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서설 -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르네 데카르트 지음, 이현복 옮김 / 문예출판사 / 199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 : 원문 인용 ○ : 요약 및 해설 ☞ : 개인적 의견

<DISCOURSE ON THE METHOD FOR CONDUCTING ONE'S REASON WELL AND FOR SEEKING THE TRUTH IN THE SCIENCES > PART FOUR

 

◉ “I reject as absolutely false everything in which I could imagine the least doubt, in order to see whether, after this process, something in my beliefs remained that was entirely indubitable.”

○ 중세적 질서가 지배하던 사회 속에서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오로지 진리추구에 전념하려고 확실한 것을 불확실하게 바라보았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을 다 의심해보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그는 감각, 기하학, 깨어 있을 때 가지는 모든 생각도 거짓이라고 가정한다.

☞ 엄격하고 논리적인 사유를 통해 뿌리깊이 박혀 있는 기존 통념을 끝까지 회의한 데카르트는 중세와 근대를 연결 고리 역할을 정확하게 했다. 중세에 통용되는 진리에 비판하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기존 관습을 해체하고 새로운 판을 짠 그의 업적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 "And noticing that this truth - I think, therefore, I am - was so firm and so assured that all the most extravagant suppositions of the skeptics were incapable of shaking it, I judged that I could accept it without scruple as the first principle of the philosophy I was seeking."

○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해도 그러한 동안에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무엇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I think, therefore, I am)>라는 진리를 철학의 제1원리로 받아들인다. <I think, therefore, I am>은 추론의 형식이지만 추론이 아닌 직관적 연결이다. 여기서는 영혼이 본질인 지금의 나까지만 논의를 한정하며 ‘생각하는 동안만 단속적인 나’까지만 언급한다.

☞ “나는 생각한 곳에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곳에서 생각하지 못한다.”라는 라캉의 말이 떠올랐다. 과연 데카르트의 말처럼 생각과 존재가 단순 도식화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이상’과 존재하는 ‘현실’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고 그렇기에 고통과 슬픔을 느낀다. 문득 내가 생각하는 대로 존재하면 좋겠다는 허무맹랑한 상상을 해보았다.

 

◉ It thus remained that this idea had been placed in me by a nature truly more perfect than I was and that it even had within itself all the perfections of which I could have any idea, that is to say, to explain myself in a single word, that it was God.

○ 인간 존재는 완전한 것이 아니므로(=‘무’를 분유하고 있으므로)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완전성에 대한 관념, 이를 갖고자 하는 욕망의 본능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탐구했다. 그리고 데카르트는 해답으로 신을 끌어들인다. (이는 단지 기독교 신일 필요는 없고 합리적인 하나의 인격적 실체다.) 즉 내가 부분적으로 가지는 완전성의 원인자, 내가 가진 완전성이란 관념의 원인자는 신이다. 신은 지성적 존재와 물질적 존재의 합성물이 아닌 전지전능하며 완벽한 지성적 존재다. 그리고 신은 명석 판명한 보증자로서 선하다.

☞ 전지전능하며 선한 신이 존재한다면 왜 중세시대는 억압과 폭력이 가득한 시대였을까? 아마 신의 말을 멋대로 해석한 인간의 그릇된 신앙과 이기적인 믿음 때문에 중세는 ‘암흑시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 존재, 혹은 신 존재에 대한 관념이 오히려 그들에게 매력적인 변명거리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철저하게 타인을 악으로 배제하고 자신만이 선한 신의 일부를 분유하였다고 맹신했기 때문에 비상식적 폭력을 합리화할 수 있었다.

 

◉ "I do not believe they can give any reason sufficient to remove this doubt, unless they presuppose the existence of God. For first of all, even what I have already taken for a rule, namely that the things we very clearly and very distinctly conceive are all true, is assured only for the reason that God is or exists, and that he is a perfect being, and that all that is in us comes from him."

○ 꿈과 현실을 구별하고 명증성을 획득하려면 신의 존재를 상정해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있다’에서 명석 판명한 일반 규칙을 도출했고 이러한 규칙도 결국 신에 의해 논증되었다. 이는 인간의 자기성을 넘어서기 위해 인간 외부를 끌어들였으므로 신에 갇혀있다는 근대철학 전체의 한계이기도 하다.

☞ 데카르트는 결국 신을 끌어들였지만, 중세시대 철학자와는 구별되는 지점이 더 크다고 본다. 신의 존재와 우월성, 완전성은 인정했지만, 인식 자체에서 근대 철학의 주체를 인간으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전후 관계는 차치하고 신도 결국 인간의 이성을 통해 생각하고 추론했기 때문이다. (이성과 추론 모두 ‘reason’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점에서 신선했다.) 한편 명석 판명하게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주관적이고 심리적이라 모호한 면이 있으므로 오류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하는 회의도 들었다.

 

◉ “For finally, whether awake or asleep, we should never allow ourselves to be persuaded except by the evidence of our reason. And it is to be observed that I say "of our reason," and not "of our imagination" or "of our sense.""

○ 꿈이 생생하긴 하지만 감각은 그 자체로 불확실하다. 꿈이든 아니든 이성의 명증성에 따른 ‘명석 판명함’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상상, 감각에서 오는 정보는 완전한 것이라 단정 지을 수 없다. 오직 이성만이 그 자체로 참이라고 보증될 수 있다.

☞ 데카르트는 이성은 참, 거짓을 구별하는 능력으로 대다수 인간이 천부적으로 갖춘 양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성을 가진 모든 인간이 하나의 물음에 똑같은 답을 내릴 수 없다고 본다. 자신이 자라온 환경, 사회 문화적 시공간, 개인적 경험, 신념에 따라 진리에 대한 견해는 달라질 것이다. 비합리성의 대표적인 사례인 나치즘도 그 당시 독일인이 따르는 하나의 진리, 이성적 판단으로 통용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데카르는 모든 것을 회의하는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지녔지만 ‘이성’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낙관주의로 일관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 “But it does dictate to us that all our ideas or notions must have some foundation of truth, for it would not be possible that God, who is all-perfect and all-truthful, would have put them in us without that.”

○ 데카르트는 내 밖이 아닌 철저하게 내면에 집중했고 사유하는 나(I) 자체에 주목했다. 그리고 내 안의 사건과 바깥 사건을 보증하기 위해 신(God)을 상정했다는 점에서 경험론자와 대비된다. 그리고 그는 근대 인간, 평등의 인간만 남기고 백지상태로 만들어버렸다. 즉 인간을 ‘사유’라는 개념으로 평준화시켜버린 것이다.

☞ 물론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해답은 아니지만, 신의 은총에서 ‘사유’라는 동등한 판단 기준으로 중심 추를 옮긴 데카르트의 사유에 공감했다. 이는 네덜란드라는 자유로운 공간에서 집필을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중세의 흔적을 재정비하고 근대의 시작을 알린 그의 이성에 대한 믿음은 충분히 존재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MEDITATIONS ON FIRST PHILOSOPHY IN WHICH THE EXISTENCE OF GOD AND THE DISTINCTION BETWEEN THE SOUL AND THE BODY ARE DEMONSTRATED> MEDITATION THREE : Concerning God, That He Exists

 

◉ "I am a thing that thinks, that is to say, a thing that doubts, affirms, denies, understands a few things, is ignorant of many things, wills, refrains from willing, and also imagines and senses."

○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시작하여 <성찰>에 이르러 방법론적 회의를 더 세밀하게 밀고나가며 '코기토' 개념을 정당화시키려했다. 감각, 상상은 무론 수학적 진리 등 거의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는 사유 주체로서 '코기토'는 물론 현존하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데도 등장한다.

☞ 근원적 실체인 신의 존재는 언제나 절대적이었다. 당시 사람들의 '신'은 지금의 '신'보다 더욱 절대적이고 영원불멸한 존재였을 텐데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관념들을 여러 가지로 나누며 명석 판명한 판단 기준을 마련했다. 그리고 하나님마저도 기만자일 수 있는지 없는지 검토해보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 신선했다. 그리고 그 출발이 앞서 인간을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만든 상태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Now the principal and most frequent error to be found in judgments consists in the fact that I judge that the ideas which are in me are similar to or in conformity with certain things outside me”

○ 자체로는 옳지만 의지, 감정과는 달리 판단은 주의를 요구한다. 참된 판단은 나의 지각 능력의 힘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각은 1차적으로 신체적 영역이므로 세상 외부의 질서를 완전하게 설명 불가능하다. 물체와 내가 공유하는 성질인 제1성질, 물체의 변동하는 성질인 제2성질 구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사성을 가지는 ‘판단’을 내릴 때 오류가 등장할 수 있다.

☞ 인간이 판단을 내릴 때 신중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인간의 판단은 성급하며 타인의 의지, 감정적 끌림에 쉽게 흔들리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이 판단에 있어서 100%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리기란 불가능하다. 특히 주관의 인식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생겨나는 오류는 항상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Among these ideas, some appear to me to be innate, some adventitious, and some produced by me."

○ 관념은 생득적(사물, 사유, 진리가 무엇인지를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 외래적(내 외부에 현존하는 사물로부터 온 것, 열을 느낀다는 것), 인위적(자신이 고안해낸 것, 사이렌, 히포그리프스)으로 구분할 수 있다. 외부에서 받아들인 것은 필연성을 담보로 하지 않는다. 즉 기하학 수량화가 가능한 것은 외부에 있지만, 색깔, 소리, 맛 등은 파생적, 2차적 성질로 감각을 거쳐야 나타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감각보다 이성을 주요 작업 주체로 끌고 들어왔으며, 이성적으로 명석 판명한 것은 거짓이라 할 수 없다고 보았다.

☞ 관념의 구분에는 동의하지만, 외부 성질을 받아들이는 가교 역할을 하는 감각의 중요성도 무시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글 곳곳에 등장하는 이성에 대한 무한한 낙관론은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성에 대한 맹신이 계속된다면 ‘신의 섭리’를 ‘이성’이란 이름으로만 대체되었을 뿐 그 역할은 똑같을 수 있기 때문이다.

 

"Again, the idea that enables me to understand a supreme deity, eternal, infinite, omniscient, omnipotent, and creator of all things other than himself, clearly has more objective reality within it than do those ideas through which finite substances are displayed."

○ 관념 하나하나는 사물의 대변자로서 표상적 실재성(정신 안에 관념적으로 가지고 있는 실재성, 관념)을 지닌다. 그렇다면 현상적 실재성(현실속의 사물 개별이 지니고 있는 실재성, 관념의 원인)을 지닌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데카르트는 생각했다. 한편 독자적 실재성에 따라 관념에 위계가 존재한다. 실체는 양태에 우선하며 작용적이고 전체적인 원인 속에는 적어도 그 결과 속에 있는 만큼의 실재성이 있어야 한다. 양태는 실체에 의존해서 존재하므로 독립성이 떨어지고 하나님을 이해하는 관념은 유한한 실체를 나타내는 관념보다 더 많은 객관적 실재성을 자기 속에 포함하고 있다.

☞ 과연 생각하는 실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1 실체, 즉 존재하기 위해 다른 존재를 필요하지 않은 것일까? 물질은 공간을 점유하는 속성을 가진다. 영혼을 지닌 인간도 어찌 보면 하나의 유기적 물질이고 그러므로 시공간 좌표를 점유하기 위해서 육체가 필요하다. 이는 자연스레 심신이원론의 비판과 유사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Thus there remains only the idea of God. I must consider whether there is anything in this idea that could not have originated from me."

○ 지속성, 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관념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고, 연장, 모양, 위치, 운동 같은 성질도 실체의 어떤 양태이므로 실체인 나는 내 우월적으로 내 속에 그들을 포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직 남는 것은 하나님의 관념뿐이다. 신의 관념은 명석 판명하며 그보다 더 자체적으로 참된 관념은 없다. 신의 표상적 실재성은 비의존적이고 전지전능하며 나 자신을 만들었다. 나는 유한한 실체이며 이는 나 자신에게서 나올 수 없다. 그러므로 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 양태, 실체 구분을 통해 관념들 사이에 위계를 정하는 주체는 인간이다. 자연스레 인간은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신 관념을 끌어들였고 이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절대적 권한을 쥐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인간 역시 하나님이란 실체에 의존하는 양태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신의 예정된 섭리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이라면 결국 신의 뜻이 드러나는 하나의 양태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의문이 들었다. 한편 유한한 실체에서 필연적으로 신을 생각해낸 인간의 사고 흐름은 어찌 보면 '유한성'이 가지는 당연한 특성, 절대성, 무한함에 대한 당연한 동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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