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드론 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6
라이프니츠 지음, 배선복 옮김 / 책세상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Monadology> - G.W. Leibniz

 

◎ 원문 인용구는 기울임 처리를 했습니다.

 

모나드

"모나드는 복합적인 것 안에 있는 단순실체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1)"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 스피노자가 생각한 세계관을 거부하면서 일부 수용했다. 데카르트는 사유와 연장성 두 가지 독립된 실체를 상정하였고, 스피노자는 세계를 사유와 연장성이 표출되는 여러 가지 양태로 바라보았다. 스피노자는 신은 곧 만물이라는 범신론을 주장했지만 라이프니츠는 사물들이 단순실체로 구성되어있다고 주장하며 그 단순실체를 모나드란 개념을 통해 제시한다. 모나드는 공간적 점유를 하지 않으며 이는 물질성, 연장성을 제거한 것이다. 모나드는 공간에 없지만, 공간은 모나드 안에 있다. 즉 모나드는 부분이 없는 공간의 논리적 기초이자, 물리적 가상 세계에서는 존재론적 실재의 기초이다. 한편 신체는 연장성을 지닌 복합체이며 모나드로 구성되고, 영혼도 신체보다 더 투명한 모나드로 구성된다. 심신 이원론을 주장한 데카르트와 달리 라이프니츠는 영혼은 몸에서 분리될 수 없으며, 죽음은 몸 안에 있는 영혼이 활동하지 않는 기간이라고 본다.

 

“모나드는 자연의 참된 원자다. 한마디로 만물의 원소다.(3)”합리주의자이지만 데카르트, 스피노자보다 경험주의에 가까운 라이프니츠는 모나드의 내적인 프로그램이 외적으로 표현될 때 복합체로 나타난다고 본다. 단자는 자연의 참된 의미이자 사물을 구성하는 원천적 재료다. 그리고 “모나드는 오직 창조를 통해서만 생겨날 수 있고 파멸을 통해서만 사라질 수 있다.(6)”신이 개입하지 않는 한 자연적 방식으로 폐기 불가능한 것으로 같은 의미로 자연적 방식으로 생겨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부분이 없기 때문에 해체되거나 생성될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모나드는 무지개나 디지털와 유사하다. 무색의 물방울 입자지만 색을 갖는 무지개, 단순한 코드이지만 다양한 표상이 가능한 디지털처럼 모나드는 표상에 의해서 물리적 대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모나드는 신이 만든 것이고 신에게 의존적이다. 신적인 모나드, 피조된 모나드로 나누어질 수 있는데 양적인 측면이 없으므로 모나드의 세계는 시공간적 세계, 현상 세계 밖에 존재한다. 그리고“모나드는 만물이 들락날락거릴 창이 없다.(7)”는 라이프니츠 모나드론을 한 마디로 축약하는 문장이다. 모나드는 스스로 행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데모크리토스의 물질적인 원자와는 다르지만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다. 각각 서로 독립적이며 구별될 뿐만 아니라“모든 모나드는 다른 모나드와 모두 달라야 한다. 왜냐하면 자연에는 서로 완전히 같은 두 가지 본질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9)”여러 모나드는 지각 판명성 여부에 따라 모호한 모나드, 명석 판명한 모나드로 구분된다. 지각의 변화로 단순실체의 작용은 나타나는데 지각은 물리적, 기계적 변화가 아니다. 작용, 반작용하는 것만 기계에서 찾을 수 있지만 지각은 기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각은 단순한 존재의 내적인 사고이며 지각의 존재는 외부 관계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각 대상, 지각 주체 모두 모나드 안에서 발생한다.

 

한편 엔텔레케이아(Entelcheia)라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개념인데 이는 앞으로 실현할 역량 전체를 포함한 완전성의 의미다. 자족적으로 변화의 힘을 지니기 때문에 엔텔리케이아라는 이름을 붙인다. 모나드는 소멸할 수 없는데 이는 모나드는 어떤 상태에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생물학적 죽음만 인정할 뿐 모나드의 형이상학적 죽음은 인정하지 않는데 이는 모나드가 더 이상 복합체를 구성하지 않는 과정을 말한다. 모나드는 물리적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창조되었다. 여기서 벌거벗은 모나드(naked monad) 개념도 등장하는데 이는 역량이 수동적이고 무기세계를 구성하는 지속적인 기절 상태라고 본다. 동물에게도 효과적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모나드가 있고 이는 죽은 모나드보다는 조금 더 고차원적인 모나드다. 인간은 필연적 지식을 얻는 영혼의 모나드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 자신에 비추어 신을 생각한다. 이는 데카르트의 개념과 유사한데 반성행위를 통해 이상적 추론이 가능한 특징을 갖는다. 추론 대상은 나 자신, 물질, 빗물질, 단순 복잡한 것, 신을 모두 포함하는데 모나드는 철저히 개체적이다. 그리고 모나드는 자기충족적이다. 모나드라는 실체 개념에 모나드에 귀속되는 모든 술어를 포함하는 술어포함 개념 원리를 따르는데 모든 것의 흔적이 포함되고 미래에 발생한 모든 것의 여지가 포함되는 것이다.

 

한편 신도 실체이므로 신은 최고의 모나드이며 창조적 모나드(created monad)이다. 피조된 모나드 사이에는 관계가 없지만 생성, 소멸에서 피조된 모나드는 신과 관련된다. 다시 말해 모든 모나드는 다른 존재자에 대해서는 독립적이지만 신에 의존적인 성질을 가진다. 이와 관련된 예정조화설은 최초의 원인자인 신 관념과 연결되어 세상을 설명하려는 라이프니츠의 의도가 담긴 이론이다. 창이 없기 때문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모나드는 질서 정연한 관계 속에 존재하는데 이러한 근거는 바로 ‘신’이란 것이다.

 

신, 예정 조화설

신은 절대적으로 완전하며 긍정적 실재의 총체이다. 즉“경계가 없는 곳, 말하자면 신 안에서의 완전성은 절대적으로 무한하다.(41)”신은 시공간과는 상관없는 개념으로 신도 이성의 진리에 존재하며 의지보다 지성이 먼저라고 라이프니츠는 생각한다. 모나드는 각각의 창조된 목적에 따라 행동하는데 질서 정연한 우주의 부분이다. 대규모의 조화를 이루는 근거는 다름 아닌 신인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신만이 근원적인 통일이거나 본래적인 단순 실체다.(47)”라이프니츠의 논리대로라면 선행 원인을 되짚어보면 무한 소급이 가능하다. 연쇄적으로 원인의 원인, 원인의 원인을 추구하다보면 결국 최종적으로 원인인 ‘신’으로 귀결된다. 신은 본질적으로 존재를 내포하며 이것은 필연적이며 복잡한 우주 자체를 지배한다. 신이 없다면 어떤 것도 현존할 수 없고, 가능성이나 현실성도 없으므로 신은 자기 존재의 근거를 그 자체 안에서 가지므로 필연적 존재자다. 신만이 원초적 단순 실체이며 “신 안에서 이러한 속성들은 절대적으로 무한하거나 완전하다.(48)”

 

이러한 신이 목적에 맞게 질서 정연한 행위가 가능한 우주를 창조한 것이 바로 예정조화설이다. “그들은 서로가 동일한 우주 전체를 표상하기 때문에, 모든 실체 사이의 예정조화에 힘입어 서로서로 합치된다.(78)”세계는 모나드의 우연한 배열이나 변화가 아니라 내재적으로 신의 활동이 발현되는 상태일 뿐이다. 각각 독립적인 모나드가 조화롭게 존재하는 이유는 힘, 지식, 의지가 있는 신의 개입이다.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충족이유율을 근거로 세계를 설명한다. 즉 “지금 신의 관념에는 무한하게 많은 가능세계가 있지만 그들 중 오직 하나의 세계만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세계보다 이 세계를 결정하도록 이끄는 신의 선택에도 하나의 충족이유가 있어야 한다.(53)신은 매 순간 단자의 지각이 매우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도록 창조했고 신의 예지가 실현된 현실 세계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인 것이다. 누군가는 전지전능하고 완전하게 선한 신이 왜 악을 만들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대답한다. 지금 있는 세계가 존재 가능한 세계 중 최선의 세계이며, 즉 지금 이 세계의 악이 가능한 세계들 중 가장 적은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적합성 완전성의 등급에 따라 나뉘는 가능세계들 중 현실 세계는 “이 지혜를 드러내고 선을 택하고 능력을 만들게 하는 최상의 존재 근거이다.(55)”다시 말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나드 하나하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최선의 세계에 봉사하도록 신이 그렇게 구성한 것이고 이 모습과 다른 우주는 존재할 수 없다.

 

이성적 진리-사실적 진리, 능동성-수동성

“이 조화는 자연 자체의 길에 있는 사물을 은총으로 이끌도록 영향을 준다.(88)”예정조화설로 이루어진 라이프니츠의 논의에서 그는 진리를 이성적 진리사실적 진리로 구별하였다. 그리고 인간은 영원한 진리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동물과 다르다. 이성 인식에 있어 각각 모순율과 충족 이유율로 설명 가능한 것인데 차이가 존재한다. “하나는 모순율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하나의 모순을 포함하는 모든 것은 거짓이라고 판단하고, 거짓된 것의 반정립인 것 혹은 모순적인 것을 모두 참이라고 판단한다.(31)”모순을 포함하는 것은 거짓이고 포함하지 않으면 참인 것으로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므로 근본적, 이성적 진리로 이해했다. 순수하게 논리에 의해 인식되고 필연적 진리이므로 이를 부정하면 모순에 빠지므로 불가능하며 증명이 불가능하거나 증명이 필요하지 않는 이성의 진리에 토대가 되는 것이다. p와 not p를 동시에 주장하면 모순을 범하는 수학적 명제가 대표적인 예로 선천적(a priori)이다. 반대로 충족이유율은 사실적 진리이며 후천적(a posteriori)이다.“우리는 종종 이러한 근거가 알려져 있을 수 없다고 해도, 왜 이것이 이래야 하고 다를 수는 없는지에 대한 충족이유가 없다면, 어떤 사실도 진짜이거나 실재일 수 없고 어떤 명제도 참으로 입증될 수 없다고 간주한다.(32)”다시 말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충족이유가 없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술어포함 개념 원리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개념이다. 사실적 진리는 우리의 감각에 직접 다가오는 것에 대한 내적 체험으로 획득되는 성격이다. 목적인과 작용인중 오히려 목적인에 가중치를 둔 라이프니츠는 사실적 진리는 경험으로 인식되며 우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한편 우연적 사물의 궁극적인 존재이유는 하나의 필연적 실체, 신을 필요로 한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다른 존재에 대한 최종 근거인 신은 모나드 전반, 우주 전체에 작용한다. 물론 변화 원칙의 원천이 신에 있음을 라이프니츠는 인정하지만 피조 모나드에서 변화의 충족 이유는 모나드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신은 피조물에 완전성을 부여하지만 그럼에도 피조물이 불완전한 이유는 그것이 피조물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한편 모나드 간의 층위를 구분한 것으로 보이는 라이프니츠는 모나드의 능동성, 수동성을 나눈다. “모나드는 판명한 지각을 갖는 한 활동성을, 혼동된 지각을 갖는 한 수동성을 지닌다.(49)”다른 모나드의 사건을 설명한 요소를 발견하면 이는 더 완전한 모나드로 볼 수 있고 투명하게 세상을 반영하면 그 모나드가 더 완전하고 적극적, 능동적이라고 칭한다. 반대로 내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 다른 것에서 일어난 사건에 의해 이유를 제공받으면 수동적이라고 볼 수 있다. 위의 논증, 모순율, 충족이유율을 통해 나의 완전성은 결국 신의 계획이라는 것으로 다시 증명된다. 모호한 것은 매우 기계적인 부분이고 정신의 측면에서 지각하면 신의 은총이 내린 세계인 정신의 측면인데 이는 공존한다고 보고 있다. 당시 기계론적 세계관에 라이프니츠가 자유 의지, 우연을 바랐기 때문에 모나드에 영혼의 측면을 부여했다.

 

<모나드론>은 초반 모나드 개념을 소개하며, 존재론적 출발이 막판에 갈수록 윤리학적 늬앙스로 중심추가 이동했다. 기적적인 신 개입이 아니라 자연적인 방식으로 보상, 처벌을 하려 했던 합리주의자 라이프니츠는 끊임없이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목적으로 했다. 필연적 기계와 자유의지의 인간을 조화롭게 설명하려 했는데 일부 보수론자, 통치자들에게는 입맛에 딱 맞는 이론으로 발전되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라이프니츠는 전체로 봐도, 개개인으로 봐도 우리가 헌신하는 한 우주는 존재하는 것 중 최선의 것이며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모두 본유적이며 나에게서 나온 것이라 주장한다. 모호하건, 명석하건 그것은 모두 밖이 아니라 나에게서 출발하는 것으로 데카르트의 합리론, cogito를 일반화, 극대화한 사유체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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