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되겠지 -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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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은 가로등, 자동차 문자게시판, 셔플 프레이어, 친환경 프린터, 이기적인 보일러, 다기능 헬멧, 완전자동 결혼식, 농활 골프. '이동진의 빨간 책방'의 든든한 흑임자 김중혁의 책은 호기심과 편애로 가득하다. 특히 <뭐라도 되겠지>을 읽는 내내 마치 김중혁의 일기장, 혹은 낙서장을 들춰보는 느낌이었다. 그의 고백대로 '미당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지는 않지만, 충분히 매력적이고 공감이 많이 가는 세계관을 가진 작가다. 게다가 직접 그린 그림들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떠돌아다니던 상상을 시각화하기에도 훌륭했다. 산문집의 특성상 짧은 글들이 많이 묶여있었는데, 묘하게 일관성을 느꼈다. 인간 김중혁은 과묵하기보단 산만하고, 무언가에 집착하기보단 흘려보냈다. 그가 '그나마' 열광하는 부분은 쓸데없는 것과 농담뿐이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무소유의 정신과 맞닿은 <뭐라도 되겠지>. 표지부터 장난기가 가득 담긴 퍼즐이 보인다. 디자인은 했지만 디자이너는 아닌 팔방미인 김중혁의 산문집은 일단 재밌다.

 

내가 생각하기에 '재능'이란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 다음에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 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

(뭐라도 되겠지. 이 문장을 제목으로 하자는 의견을 듣고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이게 좋은 뜻일까? 긍정이긴 하지만, 때로는 체념처럼 들리지 않을까? 하긴 체념이어도 상관없다. 작은 체념이 들어 있는 긍정이야말로 튼튼한 긍정이 아닐까.)

 

그냥 보기엔 무척 냉소적이고, 패배의식에 젖은 한탄 같을 수 있다. 힐링이 필요한 20대, 열정을 가지고 뭔가를 두드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청춘엔 부적절한 문장이다. 하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김중혁 작가 특유의 게으름과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에 익숙해지면 참된 의미를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인생을 살면서 힘을 빼야 한다는 걸 수백 번도 넘게 느꼈다. 테니스를 칠 때도 초보자는 무조건 공을 세게 치려고 힘을 잔뜩 준다. 하지만 고수는 오히려 힘을 빼고 부드러운 스윙을 몸에 익히기 위해 매번 고민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늘 죽을 힘을 다해 매번 100m를 전력 질주하는 이는 퍼지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지옥 같은 경쟁 사회, 1등 만능주의에 길든 우리나라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 넘어져도 괜찮다. '뭐라도 되겠지'하고 웃어넘긴다고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가 날카롭게(?), 아니 얼렁뚱땅 넌지시 건네는 인생의 의미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결국 삶이란 선택하고 실패하고, 또 다른 걸 선택하고 다시 실패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를 빨리 인정하고 원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유연성이다. 실패가 별게 아니란 걸 깨닫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으려면 실패에 익숙해야 한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다 더 큰 실패를 맛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막걸리 야구' 편이 무척 흥미로웠다.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본듯한 장면이 계속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죽어라 홈베이스를 향해 슬라이딩하지도 않고, 부상을 참아내며 완봉승을 하려는 사람도 없다. 그저 그 순간을 즐기고 게임 속에서 여유를 찾는 과정이다. 안타를 치고 나간 친구를 오히려 위로하는 이상한 야구 경기가 펼쳐진다.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했는데, 화가 나는데, 복수를 하려고 하는데, 번호표를 뽑아야 하는 거다. 대기인 수는 일곱 명이다. 기다려야 한다. 그게 야구다.'라는 표현에 걸맞은 이상적인 야구의 전형이다. 

 

아무리 명절이라고 해도 열여덟 명의 스케줄을 맞추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 죽고, 누군가 다치고 누군가 아프고, 누군가 일이 터지고. 누군가 도망가는 삶이 계속되고 있다. 다시 그런 야구시합을 할 수 있을까. 추석만 되면 운동장에서 깔깔거리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유치원 때부터 함께 자라온 수원 친구들을 만날 때면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다. 초딩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영통구청에서 풋살을 한다. 중딩처럼 이기든 지든 싱글벙글 웃으며 치킨을 먹으러 간다. 고딩처럼 배가 꺼질 때까지 PC방에서 유치한 게임에 소리를 지른다. 나이는 점점 먹어가는데, 무섭도록 반복되는 패턴이다. 하지만 마음은 편하다. 학점, 취업, 연애. 온갖 무거운 주제는 미뤄두고 그냥 웃고 떠들고 싱거운 농담 따먹기를 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다. 이렇게 버티고 견디다 보면 어쩌면, 아주 운 좋으면 재능이 생기고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또 무의미한 상상을 시작한다. 힘들수록 계속 되내여야만 한다.

 

'지금은 이래도 뭐라도 되겠지. 버티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바뀐다고 나까지 급해질 필요는 없다. 급한 건 세상만으로 충분하다. 새해에 세운 나의 게획을 점검해본다. 너무 도전적인 것은 아닐까. 너무 빨리 걸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목표가 너무 거창한 것은 아닐까. 하루는 24시간이고, 한 달은 30일이고, 1년은 12달이다. 시간은 충분하다. 우리의 목표가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성실하게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조금만 더 행복해지면 된다. 주름을 만들듯 천천히 내 속도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눈물이란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된 대가로 내가 세상에 지불하는 동전인 셈이다. 억울해서, 나를 몰라줘서, 속상해서 흘리는, 온전히 나를 위해 흘리는 눈물은 싫지만, 다른 사람을 위한 눈물이라면 그게 얼마든 삶의 통과비로 지불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다른 무엇을 포기하고 있었다. 시간을 포기하고, 돈을 포기하고, 또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한 다음,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인생은 어떤 것을 포기하는가의 문제다. 선택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포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기로 선택하고, 결국 돈을 많이 벌게 된 사람이 어떤 걸 포기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얼마나 기분 좋게 포기할 수 있는가에 따라 인생이 즐거울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평생 몇 잔의 맥주를 마시게 될까, 평생 몇 명의 친구를 만나게 될까, 평생 얼마의 돈을 벌고, 또 쓸까. 숫자로 생각하면 가끔은 모든게 허망하다.

나와 네가 손을 잡으면 우리가 된다. 나와 네가 손을 잡는 이유는 한 줄로 서서 더 먼 곳까지 뻗어나가기 위해서다. 원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와 네가 손을 잡아 동그란 원을 만들어버리면 다른 사람은 절대 들어올 수 없는 울이 되고 만다. 그곳에 갇히는 순간 우리는 무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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