었던 이유는 그의 글빨때문이었다. 종묘에서 테헤란로로 이어지는 고아들의 광복절 대폭주 장면은 무서울 정도로 생생하다. 실제 서울 거리의 새벽 2시가 머릿속에 펼쳐지며, 슬픔을 마음껏 분출하는 길거리의 무법자들이 그려졌다. 경찰을 따돌리고, 도망가며 활개치는 모습을 표현하는 글은 신기할 정도로 시원시원했다. 개인적으로 고속터미널 출산 장면과 더불어 광복절 대폭주 부분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우주나 신계를 묘사해야 상상력이 발동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접하는 주위의 광경에서 더욱 생생하게 꿈꿀 수 있게 해준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굉장한 일이 아닌가? 거창한 선과 악, 청소년 계도를 위한 비상 대책 마련 따위의 당위성까지는 모르겠다만..... 소설을 읽는 동안은 다음 장을 얼른 읽고 싶었다. 그리고 지저분하고 어둡지만 분명 우리 인간 세상에 감춰져 존재하는 부분을 직시한다는 묘한 쾌감 정도라도 독서의 재미는 충분했다.



그나저나 동규와 제이를 보면 묘하게 <데미안>이 떠오르는 건 과도한 해석일까?

받아만 준다면 나는 그들 사이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슬픔에는 마음이 뜨거워지는, 그러니까 서러움에 가까운 감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마음이 차가워지는, 비애에 가까운 심사도 있다. 그날의 나는 후자였다. 마음에 서리가 낀다고 해야 할까.

심장이 차갑게 식으면서 눈가가 시렸다. 나는 MP3 플레이어의 볼륨을 높였고 그들은 그다음 역에서 일제히 내렸다. 수화를 하는 아이들의 손에서 새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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